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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언젠가 Dec 14. 2023

No shorts zone

여성은 반바지를 입으면 안 되는 공간.

A가 근무하는 곳은 의상규정이 있다.

그 누구도 명시하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한다. 여성은 아무리 더워도 반바지를 입으면 안 되고 여름에 샌들을 신으면 안 된다고 한다.


한여름 복중에도 발가락이 보이지 않게 촌스럽고 단정한 구두를 신고 땀이 차도 폴리에스테르 스커트 정장을 입어야 하며 색상이 마치 까마귀나 비둘기 같아 보이면 더 좋다고 한다.


이 불문율은 밀라노 칙령이나 낭트 칙령처럼 여왕의 대관식 즈음 해서 발효되었는데 이 칙령이 공고화 되는 과정에는 한 상궁의 역할이 컸다고 한다.


 퀸은 여교사들은 가능한 얌전하고 보수적으로 입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복장은 여자들의 품위와 관련된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남자 교사들의 의상은 규제하지 않았다.

 이것이 개인의 사견이라면 상관없다. 그가 여자는 스커트지! 하는 신념을 지녔더라도 그건 개인적인 신념에 그쳐야 한다. 


 하지만 이것이 칙령이 되어서 조직의 모든 여성들을 규제하는 하나의 수단이 된다면 문제가 있는 것이다.


A는 몇 년 전 그 칙령 발표날 이게 무슨 일이야? 하고 매우 놀랐다.

교사들의 복무를 담당하는 교육청 교원인사과에도, 교사들의 인식과 양성평등을 담당하는 성인식 개선반에도 문의해 봤지만 이런 의상규정, 특히 여교사에게만 적용되는 규정은 없다는 답변을 들었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A가 근무하는 곳은 No shorts zone이다.

어떤 원칙과 기준이 지위를 가진 사람의 사적 의견이나 신념이 되는 순간 그 조직 문화에 영향을 미친다.

권력자의 의견은 그래서 객관적이고 원칙에 맞아야 한다. 그것이 왕관의 무게다.


 퀸의 지밀상궁은 몇 년 전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어느 날, 그 조직의 여성 구성원들에게만 내부 메시지를 돌렸다고 한다. "일부 보수적인 남자 교사들 눈에 여교사가 반바지를 입고 출근하는 모습이 문제로 보였다고 하니 이제 여자들은 반바지를 입지 말고 샌들을 신지 마세요. 여성교사는 품위에 맞게 가능한 치마 정장을 입어야 합니다. 나도 이러기 싫지만 제가 연장자라 총대 멥니다"


어느 더운 여름날 아침 한 교사는 반바지를 입고 출근을 했는데 그것을 본 한 남자교사가 퀸에게 알렸다. 아무리 세상이 바뀌었어도 '여' 교사가 반바지를 입는 건 문제라며. (그 이전에 반바지를 입은 남자교사도 있었지만 그건 아무 문제가 되지 않았다고 한다.) 퀸은 그녀에게 교무실에 들어오지 말고 그대로 집으로 가서 옷을 갈아입고 오라고 지시했다고 한다.  


 A는 그 당시 두 가지 점에서 오류를 지적했다.

1. 그 메시지를 보낸 원로교사 당사자의 오류- 정말 본인이 스스로 조직에서 어떤 문화를 바꿀 만한 힘이 있는 연장자라 여겼다면 그 남자 교사 눈에 왜 '여'교사가 반바지를 입는 게 이상해 보였는지를 확인하고 그의 인식을 바꾸거나, 그녀 역시 개인적 의견으로는 '여'교사가 반바지를 입는 게 이상해 보인다는 그의 인식에 동조한다 하더라도 조직 내부에서 서로의 의상에 대한 공론화를 하여 합의점을 찾는 노력을 하지 않고 그저 그가 그랬으니 그건 문제다 그러니 더 어리고 여성인 너희가 바꾸거라. 하며 주장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2. 특히 옷차림이나 외모 같은 아주 사적이고 개인적인 부분, 취향이나 개인의 개성이 반영되는 부분을 이해하지 못하고 특정 남자 교사의 의견과 취향에 맞추어 개인적이고 사적인 취향을 고치라고 하는 건 부당하다.

 그리고 이 문제를 정말 문제 삼아서 조직 내부에 의상 규정을 정하고 싶다면 남녀가 모두 해당되야지 여성들에게만 의상 규정을 가지고 규제를 하는 것은 성차별일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그 당시에 A와 같은 주장을 한 사람들이 있었지만 그 의견들은 모두 묵살 당했다. 중재위원회를 조직해서 당시 관리자였던 전 교장에게 찾아가서 조직문화 개선을 위해 이 사안은 교장이 나서서 중재해달라고 요청을 했지만 전 교장은 이를 묵살하며 이사장의 따님인 퀸의 의견이 조직의 의견이다! 퀸이 곧 국가니 너희가 조용히 참으라고 강요했다. 그는 공무원 의무에는 상급자 지시에 복종해야 하는 의무도 있다며 온몸으로 퀸을 비호하고 화려한 퇴임식을 치르고 명예롭게? 정년 퇴임했다.


A는 그 당시 교장실에 따로 불려가 그냥 니가 조용히 참아라. 너 위해서 하는 소리다? 하며 어쨌든 나는 화려하고 명예롭게 퇴임해야 한다. 퇴임식이 얼마 안남았으니 이 중재위원회의 요청을 받아들일 수 없다. 대신 방학식 전에 회식이 있으니 그날 맛있게 먹고 기분 풀어라 하는 말들을 쏟아내는 전 교장에게

"하 교장선생님 이거이거 왜이러십니까? 저도 우리아빠 귀한 딸입니다! "하고 외쳤다고 한다. 크게 소리내서 외치지는 못하고 A의 속으로만.

 

이 이야기를 나에게 털어놨을 때 A는 괴로워 보였다.

"언니, 제가 가장 힘든 게 뭔지 알아요? 퀸과 상궁 그녀들 모두 나름 사회적으로 존경받는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란 거에요. 후배 여교사들에게 모델이 될 수도 있는 힘을 가졌으면서 그 힘을 남자의 의견에 따라서 여성을 규제하는 것. 그것도 하등 불필요하고 소모적인, 옷차림 같이 외형적인 것에 소비한다는 게 마음이 아파요. 이제 우리는 출근 전에 스스로 거울 앞에서 자신의 차림을 검열하고 점검해야 해요. 힘들게 번 돈으로 촌스럽지만 비싸고 취향에도 안 맞는 정장들을 사야 하고요. 왜 그런 소모를 해야 하죠?

진짜 웃기는 게 뭔지 아세요? 그때 황망한 마음으로 서둘러 집에 가서 옷을 갈아입으려고 옷장을 열어본 그분은 자기한테 치마가 몇 개 없는 걸 알고 그날로 백화점에 가서 80만 원어치 스커트정장을 샀데요. 초임교사 월급 쥐꼬리 만한데. 딱히 취향도 아니고 사고 싶지도 않은 옷 따위에 80만 원을 투자했다네요 "


 


A는 점점 고립되어 갔다.

설령 그녀와 같은 의견이더라도 퀸과 다른 의견을 내는게 두려운 사람들의 침묵속에서, 그 일은 마치 일어나지도 않았던 일인 것처럼 상처만 남기고 조용히 묻어졌다.

A는 그해 아이의 학교일에 참여하기 위해 아이를 키우는 교직원들이 다 쓰는 가족 돌봄 휴가를 올렸을 때 반려되어 연가를 쓰고 참여했다고 했다.

퀸은 A가 올린 계획서의 참고 주석을 꼼꼼히 읽고는 특정 글자를 바꾸라고 지시 했다가 A가 지시대로 바꿔서 기안을 올렸더니 아잇 이거 아니다! 하며 다시 원래 기안으로 또 바꾸라고 했다.

성과급 심의에서 그녀의 업무 특수성을 인정해서 주던 가산점이 사라졌고,

A가 수행하는 특정 업무에 관해 퀸은 '이건 이렇게' 하라 지시해서 A는 그 업무 관련 법령상 이 업무는' 이건 이렇게' 하면 안 된다고 이야기를 했더니 교육청 담당 장학사에게 그 선생이 '이건 이렇게' 할수 없다는데 그게 맞는 거냐는 전화를 했다. 담당 장학사도 퀸에게 A와 마찬가지로 똑같은 법령을 설명하며 A선생은 원칙대로 하고 있다고 답변했다. 그 후 그 장학사는 A에게 개인적으로 전화를 해서 A가 괜찮은지 확인하려고 한다, 당신이 힘들까 봐 걱정이다 라는 위로를 했다고 한다. 담당 장학사에게 그런 위로를 받았을 때 A는 세상에 이런 일이! 너무너무 괴롭다,

퀸은 어떻게 하면 타인에게 자괴감이 들게 하는지 잘 아는 사람 같다며 토로했다.


퀸은 A에게 할말이 있으면 직접하지 않고 그 말을 전달할 부서 부장이나 혹은 교무보조 같은 대리인을 보냈다. A는 항상 중간에 낀 부장에게 퀸과 직접 소통하지 못해 죄송하다 사과했고 부장은 두분 사이를 자신이 중재 못한것 같아 미안하다고 사과하며 짧게 끝날일들을 길게 돌아가며 처리했다. 퀸은 A에게는 사적인 자리에서도, 공적인 자리에서도 말을 걸지 않았다.


그러나 A를 가장 가슴 아프게 했던 건 그런 퀸의 눈치를 보며 약자에게 강하고 강자에게 약한 포지션을 취하는 사람들의 은근한 조롱, 업무 협조 안됨, 주요 정보 누락, 개인적인 어울림 피하기 같은 따돌림이었다. 말로 표현하긴 은근하고 참기는 어려운 그런 것들.

지밀상궁과 호위무사의 입을 통해 A는 퀸이 찍은 사람이니 A랑 친하게 지내면 너도 찍힌다, 너 위해서 하는 소리다 조심해! 하는 아이들을 교육한다는 사람 입에서 하기 부끄러운 말들이 오갔다.


A는 자신이 일하는 곳의 고마움을 안다.

늘 자신이 그곳에 임용된 것에 대해 자랑스러워하고 감사했었다.

A가 전 교장처럼 태양왕 퀸에 대하여, 그 조직이 퀸이고 퀸이 그 조직이라는 절대 왕권 시대적 복종을 하지않지만 A는 일과 일터의 소중함을 아는 사람이라 자신의 직장에 감사한다.


자신의 생계를 책임지고 일상을 굴러가게 하는 일터인 그곳. 그 시스템에 감사하며 그 시스템을 함께 굴리고 있는 그 구성원에게 감사하는 것이다.

그녀는 조직의 힘을 믿으며 조직의 구성원들이 각자 자리에서 묵묵히 자기 업무를 했을 때 온전히 그 조직이 성장하고 그 안에서 개인도 성장한다는 구도도 이해한다.


사실 A가 무엇보다 중요하게 여기고 가치 있게 여기는 건 그녀가 일을 해서 받는 소득으로 생계를 유지하고 자녀들을 키워 나가는 일상, 그 속에서 진정한 행복과 의미를 찾는 그녀 자신의 삶 자체다. 

그녀는 자신의 노동력으로 삶을 꾸려가고 일상을 살아가는 그 사실을 자랑스러워하고 감사해한다. 일이란것은 좋기도 하고 싫기도 하고 월급을 받기 위해 노비가 되는 삶이 좋기도 하고 싫기도 하지만 아무튼 그 모든 좋고 싫음 역시 그녀의 삶이라 살아간다는 자체에 가치를 두고 그대로 만족하고 감사하며 살아간다. 

그래서 그 직장이란 곳이 행복하고 확장적장소가 아니라 폐쇄적이며 개성이나 취향처럼 아주 개인적인 부분 조차 타인의 취향에 맞춰야 하는 공간 이라는 그 사실만 슬퍼했을 뿐 소중한 일터인 그곳을 사보타지할 마음은 없다. 오히려 A를 과하게 경계하고 그녀를 배척하는 퀸에게 나는 당신의 왕국을 사보타지 하지 않습니다. 당신의 왕국이 아니라 저의 왕국이도 하니까요 하고 나는 칼을 품지 않았습니다 하고 보여주는 중세 기사의 악수를 하고 싶을뿐. 하지만 A는 이미 악수도 하기 전에 던전에 던져졌다.


그러므로 A에게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라는 식의 위로는 애초에 위로가 되지 않는다. 중은 그 절이 싫어도 그 절을 사랑하고 그 절에 속하고 싶어 한다.

중이 그 절이 싫어지는 이유는 사실 그 절을 너무 사랑하기 때문이다. 모두 그런 것 아닌가? 애정이 없다면 뒤돌아보지 않는다.


직장 내 괴롭힘은 보통 권력이나 영향력이 더 큰 자가 그것이 없는 이에게 행해진다.


혹여, 세상에 이게 왜 갑질이냐? 나 같이 좋은 사람이 어딨다고? 라떼는 그 더한 것도 다 참고 일했는데 요즘 것들은 정말 이걸 문제 삼는다고? 혹은 나는 정말 그 사람을 위해서, 그 사람이 입길에 오를까 봐 생각해 주는 말인데 그걸 이렇게 받아들인다고? 하는 생각을 가진 사람이 있다면 자신이 가진 영향력을 돌아봐야 한다.

조직이란 곳에서는 위치와 포지션 자체가 주는 힘이 있기에 그런 위치의 사람의 말 한마디나 사견은 칼이 될 수도 있다.


또 그 어떤 조직이든 조직에서 더 큰 영향력을 끼지는 사람과의 갈등으로 괴로워하는 사람들에게 참지 말고 관둬! 혹은 다 뒤집어엎어버리고 나가 거기 말고도 다른 일할 곳은 많다는 식의 말은 애초에 그러므로 위로가 될 수 없다.


 

그해 겨울,

A에게, 저 술 한잔 사달라는 전화를 받았다. 그녀와 친하게 교류하던 기간제교사가 출산휴가를 썼다는 이유로 다음 해 계약이 안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였다. 나는 A에게 그녀가 좋아하던 하이볼을 사주며 사장님께 특히 위스키를 듬뿍 넣어서 맛있게 말아달라고 부탁했다.


 "A야 세상은 원래 그래, 너 때문에 타인이 불이익 당한거 같다고 생각하는 그거도 자의식 과잉이다? 그분이 훌륭한 분이고 뛰어난 분인데도 계약에서 제외된 건 너와 상관없는 다른 내부의 사정이 있는 거야. 그것까지는 네가 어쩔 수 없는 부분이지.


 세상에는 젠더 간 임금 격차를 평생 연구해서 마침내 왜 여성들이 같은 교육을 받고도 저임금에 시달리는지를 실증적으로 밝혀낸 분, 결국 그 논문으로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클라우디아골딘 같은 여성들도 있지만 퀸과 상궁 같은 여성들도 있어.


사람은 모두 다르고 생각도 모두 다른 건 어쩔 수 없지. 그걸로 네가 괴로워할 필요는 없어.

네가 그 조직에서 소외되는 것 같다고? 그럴 수도 있지. 너는 비교과 교사이고 네가 수행하는 업무는 실적으로 드러나지 않는 업무들이 대부분이니까. 그냥 니 업무들이 독립되어 있고 특수성이 있으니 그에 대한 이해도가 아직 모두에게 높지 않을 뿐, 그게 단지 퀸 때문이라고 여겨서 괴로워하지는 마. 그럼에도 불구하고 퀸의 의견에 반하여 너의 일, 네가 해야 하는 업무를 했다는 이유만으로  너를 소외시킨다면 말이야, 이걸 돌아봐.


네가 하는 업무들,  특히 성인식 개선업무는 엄연히 그 업무의 근거가 되는 법령이 존재하고, 그 업무를 지시하는 공문이 존재하지? 네가 하는 교육들은 그것이 가치가 있기 때문에 교육 과정에 들어온 것이야. 그렇다면 너는 네가 하는 일들에 대해서 더 자부심을 가지고 더 힘을 낼 필요가 있는 거야.


그리고 우리가 사랑하는 심리학이론 말이야,

응 우리가 맨날 말하는 아들러 개인 심리학. 그걸 기억해.


타인과의 관계의 기본 원칙 알지? 타인이 나를 미워하고 나를 괴롭게 하려고 해도 내가 그 행동에 의미를 두지 않고 그 행동으로 괴로워하지 않으면 그 시도는 힘을 잃는다는 것. 아들러는 진짜 현명하지 않니? 사회와 끊임없이 상호 작용하지만 개인은 모두 개인이기에 다 다르다는 것.


삶의 의미는 각자가 자신만이, 자기 스스로 부여한다는 것. 어떻게 이렇게 인간을 통찰력 있게 바라보고 있냐고 우리 같이 놀랐었잖니. 아들러의 이론을 믿고 니 마음을 좀 편하게 가져봐.

이게 단지 너 편하려고 권력자에게 잘 보이라는 게 아니야.

나도 너 같은 상황에서 너 같은 선택을 했을 거야. 권력이 그 힘으로 누군가를 배척하거나 규제하려하면  비록 미움 받더라도 저항해야지.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옳다고 여기는 일을 할 권리가 있어야 해. 특히 다음세대에게 그렇게 옳은 일을 하며 살아 가라고 가르쳐야 하는 사람들에게는 그 권리가 더욱 존중되야 한다 생각해. 

그런데 권리에 대한 노력이나 저항없이 당연히 주어지는건 아무것도 없으니 니가 지금 힘든건 과정이라 여겨.

아마도 바뀌지 않던 그곳도 바뀌어 갈지도 모르지. 퀸도 이번일로 어쩌면 어라 내 맘데로 내 뜻데로 모든걸 다 하면 안되겠네 하고 느꼈을지도 몰라.


하지만 애석하게도 다만 퀸과 니가 서로 옳다고 여기는게 틀린건 어쩔 수없어.


퀸이 더 힘이 있기 때문에 니가 옳다고 여기는 일을 할 때라도 퀸에게 쫄리는 거는 어쩔 수 없지만, 그 정도는 너도 힘을 내서 감내해야지? 너도 그 정도 힘은 있잖니? 이 풍진 세상을 살면서 너를 찍어 누르려는 사람에게 부당하다고 말할 힘도 없고 스스로 옳다고 여기는 일들을 할 힘도 없이 그저 이리저리 눈치만 보면서 살아가야 한다면, 그렇게 사는게 더 힘들지 않겠니?

 

너 그 상궁과 그 일 전에는 친하게 교류하고 마음을 터놓고 지냈는데 그 사건 이후 그가 니 인사도 안 받고 멀리서도 너만 보면 휙 하고 돌아간다고 했지? 다른 교사들에게 네가 그 이전에 그와 친하게 지낼 적에 말했던 너의 개인사, 혹은 사적 정보들을 퍼트리며 너를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 너란 사람 자체를 곡해 하게 만들까 봐 괴롭고 걱정된다고?


 상궁이 퀸과의 사적 친밀감을 과시하며 지금 이순간도 누군가의 가십을 찾아다니며 학교내 모든 소문의 근원지 노릇을 한다고? 그런건 요즘은 애들도 안하는 짓거리야. 패거리짓기, 따돌리기, 가십을 찾아내서 유포하거나 사적 정보를  본인동의 없이 그 당사자가 없는 자리에서 아우팅하기 등등. 그런 행동들은 요즘엔 유치원  이상의 사회경험만 있다면 이상한 행동이라고 다 인식하고 그 누구도 말려들지 않아.


근데 사실, 그 모습이 괴로운 진짜 이유는 네가 그 상궁을 신경 쓰기 때문이야. 신경 쓰지 마. 그는 너의 인생에 아무런 힘을 발휘할 수 없는 존재야. 

그 사건 전, 니가 그 상궁이랑 교류할 때 상궁은 학교 소식 알려준다며 여교사들을 몰고 커피숍으로 가서 퀸의 가정사도 다 아웃팅하고 뒷담화도 일삼곤 했다며?그냥 그는 그런 사람일뿐. 그걸로 니가 괴로울 필요는 없어. 가십에 목말라하고 남 이야기 퍼트리며 겨우 그런걸로 자신의 존재감을 확인하는 그런건 그저 안타깝게 여겨줘.


대신 A야, 너는 너에게 소중한 걸 지키고, 비록 퀸이 애써 평가절하하고 인정해 주지 않더라도 니 자리에서 니 업무를 최선을 다해서 하며 또 열심히 살면 된다. 사람들 생각은 다 비슷하고 느끼는 건 다 같아. 네가 진심으로 살아간다면 그 자체 만으로 괜찮은 거야. 설령 타인이 오해하거나 인정 안 해준다 해도 어쩔 수 없어. 그냥 조직은 조직으로 받아들이고 일은 일로 받아들이고 관리자는 관리자로 받아들여.


우리 같은 사람들은 그냥 사회를 돌아가게 하는 정직한 시스템의 힘을 믿고 살면 된다. 그게 또 이 세상을 살아가는 이유, 우리의 존재 이유기도 하고. 알겠지?


자자, 울지 말고, 콧물 닦고 이거 먹태 좀 먹고.

또 뭐 먹고 싶어? 응? 뭐 골뱅이 무침? 야야야 시켜 다 시켜 너 먹고 싶은 거 다 먹어. 내가 우리 A한테 골뱅이 무침이 아니라 에스까르고인들 못 사줄까? 사장님 우리 오늘 아주 메뉴판 처음부터 끝까지 다 쓸어먹을 거니까 재료소진 안되게 마트 다녀오세요~~!"


그날 우리는 꽤 많이 마셨다. A는 하이볼 한잔에 또 다시 힘을 얻은 듯 보였다.

나의 위로가 그녀에게 와닿았는지 어쩐 지는 모른다.

A는 여전히 별일 없이 잘 살고 있다.

우리는 모두 자기 생을 사랑하고 자기 일상을 자신만의 방법으로 충실히 산다. 그럼 되는 것이다.


나 같은 소심한 여성 주의자는 여성을 먼저 내세우는 주장을 하는 사람이 아니다. 그저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가는 것, 그냥 자기 자리에서 충실히 살아가는 것. 그것이 결국 모든 사람들을 위한다는 것을 이해한 사람일 뿐이다.


 그 힘으로 사회를, 세상을 굴리고 살아간다.

인간으로 태어나 시지프스의 형벌을 벗어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누구나 시지프스의 그 돌을 굴리면서 그 돌에 스스로 깔리지 않게 힘내서 살아간다. 혹은 내 힘이 모자라서 그 돌이 혹시라도 타인에게 향해서 타인이 깔리게 될까봐 최선을 다해 굴려 굴려 올린다.

나는 시지프스의 형벌을 달게 받으면서도 세상에 존재하는 다른 시지프스들을 존중하며 특히 아직 약해서 그 시지프스의 돌이 버거울지도 모를 막 사회에 나온 시지프스들을 위할 수 있는 사람들이 진정한 여성주의자라고 생각한다.  



-이 글은 픽션입니다. 하지만 어딘가에서 일어날 수도 있는 일입니다.

 오늘도 일상을 살아가는 모든  A들 에게 이 글을 바칩니다. 당신이 어디에서 살아가고 있는지 모르지만 당신의 주변에도 A도 퀸도 상궁도 있을 것 입니다. 세상은 넓고 사람은 다양하니까요!-



사진출처

1) pinterest- types of pants

2) 이효리 후디에 반바지 앨범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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