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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언젠가 Dec 17. 2023

제 성교육의 핵심은요

노콘돔 노섹스

15년 차 교사. 성교육 담당자. 공교육과정 안에서 가능한 광범위하고 모든 대상자에게 적용 가능한 이론으로 접근하되, 가장 현실적인 도움이 되고 싶어 하는 사람.



주요 과목 국영수과사 성적을 높게 받아야 하고 입시에 성공해야 하는 과정 중에 있는, 어쩌면 자기 인생에서 가장 힘들고 괴롭고 치열한 그 3년의 기간 중에 입시에 하등 상관없는 성교육을 위해 배당되는 수업 시수가 얼마나 어렵고 귀한 것인지 알기 때문에 그 시간은 가능한 아이들에게 도움이 되고 실질적인 교육을 하고 싶은 사람.


그러나 인식이나 방법론에 대한 교육은 아직 첨예한 갈등과 의견 대립의 여지가 있기 때문에 가능한 보수적이고 안전하게 접근하고 싶은 사람.


고인이 된 최진리 님이나 구하라 님의 죽음을 보고 누구보다 슬퍼하고 우리 사회에 왜 이런 죽음이 존재해야 하는가? 사랑하고 연애를 했다는 이유로, 브라를 안 했단 이유로 조롱받고 혐오받다 결국 죽음에 이른 걸 보고 너무 안타까웠다.


내 친구나 내 동생이었다면 폭력의 피해자는 당신인데 왜 당신이 괴로워해야 하느냐,

당신이 어떤 연애를 하든 어떤 옷차림을 하든 그건 개인의 선택인데 왜 남의 수군거림에 아파해야 하느냐.

당신들은 별일 없이 행복하게 살아라. 하고 싶은데로 하고 입고 싶은데로 입고 그저 반짝반짝 빛나면서 그 빛을 잃지 말고 잘 살아가라고 말해주고 싶었는데, 참 많이 슬펐다.


그런 일들이 오늘도 어제도 벌어지고 있는 사회 속에서, 조롱과 혐오가 일상에서 아무렇지 않게 일어나는 삶 속에서 나는 앞으로 어떻게 살며 우리 애들한테는 무엇을 알려줘야 할까 또 고민하고 고민한다.



 

내 아이가 학교에서 성교육을 받는다면 생식기와 생식에 관한 정확하고 올바른 지식을 얻고, 바르고 현명한 성 인식을 가지게 되고 결국 이것은 사람 사이에서 사람을 대하며 사람을 이해하는 삶과 연결되는 교육이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나는 성교육을 하기 전에 나의 성별이 아니기에 평생 알 수 없는 상대방의 성별을 이해하며 어울려 살아가기 위해서는 아이들에게 어떤 지식을 주고 어떤 철학을 주면 좋을까 자문한다.


수업을 시작할 땐 항상 "얘들아 나는 너희들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가 너무 많아. 이 시간들만큼은 가능한 많은 걸 질문하고 많은 걸 생각하면 좋겠어. 그리고 가능한 너희들이 아주 솔직하게 너희들의 이야기를 해주면 좋겠다. 내 수업 때는 나를 친구로 생각하고 친구에게만 털어놓을 수 있는 말을 해도 좋아" 하고 접근한다.


내가 사용하고 있는 고등학교 인간과 성 교과서를 보면

1. 인간의 삶과 부모 되기 2. 이성교제와 인간관계 3. 성행동과 책임 및 의무

4. 성 건강 지키기 5. 불법 성행위의 이해와 대처

라는 대 단원으로 실제 인간의 생에 주기에 맞춰 성의 변화, 가치관의 정립, 책무성, 성평등과 정책, 피임과 *인공중절, 표현의 자유와 외설, 성폭력, 성매매와 관련법령등을 다룬다.


그런데 사실 나도 결혼을 하고 애를 낳고 세상과 부딪히며 살아가다 보면서 이 나이가 돼서야 어렴풋이 고민하고 생각하고 재정립하고 있는 부분을 아이들에게 짧은 시간에 가능한 밀도 있게 알려주기는 어렵다.


특히 교과서의 가치관의 정립과 책무성 단원은 내가 살아보니 제일 어려운 단원이다. 그래서 이 모든 손에 잡힐 듯 잡히지 않는 개념과 인식을 아이들에게 정립시키기란 늘 어렵고 어렵다.


나의 고등학교 시절 내가 받았던 성교육을 생각하면 순결 다짐 서약서 쓰기 정도의 수준이었다.

저는 절대로 혼전 성관계를 맺지 않겠다고 미래의 배우자에게 약속합니다. 하고 꼭꼭 써서 밀봉했다.


남현희와 천정조 사건 때 너무 경악스러웠던 부분, 아무리 그래도 임신과 출산을 겪은 사람이 생식에 대한 배경지식이 너무 없는데? 싶었던 부분. 그런데 어쩌면 저거 저거 남현희도 고등학교 때 나랑 비슷한 수준의

성교육을 받았다면 , 아니 그 순결교육 때 강조하던 정자난자 만나면 애 생기니 큰일 난다 수준의 성교육도 못 받았다면 , 진짜 모를 수도 있겠다 싶다.


결국 낮은 교육은 낮은 인식을 형성했고, 삶의 가치와 중심을 단지 돈에 두는 선택을 한 사람. 돈이 한없이 많은 재벌 3세라면 뭐든 상관없으니 내게 돈과 사치스러운 것을 가져다준다면 그게 사랑이다! 라고 스스로의 몸도 뇌도 속여버린 엘리트선수이자 올림픽영웅이였던 그에게 그저 돌을 던질수만은 없다.  교육을 못받은건 죄가 아니지 않는가?


30년 순결강조 성교육을 받던 사람이 교육자가 되고 보니  이젠 세상이 변하여

 디지털 성범죄나 성착취물 제작유포  같은 새로운 위험성은 고조되고 디지털 세상안에서 지능적이고 교묘하게 퍼져나간다. 젠더  갈등, 그것의 정치적 해석과 편 가르기를 부추기는  배척과 혐오의 양상은 심화된다. 성 범죄는 점점복잡하고 예측불가하게 일어난다.

그때보다 여성이 많이 배우 사회에서 더 많은 역할을 해도 여전히 일과가정 양립은 어렵고도 어렵다. 어렵게 어렵게 일도 육아도 놓치고 싶지않아 분투하여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클라우디아 골딩이 지적하듯 특히 유아기 아이를 양육하는 시점은 사회에서 가장 왕성하게 성장할 시점과 맞물리며 그 시기의 육아로 인한 기회의 단절은 이후에도 좁힐수 없는 남녀 임금차이를 보이게된다.

이 어려움은 결국엔 사람, 인적자원이 중요한 자산인 나라에서 낮은  출산율로 연결된다.



대학시절과 임상시절 습득하고 경험한 산부인과적 지식이 있고 생물학적 기본이 있지만 생식에 관해 설명하기 위해 정자와 배란된 난자가 만나는 수정의 과정, 착상, 자궁내막의 변화들을 설명하고 있으면 아이들은 반은 졸고 반은 국영수과사 책을 펼쳐 들고 자신의 입신양명을 위해 그 시간을 활용한다.


그러다 어느 순간 핵심이 무엇인가? 이 아이들은 수능문제 하나를 더 맞추기 위해 일분일초를 써야 하는 그 과정을 힘들게 헤쳐나가고 있는데 나 역시 일타강사처럼 핵심 딱 하나만 이 아이들에게 건져 떠먹여 준다면 뭐가 좋을까 찾아보니 답이 나왔다.


결국 노콘 노섹 아닌가?


피임이란 교제의 단계부터 자연스럽게 논의되고 합의하는 영역이 돼야 한다.

관계에 대한 동의 과정엔 반드시 피임에 대한 합의가 들어가야 한다. 콘돔을 쓰면 임신과 대부분의 *STD를 막아준다. 무엇보다 여성에 대해 성관계 이상의 침범은 하지않겠다, 원치 않는 임신에 대한 부담을 주지 않겠다는 매너와 태도를 갖추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그렇다면 피임법은 많고 더 직접 관련이 있는 여성이 피임하면  되는데 굳이 남성이 콘돔으로? 란 질문을 던질 수도 있다.

인성과 태도의 측면에서도 그렇지만 피임의 방법론과 실용성, 비용의 측면에서도 남성의 피임이 더 쉽고 경제적이고 성공률도 높다.

교수자의 입장에서는 가장 쉽고 빠르게 핵심에 도달해서 교육의 성과가 보이는 방법을 고민한다. 그럼 결국 또 성교육은 피임의 당위와 방법론에 도달하고 콘돔사용법을 가르쳐야만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남학생에게는 책무성, 즉 사랑하는 과정에서 소통과 협의라는 측면에서, 여학생에게는 권리, 즉 상대방에게 그것을 요구할 수 있는 권리 측면에서 콘돔 사용 방법론을 교육하게 되는것이다.



기혼이든 미혼이든 남성은 상대방과 다른 합의나 별다른 임신 계획이 없다면 피임에 대한 책무를 이해하였으면 좋겠다. 여성은 그런 책무를 거부하는 사람과는 더 이상 관계를 발전시키지 말았으면 좋겠다.


생의 주기중 내 교육 대상자들인 청소년기에 속해 있는 아이들에게 그 어떤 것보다 중요한 것은 자신의 몸과 마음이고 그 몸과 마음이 내키지 않는 관계는 절대로 맺지 않는 것이 자신을 사랑하는 방법이란 걸 알 주고 싶다. 그러므로 상대방에 강요할 수도 없고 강요받아서도 안된다는 사실을 떠먹여 주고 싶다.


내가 하는 주장이 일타강사의 한마디처럼 요약되어도 그것이 파장을 일으키거나

아니 이럴 수가? 공교육 교육 과정에서 저런 주장을 한다고? 이거 이거 말세로다 말세야 하는 반론이 아닌, 이제는 우리도 이런 걸 좀 터놓고 이야기해봅시다! 하는 담론이 생겨나길 바란다.


저 아이들의 삶에서 행복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는 자신과 상대를 사랑하고 인정하고 존중하는 인식과 태도, 그리고 그것을 실천하는 실질적 방법론들을 알아가는 과정이란 것을.


라떼는 나와 타인을 존중하는 방법론으로서의 피임교육을 못 받았다. 사랑하기, 관계 맺기, 수정과 생명탄생이라는 이 모든 놀랍고 아름다운 과정을 알려주고 앞으로의 삶에서 이 놀랍고 아름다운 일들을 맞이할 때 어떤 태도를 가지고 어떤 준비를 해야 하는지 정보를 주는 선생님은 없었다.

그때의 일타강사적 핵심은 관심 끄고 공부나 해라 그리고 여학생들은 순결 하라로 요약된다


그래서 나조차도 어쩌면 무지했고 터부시 했을지도 모른다. 이제는 나 먼저 라떼를 버리고 계속 주장하여 마침내 그게 당연한 건데 뭐 그런것까지 주장하나요? 라는 피드백을 얻어내고싶다.




*1.STD- sexsually transmitted disease   성접촉으로 퍼질수 있는 질병 /우리나라는 치료의 목적으로 검사받을시 건강보험적용됨

*2.인공임신중절- 한국보건사회 연구원의 발표에 따르면 2019년 헌법재판소의 낙태죄 헌법불합치 선고 이후 3년간 인공임신중절 경험률은 4% 감소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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