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디프로필을 찍자는 게 아니라요.
나도 몰랐는데
나는 갱년기가 시작되었다.
내 육체가 전 같지 않다는 걸 받아들이는 건
슬프다.
나도 반짝일 때가 있었다.
뭘 입어도 태가 나고 야근을 해도 쌩쌩하던 시절이 있었다.
고기와 술에 취해 살아도 근심걱정이 없던 내 몸의 태평성대 시절은 그런데 지난 줄도 모르게 지나버렸다.
운동을 따로 하거나 운동의 중요성을 느꼈던 적은 없다.
이십 대엔 취업을 위해 애를 썼던 것 같다. 삼십 대엔 기혼생활 유지와 육아를 위해 애를 썼다.
남들 사는 데로 살았는데 돌아보니 나도 사십 대가 되고 마흔의 나이에 맞는 몸이 되었다.
마흔의 나이에 맞는 몸이란 게 우습지.
무언가를 이루기 위해 애쓸 때에 몸은 그 애를 쓸 수 있도록 건강했는데
내가 내 몸을 갈아야만 집안이 깨끗하게 돌아가고 아이들 입에 밥이 들어가는 시기가 지나고 여유가 찾아오자 비로소 활력을 잃어가는 내 몸이 보인다.
젊음의 시절에도 사실 운동능력이 뛰어난 건 아니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유연성도 없고 근력도 없었다. 늘 기립성 저혈압에 시달려서 서있으면 별이 보이게 어지러운 몸뚱이라 숨이 차는 운동자체를 하기엔 좋지 않아, 숨쉬기 운동과 저작 운동만 하면 된다 하고 살아왔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젊음의 시절에는 젊음만으로 몸과 마음이 유지가 되었었다.
내가 만든 내 우주를 위해 내 젊음을 바친 후 그럼 이제 남은 시간들을 어떻게 써야 할까를 고민할 때 건강에 이상이 찾아온 걸 알았다. 건강검진에서 공복혈당장애 인걸 알았을 때 의사가 내 체중의 5%를 줄이면 혈당 문제는 해결될 것이라고 했다. 사실 몸이 건강하지 않다는 걸 인지하기 전부터 내 마음의 건강에 더 먼저 불이 켜지고 마음이 더 많이 피로해지고 힘들어진걸 어렴풋이 느꼈다.
그제야 운동을 해야 한다는 걸 실감했다. 앞으로 살아갈 에너지를 얻기 위해, 운동을 해야 한다.
지금까지 수고하고 애써왔던 나의 몸과 마음에 내가 보답하기 위해 운동을 해야 한다.
그런데 엄마 직업을 가진 사람의 시간은 내 시간인데 내 시간이 아니다.
퇴근 후 또 다른 출근을 해야 하는 사람은 운동할 시간을 빼기 힘들다.
퇴근 후 애들 밥을 먹이고 설거지를 하고 나면 일단 뛰러 나가려는 나에게 왜 이렇게 진지하냐, 지금 몸 딱 좋다, 네가 바디 프로필을 찍을 것도 아니고 몸 만들어서 누구한테 보여줄 것도 아닌데 지금의 몸이 나는 좋으니 더 뺄 필요 없다라고 말하는 남편의 말을 해석하자면, 당신 그대로가 좋아 예뻐는 네가 애들 두고 운동하러 나가면 그 시간에 내가 애들을 봐야 하는데 그건 억울하다. 당신이 그렇게 진지하게 몸에 쓰는 시간을 육아와 가사에 써주면 좋겠다 네가 그 시간을 니 몸에 쓴다면 나는 그 시간을 애들을 위해 써야 하는데 그게 힘들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겠지.
하지만 이제는 더 이상 물러설 수가 없다.
나도 살아야 한다.
바디 프로필을 찍을 만큼 멋진 몸을 가지고 싶어서가 아니고, 남편 너 놈 한테 잘 보이고 싶어서는 더더욱이나 아니다! 퇴근 후 하루에 한 시간, 그 시간은 이제 내 남은 인생의 나머지 부분을 내 아이들과 가정에 더 쏟아붓기 위해서 반드시 써야 하는 시간이다.
갱년기를 겪으며 이후에도 살아가기 위해서
이제 내 반짝이는 시절은 다 가고 스러지는 시절만 남았구나가 아니라 20,30대 때랑은 또 다른 깊이 있는 스파클링을 위해서
무엇보다도 하루하루 그냥저냥 남들처럼 그냥 그렇게 버티는 인생이 아니라는 걸 가르쳐주고
내가 나를 사랑하고 내 몸과 마음을 돌본다는 걸
뼈저리게 느끼게 해주는 하루에 한 시간.
사십 대의 운동은 그렇다.
줌바를 하며 콧물과 침까지 흘릴 때도 있었고
안 펴지는 몸으로 기기괴괴한 요가 동작을 흉내만 내기도 한다.
산에 올랐다가 막걸리만 잔뜩 먹고 얼큰 취해서 하산하기도 한다.
줄넘기를 하다 어이쿠 내 도가니뼈 큰일 났네 싶어 좌절하기도 한다.
기안 84가 뛰는 모습을 보고 눈물을 흘리며 나도 러닝크루가 되고 싶다고 러닝모임에 나갔다가 심장이 목구멍으로 튀어나올 뻔한 적도 있다.
비싼 필라테스를 하며 이런 게 극락이구나 나도 부유해져서 내 몸에 돈 팍팍 쓰고 싶다 하고 좌절하다가
다음날 동네 강가를 뛰기만 해도 자유롭고 행복하고 활기찬 나 자신을 발견하고 기뻐한다.
마흔이 되면 의혹이 없어질 나이인데 아직도 모든 것에 의혹 투성이이고
삶이란 지리 멸렬하다고 느껴졌다가 그래도 행복했다가
새끼고 남편이고 다 지겨워졌다가
내가 지킨 내 공간과 가정이 너무나 안온하고 아늑해서 눈물에 겨워도 한다.
이런 나를 살게 하고 내일로 나아갈 힘을 얻게 하는 건 내일을 위해서 운동하는 나 자신이다.
빙빙 돌아가는 회전 목마처럼, 영원히 계속 될것처럼~ 사는게 인생이지만 회전하는 축의 에너지는 사람마다 다 다르고 어느순간 멈춰버릴 수도 있다. 나에게 앞으로의 회전축은 운동하는 내가 되지 않을까 싶다.
운동이란 게 바디프로필용이 아니라 생존용이 되는 시기. 사십 대의 나는 또 이렇게 지금을 살아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