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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이박는 것의 딜레마

노동가(勞動歌)

by 문송한 글쓴이

회사에서 완벽한 수평 관계는 존재하지 않는다. 법인등기부등본에 모두가 대표로 등재될 수 없는 것처럼 회사 안에는 최소한의 직급이 존재한다. 수직적인 관계 속에서 관계의 우위는 한쪽으로 쏠려있다. 보통 상위에 있는 사람은 하위에 있는 사람에게 일방적으로 권력을 행사할 수 있다. 그 형태는 인사이동을 시키는 것일 수 있고, 고과를 매우 낮게 주는 것일 수도 있다. 하위에 있는 사람이 그 권력의 행사에 대응할 수 있는 수단은 많지 않다. 보통 그 상황을 수용하거나, 도망치거나, 저항하거나 하는 세 가지 선택지 정도이다.

상위에 있는 존재가 행사하는 권력이 합리적인 경우는 상황을 수용하면서 살아간다. 하지만 상위에 있는 존재가 행사하는 권력이 부당할 경우에는 문제가 된다. 수용 불가능한 상황에서 우리는 억지로 참아내거나 도망치거나 들이박는 선택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부양가족이 있고, 이직하기 힘든 상황이라면 도망치는 선택지는 우리에게 쉽지 않은 선택지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억지로 상황을 참아내거나 들이박는 것이다. 그리고 보통의 우리 같은 사람들은 처음에는 상황을 억지로 참아내는 선택을 하다가 한 번씩 "들이박을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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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이박는 생각을 하면서 마주하는 첫 번째 딜레마는 상황이 진짜 부당하냐는 것이다. "부당"의 정의는 사람마다 다르다. "부당"한 지시가 위법이라면 명확히 부당한 지시가 되지만 그 외의 애매한 영역의 "부당"일 경우 문제가 된다. "블로그를 쓴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대표, 임원, 부장에게 보고하는데 각각 다른 양식으로 따로 만들라고 한다면 굉장히 비효율적인 일처럼 보인다. 이것은 부당한 지시라고 볼 수 있을까? 회식 자리에서 직장 상사가 소주 딱 네 잔을 강권해서 마셨다면 이것은 부당하다고 볼 수 있을까? 상황을 부당하게 본다면 아량이 좁은 소인배가 될 수 있고, 무조건 긍정적으로 생각하다가는 호구가 되어 버린다.

상황이 적어도 내가 판단하기에 부당하다면 우리는 두 번째 딜레마에 부딪히게 된다. 들이박는 선택을 하게 되면 순간적으로는 후련하지만 동료들 특히 상사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지 못하는 사회성 없는 구성원으로 찍힐 수 있다. 우리 몸에 암이 발생하면 암을 제거하는 과정에서 근처의 정상적인 조직도 어쩔 수 없이 같이 도려내는 것처럼 조직 관점에서도 들이박은 당사자가 된다면 본인이 정상적인 구성원이라도 같이 도려내어질 수 있다. 본인이 보기에 부당한 상황에서 들이박지 않는 경우는 호구가 될 수 있다. 이 정도로 자극을 하고 선을 넘었는데도 불구하고 아무런 반응이 없으면 더한 지시도 가능하다는 인식을 만천하에 공표하는 셈이 된다. 결국 우리는 회사생활을 하는 매 순간 들이박는 것과 참는 것 사이의 딜레마에서 이익과 손해를 따지면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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