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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ather Nov 20. 2018

마케터는 의미를 만든다.

콘덴싱 만드는 게 지구를 지키는 일이라면 


경동나비엔의 보일러 광고를 좋아한다. 미세먼지의 주원인인 질소산화물과 온실가스의 주범 이산화탄소를 크게 경감시키는 - 그렇다고 한다 - 콘덴싱 보일러의 친환경성을 주요 메시지로 한 ‘콘덴싱이 옳았다’ 캠페인 중 하나인 이 광고는 한 남자아이의 씩씩한 목소리로 시작된다. 


우리 아빠는요~ 지구를 지켜요
실제로 이 광고는 2017 올해의 광고상 TV CF부문 대상을 받았다고. 


나무를 심고, 북극곰을 살리고 지구를 지키는 아빠의 직업... 대체 뭘까? 


선생님이 정말 궁금한 표정으로 아빠 뭐하시니 묻자 "콘덴싱 만들어요!"라고 당차게 말하는 아이. 콘덴싱 보일러를 만드는 게 지구를 지키는 일이라고? 아이의 당당한 목소리를 통해 들려오는 메시지라 그런가 황당하기보단 끄덕이게 된다. 웃음이 난다. 경동나비엔이 하고 싶은 메시지는 그렇게 동심의 의외성과 엉뚱함으로 무방비 상태의 소비자들의 마음속에 들어앉는다. 


경동나비엔의 말대로라면, 우리가 하는 일은 또 다른 의미로 어딘가에 기여하거나 영향을 미치고 있을 것이다. 마케팅을 하고 있는 나는 '사람의 마음을 훔치는 일'이 그것일 수 있다. 무언가를 훔친다는 건 결코 아름답지 않지만 마음을 훔친다는 건 얼마나 낭만적인지. 그런데 그보다 내가 더 좋아하는 내 직업의 정의는 이것이다. 의미를 만드는 일. 광고인 이현종 CD의 저서 '心스틸러'에 이런 문장이 나온다. 

 

광고는 어떤 관점에서 잊히지 않는 의미를 만들어내는 일이다. 아무것도 아닌 것을 특별한 것으로 만들기이며, 보이지 않던 것을 보이게 만들기이며 어제까지 아무 관계도 없던 것들을 지금부터는 없어선 안 될 관계로 만드는 일이다. 그런 점에서 '인간 존재를 핵심적으로 관통하는 것은 권력의지도 아니고 쾌락의지도 아니고 바로 의미의지이다'라고 말한 빅터 프랭클의 통찰은 의미심장하다. 사람이 산다는 것은 '의미'를 산다는 것이다. 살아야 할 이유와 의미가 삶을 지탱한다는 말이다. 그리고 인간에겐 그런 의미를 찾고자 하는 본능적 의지가 작동하고 있다는 통찰이다.
- 心스틸러, 이현종 


물론 나는 광고인은 아니다. 하지만 내가 담당하는 브랜드와 상품의 크고 작은 캠페인이나 광고를 기획하고 제작하고 배포하는 모든 과정에 관여한다. 스토리를 기획할 때도 있고, 카피를 쓸 때도 있다. 꼭 광고를 만드는 일이 아니더라도 마케터는 소비자에게 새로운 의미를 깨닫게 하는 일을, 몰랐던 의미를 되새기게 하는 일들을 하고 있다고 믿는다. 잊히지 않는 의미를 만들고, 아무것도 아닌 것을 특별한 의미로 만들고, 보이지 않던 것을 보이게 만드는 일을 해야 한다고 믿는다. 


수많은 볼펜들 사이에서 153이 적혀 있는 모나미 펜을 선택하는 소비자 A, 아이폰 4를 다 쓰면 아이폰 5로, 아이폰 5에서 다시 7로... 계속해서 애플의 아이폰을 쓰는 소비자 B, 비싸더라도 프라이탁의 가방만을 고집하는 소비자 C... 모나미와 애플, 프라이탁이라는 브랜드가 이들에게 각각 특별한 의미로 각인되었기에 나타날 수 있는 현상이다. 물론 이런 현상은 브랜드가 가진 '팩트'가 무엇이냐에 따라 쉽게 나타날 수도, 절대 나타나지 않을 수도 있다. 좋은 팩트를 가진 브랜드를 담당하는 마케터들은 한층 수월할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브랜드의 '팩트'를 소비자들에게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그렇다면 '새로운 시대의 광고'는 어떻게 만들어야 할까? '말'이 아닌 '아이디어'로 소통해야 한다. '이미지'를 가지고 생각해야 한다. 고도로 압축된 언어를 써야 한다. 진실을 '흥미진진하게' 만들어야 한다. 대형 망치로 때려 박을 것이 아니라 '공손한 설득'으로 메시지를 포장해야 한다. 단순한 판매가 아니라 '평판'을 만들어가는 중임을 자각해야 한다. 제품 퍼스낼리티를 창조해야 한다. 광고 하나하나를 그저 오늘 하루를 위한 것이 아니라 비즈니스의 수명이 다할 때까지 허물어지지 않는 '벽돌'로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 자신'이 되어야 한다. 감히 남들과 다를 수 있어야 한다. 내가 하는 모든 일에 내 개성을 투영해야 한다. 
- 카피공부, 헬 스테빈스 


그렇다. 아이디어와 이미지를 흥미진진하고 공손하게. 오늘 하루만이 아니라 비즈니스의 수명이 다할 때까지 허물어지지 않는 벽돌을 쌓는다는 마음으로 진실된 아이디어와 이미지를 차곡차곡 쌓아가야 한다.


물론 '진실된' 것만을 전달하기란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이 역시 브랜드가 가진 '팩트'가 무엇이냐와 맞닿아 있을 것이다. 적어도, 거짓말하는 마케터가 되기는 싫으니까 마케터에게 그(녀)가 담당하는 브랜드의 '팩트'는 정말 중요하다. 없는 사실을 지어낸다거나, 거짓말을 해야 하는 건 최악이다. 결국 소비자가 알게 될 테니까 말이다. 


다른 직업도 마찬가지겠지만 특히 마케터의 일은 한마디로 정의하기 어렵다. 그만큼 넓은 스펙트럼을 가지는 일이기 때문이다. 아주 사소하고 짜치는 일부터 끝없이 고민하고 고민해서 생각해 내야만 하는 크리에이티브 작업까지. 그 모든 업무를 하나의 문장으로 정의한다면, 그게 바로 의미를 만드는 일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문득 김춘수의 시 '꽃'이 떠오른다.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던 그가, 나로 하여금 이름이 불린 뒤 꽃이 되었다는 이야기. 나와 당신 같은 마케터들이 브랜드와 상품의 의미를 만드는 일이 바로 이런 것 아닐까. 



PS. 나도 지구를 지키고 싶은데, 미세먼지에 갇혀버린 대한민국을 지키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될까. 진심 고민된다. 콘덴싱 보일러 만드는 분들 말고 우리도 모두 지구를 지킬 수 있는 사람들이 되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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