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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ather Nov 11. 2018

아는 '갑'과 모르는 '깝'

멋진 갑과 을이 되는 방법. 


인하우스 마케팅 담당자는 크게는 두 부류로 나뉘는 것 같다. 알고 시키는 갑과 모르고 시키는 깝.


마케팅 경력이 꽤나 되는데도 기본적인 마케팅 업무 하나 스스로 못하는 사람들이 후자에 속하는데 그들은 대행사에 프로젝트 하나를 통으로 넘기고 그 과정에 스스로를 철저히 배제시킨다. 프로젝트가 준비되고 실행되는 과정엔 관심이 없고, 그저 중간보고나 최종 결과보고만 잘 받으면 되는 것이다. 


(이 글을 쓰는 계기는 실제로 얼마 전 이런 '깝'을 만났기 때문이다. 경력이나 거쳐온 회사의 네임밸류 대비 말도 안 되게 아무것도 모르는 마케터 말이다.)


대체로 인하우스 마케팅팀은 브랜드의 규모와 해야 할 일에 비해 인력난에 시달린다. 그러다 보니 그 회사에 속하지 않은 대행사 직원들에게 일을 부탁해야 하는 경우가 정말 많다. 지난 회사에서도 매출 2000억이 넘는 브랜드를 나 혼자 맡아서 했으니 각 분야 대행사의 담당자들이 우리 브랜드를 위해서 일해주지 않았다면 시작도 못했을 일들이 꽤 된다. 


지금 회사에서도 매달 여러 개의 콘텐츠를 '제작' 해야 하는데 촬영 대행사 분들과 포토그래퍼, 스타일리스트를 비롯한 촬영 스태프들이 없다면? 상상만 해도 손이 떨린다(ㅎㅎ). 마케팅 담당자에게 기획할 수 있는 권한과 기회가 있다면 그 기획을 더 멋지게 디벨롭해서 실제로 구현되게 하는 능력은 대행사와 스탭에게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인하우스 마케팅팀에 있다 보면 대행사 담당자들을 그 분야의 전문가라고 생각하기보다 '내 일을 대신해주는 사람'이라고 생각할 때가 있다. 물론 대행사도 담당자 나름이기는 하다. 프로페셔널한 애티튜드와 실력으로 일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으니까. 전자와 일하는 경우에는 저절로 존경심이 뿜어져 나오고 주책맞게 질문이 많아지지만 후자를 만나면 매일매일 쓴소리를 하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결국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어쩔 수 없이 갑을관계여야만 하는 우리가 각자의 자리에서 프로페셔널한 모습을 보여줬으면 한다는 거다. 물론 나도 너무 부족한 부분이다. 그래서 늘 공부하려고 노력하지만 잘 되지 않을 때도 많다. 그럴 땐 정말 대행사에 솔직하게 고백한다. "제가 진짜 몰라서 그러는데, 이거 어떻게 해야 될까요?"와 같은. 


아무것도 모르면서 깝치는 마케터가 되지 않기 위해 내가 하는 노력은 부끄럽더라도 질문을 하는 것과 함께 일하는 파트너로서 그들의 어드바이스를 주의 깊게 듣는 것이다. 지금 나와 함께 일하는 대행사 담당자들은 대부분 나보다 어리고 경력도 얼마 안 됐지만 그들을 믿어보려 한다. 


반대로, 대행사에서 일하고 있다면 '머리는 마케팅 담당자가 쓰시고, 전 그냥 몸만 움직일게요.'라고 생각하는 게 눈에 보이는 담당자가 되지 않았으면 한다. 내가 제안하기 전엔 먼저 제안하지 않고, 내가 반문하기 전엔 자료에서 잘못된 게 뭔지도 파악하지 못하는 건 정말 별로다. 견적서 안에는 늘 기획비를 청구하면서 실제로 프로젝트가 시작되면 크리에이티브가 아예 없는 담당자들에게는 어쩔 수 없이 쓴소리를 하게 된다.


그렇다면 나는 대행사 담당자들이 보기에 부끄럽지 않은 담당자일까? 나 스스로 부끄러운 갑이 되지 않으려 어떤 노력들을 하고 있는지 적어보니 대략 이 정도가 되지 않을까 싶다. 





1) 전화로 대충 설명하지 말고 분명한 가이드(*RFP)를 작성해서 주자. 

마케팅 목표와 목적, 이 프로젝트에 쓸 수 있는 비용(예산), 참고할 내용과 유의사항, 데드라인들에 대한 가이드가 없이 일을 시키는 건 너무 모험이다. 


2) 내가 생각한 방향성과 레퍼런스를 꼭 전달하자. 

담당자로서 내가 생각하는 방향성과 예시 레퍼런스, 이게 별로라면 과감히 무시해도 된다는 코멘트까지 넣어서 보낸다. 


3) 요즘 업계에서 화제가 되는 플랫폼이나 캠페인에 대한 여론을 공유하자.

대행사에서 업무에 치여 체크하지 못했을 수도 있으니, 업계에서 화제가 되는 마케팅 뉴스나 이슈를 공유해서 우리가 적용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서도 고민해달라는 말을 덧붙인다. 


4) 중간, 최종 결과물들에 대한 정확한 피드백을 주자

별로인데 좋은 척, 좋은데 별로인 척하지 말고 솔직하고 적확한 피드백을 주려는 노력. 내가 좋더라도 회사에서는 싫을 수 있으니 담당자 개인의 의견인지 회사의 의견인지에 대해서도 분명할 필요가 있다. 또 프로젝트가 끝나고 실제 이 프로젝트가 어떤 결과를 낳았는지에 대해서도 어떤 식으로든 결과를 공유해주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 매출이 늘었다거나 하는 등의.





마케팅을 갓 시작한 사람들이 하는 큰 착각 중에 이게 하나 있다. "나는 잘나서 인하우스에 있고 너는 못나서 대행사에 있구나"와 같은 착각. 막상 일을 하다 보면 진짜 실력자들은 대행사에 더 많다. 나는 내가 계속 '겉핥기'만 하고 있는 것 같아서 스스로 두려울 때가 있다. 정말 잘 아(하)는 대행사 사람들을 만날 때 부끄럽기도 하고, 그들과 미팅을 하고 일을 하면서 내가 더 배우게 될 것들에 대해 설렐 때도 많다.


물론 인하우스에서 일하는 건 또 다른 난이도이기 때문에 절대 자학하는 건 아니다. 내가 다니는 회사에 내 자리가 있다는 게 정말 감사하다는 생각을 요즘 들어 더 자주 한다. 갑은 갑대로, 을은 을대로 자기의 자리가 있는 거니까. 난 그저 내가 그 자리에 앉아있기 부끄럽지 않은 사람이 됐으면 좋겠다. 나중에 아무것도 모르는 깝으로 기억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새로운 프로젝트를 위해 여러 대행사를 만났던 주. 한 분야에서 오랜 시간 실력을 쌓아온 분들과의 미팅은 업무로 인해 만났다기엔 참 값지고 흥미로운 대화의 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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