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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ather Nov 07. 2018

너무 쉽게 불리는 마케팅의 말

마케팅 용어의 오용과 남용


점심을 먹고 자리에 돌아왔는데 오전에 sns에 올려두고 간 이벤트 ‘티저’ 때문에 한바탕 난리가 났다.


올 상반기부터 예고됐던 이벤트의 본격적인 ‘이슈 메이킹’ ‘붐업’을 위해 ‘적극적인 티징’을 하라는 미션을 받은 나로서는 갑작스러운 태세 전환이 매우 당황스러웠지만 급히 게시물을 삭제했다.


마케팅을 하면 할수록 느끼는 건, 정작 마케팅을 하지 않는 타 부서 사람들이 마케팅 용어를 더 많이, 쉽게 쓴다는 것이다. 마케팅을 업으로 삼는 나로서는 결코 쉽게 내뱉을 수 없는 말의 무게를 그들은 체감하지 못하니까.


이 일을 하면서 만난 많은 사람들에게서 - 영업은 물론이고 전혀 상관없는 관리부서의 분들조차 - 이런 말을 자주 들었다.


“내가 예전에 마케팅해봤는데 말이야...”


또 무엇이 있을까. 마케팅을 하지 않는 사람들이 쉽고 가볍게 던지는 마케팅의 말들.






쉽게 던지는 말 하나.

이슈 메이킹(Issue Making) 해야죠

사람들은 하나의 이야기가 이슈가 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고민이 필요한지, 또 그 고민이 사회와 세대의 트렌드를 얼마나 잘 아우르고 있어야 하는지, 마케터들에게 주어진 예산과 시간은 얼마만큼인지 관심이 없다. 이슈화가 잘되면 잘 만든 상품 덕분, 실패하면 마케팅을 들먹인다.


최근 가장 화제가 되고 있는 마케팅 이슈가 무엇일까? 원테이크로 찍으면서 NG를 100번 이상 냈다는 내셔널지오그래픽의 롱 패딩 광고? - 개인적으로 멋지다고 생각하는 광고다 - 이 광고 역시 수많은 사람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분주하고 치열하게 계산하고 준비해 탄생한 100개 중 한 개의 성공사례일 텐데 설마 쉽게 만들어졌다고 생각한 건 아니겠지? 아니면 대행사가 다 했다고 생각하려나?


물 들어올 때 노 젓는 홍보.


무심코 던진 돌에 맞는다는 말처럼 이 땅의 많은 마케터들은 이슈화라는 말에 치여 ‘기획하는’ 것이 아니라 ‘기획을 당하는’ 사람이 되고 있는 것 같다.


(이슈화와 함께 팝업과 콜라보, 유튜브 등등등 우리에게 던져지는 다양한 외국어들... 참 많다.)


쉽게 던져지는 말 둘.

티징(Teasing) 언제 들어가나요?


얼마 전 상품기획자가 이미 출시된 제품을 sns에 언제 ‘티징’ 해줄 거냐고 물어왔다. ‘이미 출시된 제품의 티저를 올려? 말이 안 되잖아.’ 하고 생각하고 그냥 넘어가려다 잘못된 표현임을 확실히 짚어주는 회신을 보냈다.


이젠 너무 자주 들어서 포스팅보다 익숙한 말이 되어버린 티징. 티저를 올리다, 정도로 생각하면 될까. 어쨌든 내가 다니고 있는 회사에선 그런 뜻으로 쓰인다.


본래 티저란 말은 호기심을 자극하기 위해 상품명을 알리지 않는 광고에서 유래한 용어로 본편 광고가 방송되기 전, 혹은 상품이 소비자들에게 정식으로 공개되기 전에 올리는 짤막한 광고나 영상물을 말한다.


나는 sns 콘텐츠를 담당하는 사람이니 정식 론칭일 전에 올리는 sns 콘텐츠를 티저 혹은 티징 콘텐츠라 부르는데, 이 티저에 대한 요구가 어느 순간부터 참 많다. 론칭일 지키기에도 빠듯한 와중에 사전에 호기심을 자극할 준비까지 해야 되니 쉽지 않은 게 사실이다.


아쉬운 건, 티저의 목적인 ‘호기심 자극’을 위해서는 티저를 올리는 최적의 타이밍과 그 내용을 심혈을 기울여 고민해야 하는데 대부분은 그냥 빠르게, 여러 번 올리는 것이 티저라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아직 대리 나부랭이일 뿐이지만 마케팅을 하면서 항상 느끼는 건 잘 된 마케팅은 분명 엄청난 고민 끝에 완성된다는 것이다. 나 역시 마케팅 기획안을 만들거나 콘텐츠 아이디어를 짤 때 오래 고민했을 때와 그렇지 않을 때 확연한 결과물의 차이를 느꼈다.


그러나 요즘은? 깊은 고민을 할 여유가 없다. 또 다음 아이템의 티저를 찍기 바쁘니까.



쉽게 던져지는 말 셋.

이게 다 주력상품(Key Item)입니다


마케팅을 하려면 꼭 필요한 것, 바로 브랜드의 시즌별 Key 아이템이다. 특히 나처럼 sku가 엄청나게 많은 패션회사에 몸담고 있는 마케터들은 그 모든 상품을 다 알릴 수 없기 때문에 마케팅에 주력해야 할 아이템을 찾게 된다. 그러나 상품기획자들에겐 자신이 기획한 제품의 80-90퍼센트가 다 주력상품. ‘버려야 산다’는 말이 통하지 않는 대목이다.


인력부족과 케파를 핑계로 레알 주력상품만을 추려달라고 몇 번을 요청해야 하는 과정. 그런 과정이 몇 번씩 계속될수록 한 시즌에 딱 몇 개의 주력상품만 출시되어서 그 상품에 집중할 수 있는 분야 - 가 어디인가요? - 는 어떨까? 하는 생각을 많이 한다.


어쨌든 나를 포함해 무언가를 기획하는 사람들에겐 버릴 수 있는 용기와 추릴 수 있는 확고한 기준이 필요하다. 이제 정말 ‘진짜 중요한 상품’에 집중 또 집중하고 싶다.






한 달 전부터 호들갑을 떨며 준비했던 콘텐츠의 대부분을 쓸 수 없게 됐다. 변수는 늘 모든 준비가 끝나고 나서야 생긴다. 이 또한 지나가리, 의 마음으로 초연 해지는 연습을 하는 중이라고 생각하며 또 다른 콘텐츠 제작에 돌입해야겠다. (마케터는 정신승리가 필요한 직업)


그나저나. 내일은 또 무슨 변수를 만나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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