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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ather Dec 24. 2018

고작 4.7인치의 세상

어느 SNS 담당자의 고백

“인생은 모니터 속에서 이뤄질 수 없다”
- 에릭 슈미트 전 구글 회장


새해를 코 앞에 두고 올 한 해를 돌아보며 나의 인생에서 가장 많은 지분을 차지했던 것은 무엇인가 생각해봤다. 우습게도 가장 먼저 떠오른 답은 인스타그램이었다. 오늘까지 내 인스타그램 게시물은 4,410개다. 정작 팔로워 수는 게시물 수 10분의 1도 안되지만. 


인스타그램을 시작한 건 한국에서 활성화되기 전인 2011년부터다. 한 달 간의 유럽 여행을 보관해둘 플랫폼을 찾던 중 정방형 레이아웃의 신선함에 꽂혀 인스타그램을 시작하게 됐다. 그렇게 벌써 7년이 지났지만 많은 이들의 예상을 깨고 인스타그램의 열기는 아직 식지 않고 있다. 


나 역시 지치지도 않고 여전히 내 하루의 대부분을 인스타그램을 통해 공유한다. 또 수시로 타인의 일상을 들여다본다. 문제는 그로 인해 뺏겨버리는 시간이 꽤나 길다는 것. 어떤 날은 집에 오자마자 씻지도 않고 소파에 앉아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 유튜브를 번갈아 들여다보다 의미 없이 하루를 마감한다. 어차피 집에 와도 4.7인치 스마트폰만 들여다보다 자는데 넓은 집이 왜 필요한가 싶을 때도 있다. 


Social Network Service의 약자인 SNS는 말 그대로 사회관계망을 구축하는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지만 요즘엔 개인 또는 단체의 이미지 과시, 명성 관리에 더 집중적으로 소비되고 있는 것 같다. 이제 브랜드는 공식 홈페이지가 아닌 SNS로 많은 것을 이야기한다. 팔로워 수나 좋아요 수, 댓글 수 등의 수치들로 '저희 이렇게 잘 나갑니다.'라고 말한다. 브랜드의 SNS를 운영/관리하는 나의 성과 측정 역시 그런 수치들을 통해 이뤄진다. 


개인도 다르지 않다. 올 한 해도 무언의 과시가 담긴 수많은 사진과 영상들로 인스타그램 피드는 쉴 새 없이 바빴다. 나를 비롯한 SNS 유저들은 페북이나 인스타 피드를 통해 'SNS 전용 인생'을 만들어왔다. 특히 요즘은 인스타그램 팔로워 수로 개인의 명성이나 영향력을 가늠한다. 그곳에서 쌓인 명성으로 개인이 브랜드가 되는 일도 다반사다. 팔이피플이라는 말이 생겼을 정도이니까. 


* 팔이피플: 팔이’와 ‘사람’의 합성어로 SNS마켓의 판매자를 일컫는 속어


친구들을 만나 대화를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그런 SNS 속 유명인들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때가 있다. TV만 보고 자라던 시절엔 몰랐던 유명인의 사생활 - 집, 차, 들고 있는 가방과 여행지에서의 동선 - 을 너무 쉽게 접하게 된 우리에게 그들은 동경의 대상인 동시에 질투의 대상인 것이다. 


그래서일까. 동경도 질투도 하기 싫어질 땐 SNS와 완전히 단절된 삶을 꿈꿔본다. 스마트폰과 멀어진 삶이 곧 속세와 떨어진 자연인의 삶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 현실은 하루 종일 스마트폰을 붙들고 살고, SNS로 밥 벌어먹고살지만 말이다.  


실제로도 나와 같은 많은 사람들이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 앱을 지웠다 깔았다를 반복하며 '소셜 블랙아웃'에 도전 중이라고 한다. 하지만 인간의 호기심이나 과시욕은 생각보다 더 지독해서 디지털 디톡스는 레몬 디톡스보다 훨씬 더 지속하기 어렵지만 말이다. (과거에 레몬 디톡스를 4일 동안 한 적이 있다. 그리고 그 4일 동안 삶의 모든 의욕을 상실했었다.) 


* 소셜 블랙아웃: 소셜 미디어를 완전히 차단한 상태 

* 디지털 디톡스: 스마트폰·컴퓨터 등을 전혀 사용하지 않는 디지털 단식 상태


생각해보면 우리는 스마트폰을 쓰기도 전부터 어떤 방식으로든 자신의 근황을 노출하는 것에 익숙해져 왔다. 내 경우 대학생 시절엔 싸이월드(BGM으)로, 이십 대 중반엔 페이스북으로, 지금은 인스타그램으로 학업과 연애, 취업과 결혼 등 인생의 상태를 꾸준히 업데이트 해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즘은 자주 딜레마에 빠진다. 대체 SNS가 뭐길래?


긴 휴가를 보내고 다시 회사에 돌아가면 SNS 운영 전략과 콘텐츠 계획을 짜야하는 현실이 기다리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해를 맞이하는 나 스스로와 진지한 약속을 해본다. 4.7인치 스마트폰 안에서 빠져나와 더 넓은 세상을 느껴보자고. SNS에서 마주하는 세상이 아닌 내 눈과 내 피부로 만나는 세상을 경험해보자고. 그렇게 진정한 자연인이 되어보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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