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 기업 가치 1위 넷플릭스엔 '규칙'이 없다?
작년 말, 이직을 한창 준비하던 시기에 페이스북으로 우연이 보았던 이미지 하나.
일 못하고 성격 나쁜 동료들이 있어도 - 주로 낙하산 - 그들의 무능함과 무례함을 참고 견디며 일하는 것이 미덕이라고 배웠던 나에게 넷플릭스 CEO 리드 헤이스팅스의 한 마디는 엄청나게 신선한 자극제가 되었다. 높은 수준의 인재들을 선별해 모아둔 회사가 곧 복지가 좋은 회사이며, 그곳이 바로 넷플릭스라는 자신감이 느껴진다.
한 장의 이미지로 시작된 넷플릭스에 대한 궁금증이 <규칙 없음>이라는 책을 주문하게 만들었고, 지금 왜 넷플릭스가 세계에서 가장 핫한 기업인지를 깨달을 수 있었다.
얼마 전 유퀴즈 온 더 블럭에 출연한 김은희 작가는 2011년부터 구상했던 킹덤이 세상에 나오게 된 것은 넷플릭스라는 새로운 플랫폼이 있었기 덕분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과연 넷플릭스는 어떻게 일하고 결정하는 것일까? 지금부터 넷플릭스의 기업 문화와 일하는 방식을 가감 없이 소개하는 <규칙 없음>에서 인상 깊었던 내용들을 소개해보겠다.
일단 이 책은 '목차'만으로도 충분히 흥미롭다.
1장. 비범한 동료들이 곧 훌륭한 직장이다
2장. 자신의 생각을 있는 그대로 말하라(긍정적인 의도로)
3-1장. 휴가 규정을 없애라
3-2장. 출장 및 경비 승인을 없애라
4장. 업계 최고 수준으로 대우하라
5장. 모든 것을 공개하라
6장. 어떤 의사결정도 승인받을 필요가 없다
7장. 키퍼 테스트
8장. 피드백 서클
9장. 통제가 아닌, 맥락으로 리드하라
10장. 이제는 세계로!
목차만 대충 훑어봐도 넷플릭스가 왜 앞서 나가는지, 두각을 나타내는지가 느껴진다.
재능이 뛰어난 베스트 플레이어들이 생각하는 좋은 직장의 조건은 호화스러운 사무실이나 멋진 체육관, 혹은 공짜 스시 같은 게 아니다. 그들에게 중요한 건, 재능 있고 협동심이 강한 사람들과 함께 일하는 즐거움이다. 일을 더 잘할 수 있게 해주는 사람이 필요하다. 모든 직원이 뛰어나면 서로에게 배우고 서로가 의욕을 불어넣어 성과는 수직으로 상승한다. - 1장. 비범한 동료들이 곧 훌륭한 직장이다
이 책을 읽으며 가장 흥미로웠던 부분은 넷플릭스의 피드백 문화였는데, 넷플릭스에서는 대표도 이 피드백을 피할 수 없다고 한다. 넷플릭스는 이 솔직한 피드백 문화가 팀과 회사의 업무 속도와 능률을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한다고 믿는다. 단, 무례한 피드백을 지양하기 위해 4A 피드백을 지키라고 당부한다.
넷플리스 4A 피드백 지침
1. AIM TO ASSIST (도움을 주겠다는 생각으로 하라)
2. ACTIONABLE (실질적인 조치를 포함하라)
3. APPRECIATE (감사하라)
4. ACCEPT OR DISCARD (받아들이거나 거부하라)
- 2장. 자신의 생각을 있는 그대로 말하라(긍정적인 의도로)
또 매우 흥미로웠던 것은 넷플릭스에는 휴가 규정이나 출장 & 경비 승인 절차가 없다는 것이다. 이 책에서 리드 헤이스팅스는 직원에게 휴가를 가고 싶은 대로 가라고 하면 하늘이 무너질 줄 알았다고 고백한다. 하지만 달라진 것은 없었다고 한다. 성과를 내는 이들이 자유롭게 혹은 조금 별나게 휴가를 만끽하는 것을 보고 넷플릭스의 높은 인재 밀도가 이미 양심과 책임 의식을 보장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한다.
직원들에게 자유를 주면, 회사 일을 자기 일처럼 여기게 되어 더욱더 책임 있게 행동한다. 내가 패티와 함께 '자유와 책임, 즉 F&R'이라는 말을 만든 것도 그때였다. 우리에게는 이 두 가지 모두가 필요하지만, 사실 하나를 가지면 나머지 하나는 저절로 따라오게 되어 있다. 그래서 그런 생각을 하게 됐다. 자유는 내가 예전에 생각했던 것처럼 책임의 대립 개념이 아니다. 오히려 자유는 책임을 향해가는 통로다.
- 3-1장. 휴가 규정을 없애라
휴가 규정보다 더욱더 회사에서 강력하게 통제하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단연 '돈'이다. 그러나 넷플릭스는 출장 및 경비 승인까지 없앴다. 물론, 직원들이 자유롭게 스스로를 통제할 수 있도록 맥락을 제시하는 것도 잊지 않는다.
현재 넷플릭스의 출장 및 경비 규정은 다음 다섯 마디가 전부다.
넷플릭스에 가장 이득이 되게 행동하라.
- 3-2장. 출장 및 경비 규정을 없애라.
직장인이 직장을 선택하는 이유 1위는 '연봉'이다. 이는 많은 리서치 조사들을 통해 더욱 분명한 사실인데 넷플릭스는 높은 인재 밀도를 높이기 위해 업계 최고의 대우를 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말한다.
4주 뒤에 열린 연례 회의에서, 래리의 상사인 테드 사란도스는 직원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시장이 한창 달아오른 상태이기 때문에 아마 리쿠르터들로부터 많은 전화가 올 겁니다. 아마존이나 애플이나 페이스북 같은 곳이겠죠. 여러분이 지금 최고의 연봉을 받고 있는지 궁금하다면 전화를 받아 다른 곳에서는 어느 정도의 연봉을 지급하는지 확인해 보세요. 그래서 우리보다 더 많은 돈을 준다고 하면 곧바로 알려주세요." 래리는 놀랐다. "직원들에게 경쟁사와 채용 관련해 이야기를 나누고 인터뷰를 해보라고 등 떠미는 회사는 넷플릭스가 유일할 겁니다."
- 4장. 업계 최고의 수준으로 대우하라
이직하면서 연봉을 20만 원 올렸다는 사람도, 1500만 원 깎였다는 사람도 보아온 나에게 넷플릭스의 이런 통 큰 마인드는 정말 신선하다. 인재를 데려오기 위해서, 또 계속 머물게 하기 위해서 최고 대우를 해주는 게 맞다는 상식이 우리나라의 채용시장에도 당연한 것이 되는 날이 온다면 좋겠다.
고무적인 사실은 현재 한국에서 좋은 실적을 내고 있는 스타트업들은 연봉협상에 있어서 매우 열려 있다는 것 것이다. 내가 다니고 있는 회사 역시 꽤나 높은 인상폭을 제시하여 인재들을 채용한다.
내 목표는 직원들이 자신을 회사의 주인으로 여김으로써 회사의 성공을 위해 자기가 짊어져야 할 책임의 크기를 늘리는 것이었다. 막상 회사의 기밀을 공개하고 나니, 기대하지도 않았던 성과까지 얻을 수 있었다. 직원들이 더욱 현명해진 것이다. 고위 중역들만 접할 수 있던 정보를 말단 직원에게도 알려주면, 그들 스스로 상황을 판단하여 일을 더욱 능률적으로 하게 된다.
- 5장. 모든 것을 공개하라
"이봐요, 테드. 당신이 하는 일은 내 비위를 맞추는 것도 아니고, 내가 찬성할 것으로 생각하는 결정을 내리는 것도 아니에요. 우리 사업에 유리한 결정을 내리는 것이 당신이 할 일이에요. 나라고 회사를 벼랑 끝으로 몰고 가지 않는다는 법이 있나요? 그럴 때 그냥 내버려 두면 안 되죠!
일반적으로, 회사의 상사는 직원들의 결정을 승인해 주거나 거부하기 위해 존재한다. 이것이야말로 혁신을 막고 성장을 더디게 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넷플릭스에서는 매니저가 마뜩잖게 생각하는 아이디어라도 자신이 옳다고 판단하면 실천에 옮기라고 떠민다. 우리는 매니저가 부하직원이나 누군가의 괜찮은 아이디어를 알아보지 못해 뒤로 제쳐놓기를 원하지 않는다. 그래서 넷플릭스에서는 이렇게 말한다.
상사의 비위를 맞추려 들지 말라. 회사에 가장 이득이 되게 행동하라.
- 6장. 어떤 의사결정도 승인받을 필요가 없다
한국 기업의 의사결정 프로세스와는 많이 다른 넷플릭스의 의사결정 프로세스는 이 책을 읽으며 가장 인상 깊었던 것 중 하나다. 넷플릭스에서는 직급 상 가장 위에 있는 사람이 아니라, 그 일에 대해서 가장 잘 아는 담당자(Informed Captain)에게 결정권을 준다. 결코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수 있지만 넷플릭스의 리더들은 맥락만 제시할 뿐 결정하지 않는다.
"뭐 더 논의할 게 있어요? 파울로, 그건 당신이 결정할 일입니다. 내가 뭐 도와줄 일이 있나요?" 순간 벼락에 맞은 기분이더군요. 됐다! 넷플릭스에서는 자신이 내린 결정의 모든 맥락을 공개하는 순간, 기초공사가 끝납니다. 승인은 필요 없어요. 당신에게 달렸죠. 당신의 결정.
- 6장. 어떤 의사결정도 승인받을 필요가 없다
우리는 또한 모든 매니저에게 늘 부하직원을 생각하고 그들이 각자 맡은 자리에서 최고가 될 수 있게 만들라고 격려한다. 매니저들이 나름대로 현명하게 판단할 수 있게 고안한 것이 바로 '키퍼 테스트'다.
팀원 중 한 사람이 내일 그만두겠다고 하면, 다시 한번 생각해 보라고 설득하겠는가, 아니면 속으로 다행이라 생각하며 사직서를 수리하겠는가? 후자라면 지금 당장 그에게 퇴직금을 주고 스타 플레이어를 찾아라. 어떻게 해서든지 지켜야 할 사람을 말이다.
- 7장. 키퍼 테스트
넷플릭스는 최고의 인재에게 최고의 대우를 해주는 회사로도 유명하지만, 성과를 내지 못했을 때 칼같이 내보내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CEO 리드 헤이스팅스의 철학 중 하나를 소개한다면 이렇다.
다른 회사와 다르게, 우리는 다음과 같은 원칙을 지킨다.
적당한 성과를 내는 직원은 두둑한 퇴직금을 주고 내보낸다.
또 다른 표현으로는 '적당히 일해도 퇴직금은 후하다'는 말이 있다. 넷플릭스는 마냥 편하고 좋은 회사가 아니다. 높은 수준의 성과를 요구하고 그에 따른 보상도 해주지만 적당히 일하면 두둑한 퇴직금을 받고 회사를 떠나야 하는 것이다.
2년 전의 그 저녁 시간에, 동료들은 지난 10년 동안 제가 개선했어야 할 가장 중요한 부분을 지적해 주었어요. 저는 곧 상황에 적응했고, 그래서 새로운 차원을 향해 큰 걸음을 뗄 수 있었죠. 저는 상황에 따라 미국인과 프랑스인들의 소통 방식을 번갈아 구사하는 요령을 터득했어요. 물론 쉽지는 않았죠. 하지만 최근에 가진 라이브 360도 평가에서 동료들은 제 소통 방식이 많이 달라졌다며 축하해 주었어요. 월도프의 일은 잊고 싶을 정도로 속상한 기억이지만, 그 일이 없었다면 저는 결국 키퍼 테스트를 통과하지 못했을 겁니다. 그리고 넷플릭스에서도 남아 있지 못했을 것 같아요.
- 8장. 피드백 서클
내가 다니고 있는 회사에서도 360도 평가라는 걸 하는데 아마 미국 기업의 평가 방식에서 따온 게 아닐까 싶다. 넷플릭스는 이 360도 평가를 통해 개인이 더 발전, 성장할 수 있고 나아가 기업이 건강하게 존속할 수 있다고 말한다.
누구에게나 익숙한 방식은, 통제의 리더십이다. 상사는 팀에서 제시한 안건이나 조치나 결정을 승인하고 지시한다. 때로는 실무진의 업무를 직접 감독하여 할 일을 일러주고, 수시로 확인하면서 잘못되면 바로잡아 준다. 그런가 하면 간혹 직접적인 감독을 자제하고 실무진에게 좀 더 많은 권한을 주기도 한다. 하지만 전반적인 절차는 여전히 통제한다. - 중략 - 반면 맥락만 짚어주는 방식은 좀 더 까다롭지만, 실무진에게 상당한 자유를 주는 프로세스다. 상사는 실무자의 업무 활동을 감독하거나 통제하지 않고 팀원들이 훌륭한 결정을 내려 일을 끝낼 수 있도록 모든 정보를 제공한다. 이렇게 되면 실무진 각자의 의사결정 근육이 튼튼해져 이후로도 좀 더 나은 결정을 독자적으로 내릴 수 있다.
-9장. 통제가 아닌 맥락으로 리드하라
우리에게 익숙한 통제의 리더십이 아닌 맥락의 리더십, 넷플릭스가 택한 방식이다. 실무진의 '의사결정 근육이 튼튼해진다'는 표현이 참 와 닿는다. 나의 의사결정 근육은 과연...?
만약 배를 만들고 싶다면
일꾼들에게
나무를 구해오라고 지시하지 마라.
업무와 일을 할당하지도 마라.
그보다는 갈망하고 동경하게 하라.
끝없이 망망한 바다를
나는 이 구절이 무척 마음에 들어서 넷플릭스 문화를 설명할 때마다 인용하곤 하지만, 한편으로 생각해 보면 비현성과인 요구라며 이런 문구에 거부감을 드러낼 사람도 있을 것 같다. 그래서 나는 맥락으로 리드하기 위해 갖춰야 할 세 번째 필요조건을 생각해 냈다. 높은 인재 밀도를 갖추고 오류 방지보다 혁신을 중시하는 것 외에, ' 느슨하게 결합된' 시스템을 유지해야 한다. 이것이 세 번째 조건이다.
-9장. 통제가 아닌 맥락으로 리드하라
넷플릭스는 느슨하게 결합된 시스템을 유지함으로써 합의를 이룬 맥락을 바탕으로 의사결정을 한다고 한다.
중요한 결정권이 실무자 개인에게 있는 느슨한 결합 체계가 진가를 발휘하려면, 목표를 앞에 둔 상사와 부하직원의 의견이 확실하게 일치해야 한다. 느슨한 결합은 상사와 팀원이 맥락을 확실하게 공유할 때만 제 기능을 한다. 이처럼 맥락이 잘 조율된 상태에서는 각자가 조직 전반의 전략이나 임무를 뒷받침하는 결정을 내릴 수 있다. 그래서 넷플릭스에서는 이런 만트라가 존재한다.
목표는 동일하게, 실행은 자율적으로
-9장. 통제가 아닌 맥락으로 리드하라
그리하여 CEO가 최종 결정자가 아닌 가장 아래의 위치에서 큰 목표와 맥락을 짚어주고, 담당자가 최종 결정을 내릴 수 있는 과정에 필요한 길잡이만 전달하는 것이 넷플릭스의 리더들이 맡은 역할이다.
이러한 넷플릭스의 독특한 문화는 넷플릭스를 단순한 콘텐츠 플랫폼이 아니라 작품성 있는 영화(로마)와 다양성이 보장된 다양한 드라마(킹덤, 스위트홈, etc)를 탄생하게 하고 있다. 코로나로 인해 전 세계의 영화관이 패닉에 빠져있을 때 영화들이 택한 차선책 역시 넷플릭스였다.
오늘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에서 화제가 된 강남역 한복판에 추락한 우주선(?) 역시 영화관 개봉 대신 넷플릭스 행을 택한 신작 <승리호>의 광고물인 것으로 밝혀진 만큼, 이제 넷플릭스는 영화와 드라마 시장에서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최고의 투자자이자 제작자, 매체가 되었다.
능력 있는 인재들이 밀도 있게 모여 자유롭게 토론하고 피드백을 주고받으며 최고의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이러한 분위기는 앞으로도 넷플릭스의 안목을 높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시장을 선도하는 기업의 비밀을 이렇게까지 솔직하게 공개해준 넷플릭스가 대단하다 싶지만, 한편으로는 이 모든 걸 다 안다고 모두 넷플릭스처럼 할 수 없다는 걸 알고 있다는 자신감의 표현이기도 한 것 같다. 우리나라에도 넷플릭스 같은 기업들이 더 많아져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