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랜딩] 라이프스타일을 제안한다는 것 !

츠타야 서점을 다녀와서

by 우현수
십년만에 다시 찾은 도쿄


지난 봄에 3박 4일 일정으로 도쿄에 다녀왔습니다. 햇병아리 디자이너 시절인 30대 초반에 갔으니까 거의 십년만이네요. 처음 도쿄를 찾았을 땐 12월이었습니다. 내 마음이 그랬는지, 연말 분위기 때문인지 도쿄는 굉장히 활기차 보였습니다.


애초에 '디자인 투어'라는 테마로 계획한 여행이었기 때문에 주요 경로를 롯본기, 시부야, 신쿠주, 긴자 등 주도심의 쇼핑몰과 편집숍들로 잡았습니다. 아무래도 일본의 최신 디자인과 문화의 경향을 접할 수 있는 곳들이기 때문이죠. 실무 디자인을 하면서 감탄과 부러움의 대상이었던 일본 디자인을 직접 볼 수 있다는 기대감에 첫날부터 피곤한 줄도 모르고 돌아다녔습니다.


도쿄의 첫인상은 낯설지가 않았어요. 주로 도심만 다녀서인지는 모르겠지만, 명동이나 동대문인데 좀 더 세련되고 고급스런 느낌이랄까. 서울과 비슷한 느낌의 건물과 사람들 때문에 더 그랬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자세히 들여다 보면 굉장히 다른면들이 많았습니다. 특히 보도블럭 하나 하나의 디테일이라든지, 도쿄사람들의 감각적이면서도 섬세한 패션 소품들이 그랬습니다. '뭔가 정교하게 조직되고 디자인된 도시구나'라는 느낌이 여행을 할수록 점점 강해졌습니다. 언뜻보기엔 같은 색깔의 커피지만 그 맛과 풍미에는 여러차원의 등급이 존재하는 것처럼 우리와 비슷하지만 좀 더 차원이 높은 곳이라는 느낌이랄까. 더 정교화되고 업그레이드 된 '서울'을 보는 느낌이었습니다.


돌아와서 보니 그 때 찍었던 사진의 90프로 이상이 간판이나 상품의 패키지 등의 디자인 자료더군요. 말 그대로 '관광'이라기 보다는 '견학'에 가까웠다는게 찍었던 사진만 봐도 알수 있습니다. 그 흔한 셀카 한 장 남길 틈도 없이 무척이나 신기하고 흥미로웠나 봅니다. 심지어 먹고 난 녹차 아이스크림 포장지가 너무 예뻐 고이 접어 오기도 했습니다. 집안 어딘가 서랍장 깊은 곳에 지금도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게 십년전의 좋은 기억들이 잊혀져 갈즈음, SNS와 문화매거진 등을 통해 츠타야 서점의 존재를 알게 됐습니다. 남들이 좋다고 무조건 좋아하는 타입은 아니라서, '서점 하나에 사람들이 왜 이리 호들갑이지?'하며 시큰둥했습니다. 하지만 그런 말도 계속 듣다 보면 생각이 달라지잖아요? 이렇게나 사람들을 열광하게 하는 곳이라면 분명 숨은 힘이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마음을 달리 먹고 그 느낌을 직접 내 눈으로 직접 보고 느끼고 싶은 욕심이 생겼습니다. 서점이라는 공간을 워낙 좋아하기도 하구요. 그렇게 해서 두번째 도쿄여행을 계획하게 됐습니다.


서점 하나에 왜 이렇게 난리들일까?


비행기에서야 급하게 츠타야 서점을 기획한 마스다 무네야키씨의 '지적자본론'을 읽었습니다. 책 제목만 봐도 마스다씨의 기획의도와 철학이 짐작이 갔습니다. 책의 절반만 정도 읽고 도쿄에 도착했습니다.

책을 다 읽고 가는 것보다 낫다고 생각했습니다. 앞서서 완전히 이해하고 가는 것보다는, 직접 보고 느끼면서 나만의 시선으로 둘러보는게 좋을 것 같았습니다. 그래야 그 경험과 분석이 온전히 내 이야기가 되기 때문입니다.




츠타야서점이 여러군데가 있지만 망설임 없이 다이칸야마를 선택했습니다. 그곳이 본점이기도 하지만 십년전에 여행했을 때도 여러 방문지 중 가장 인상적인 곳이었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서울에도 그 곳의 느낌이 나는 색깔있는 동네들이 많지만 그 땐 고작해야 청담동 명품거리나 도산공원 주변에서나 그곳과 비슷한 감각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한적한 주택단지 사이에 독특하고 멋진 편집샵들과 레스토랑들이 조화롭게 모여있었는데 그게 그렇게 좋아보였습니다. '서울에도 이런 동네가 있었으면 좋겠다', '우리동네가 이런 곳이었으면 좋겠다'를 속으로 연발하면서 돌아다녔던 기억이 납니다. 그 때의 분위기는 여전했지만 츠타야 서점으로 인해 더욱 색다른 감각이 동네에 더해진 기분이었습니다.


이것만으로도 도쿄에 올 이유가 충분하다

그리고 드디어 다이칸야마의 츠타야 서점을 들어서는 순간. '아! 오길 잘했다', '마스타씨가 말한 라이프스타일을 제안한다는 것이 이런 뜻이구나,,,'하고 느낄 수 있었습니다. 문자를 통해 느끼는 츠타야서점은 그저 새로운 서점이겠거니 였지만, 그 공간의 일부가 되어 느끼는 감각은 훨씬 풍부하게 다가왔습니다. 이름은 서점인데 사실은 서점이 아니였습니다. 책도 주인공이 아니라 라이프스타일을 위한 가장 적합한 제안 장치 역할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 그렇고 ' 그런데 뭐가 달라서 이렇게 묘한 느낌을 주는걸까? '


사실 완전히 새롭고 특별할 것도 없었습니다. 그정도 수준의 공간은 우리나라에도 제법 흔해졌으니까요. 교보문고 같은 곳에서도 그만큼의 지적이고 고상한 분위기는 느낄 수 있고, 이태원이나 성수동에도 그 정도의 카페는 얼마든지 찾을 수 있습니다. 서울 각지에 있는 레스토랑은 말할 것도 없구요. 그런데 신기하게도 새로울게 없는 공간인데 그 곳을 거닐다 보면 그 생각이 바뀌더군요. 눈에 비치는 것들은 비슷한데 느껴지는 감각은 전혀 다르게 다가왔습니다. 편안한 느낌인데, 뭔가 근사한 느낌? 원래가 다들 그 자리에 있었던 것들인데 나의 움직임에 따라 시간에 따라 다른 느낌을 주는 공간. 그로 인해 공간이 특별한게 아니라, 내가 특별해지는 느낌을 주는 공간이었습니다.


'어떤 요소가 그런 느낌과 분위기를 주고 있을까? 왜 그럴까'를 T-side 중간의 카페 테라스에 앉아 한참을 생각했습니다. 딱히 특별한 이유는 찾지 못했지만, 그 곳을 돌아 다니면서도 계속해서 ' 이렇게 편안하고 좋은 느낌은 어디에서 오는 걸까?'라는 질문이 머리 속을 떠나질 않았지만 쉽게 답을 찾기는 어려웠습니다.


이렇게 편안하고 좋은 느낌은 어디에서 오는 걸까?


그런 편안함은 섬세함에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섬세함을 담아내는 요소는 무척 다양하겠죠. 그 곳의 지리적 요건에서부터, 무심한 듯 보이지만 친절함이 묻어나는 스탭들의 태도, 창을 통해 들어오는 빛의 각도까지. 그 모든 요소들을 하나하나 관리하고 재조직해 내는 힘이 츠타야 서점을 이루는 아우라가 아닐까 합니다. 무에서 유를 만들어 낸다기 보다는 유에서 더 나은 유로 재조직해내는 느낌이라고 할까요. 그게 그저 신기하고 눈에 띄는 공간이 아니라, 편안하고 익숙하지만 굉장히 특별한 공간을 만들어낸 비결이 아닌가 합니다.

딱 제 취향에 맞는 공간이라고 느꼈는데, 나처럼 느끼는 사람이 많았나 봅니다. 평일 대낮이었는데도 현지인들은 물론 외국 관광객들로 엄청 붐비고 있었어요. 마스다씨도 이렇게까지 좋은 호응을 기대하지는 않아서 신기했다고 합니다. 아무나 알아채지 못해서 그렇지 사람들의 감성을 관통하는 공통분모는 어디에서나 존재한다는 걸 다시 한번 느낄 수 있었습니다. 우리 주변을 항상 관심을 가지고 지켜봐야할 이유입니다. 기회는 항상 가까이에 있으니까요.

우리에게도 얼마든지 하드웨어로써의 근사한 공간은 얼마든지 많습니다. 다만 공간을 채우는 내용이나 방식의 소프트웨어가 빈약하다는 생각입니다. 츠타야서점이 이렇게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는 소프트한 방식의 편집과 기획의 힘이었다고 봅니다. 서적과 음악과 영화와 커피와 음식까지를 아우르는 문화 컨텐츠의 집적체이자 그것들이 어색하지 않고 조화롭게 자연스러운 연결성을 가지는 공간. 그래서 자신도 모르게 츠타야가 제안하는 라이프스타일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는 공간. 그 곳이 츠타야서점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모든 개념을 완벽히 이해하고 그것을 실행할 힘을 가진다는 것은 무척 어려운 일이였을 것입니다.

마스다 무네야키라는 기획자가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겠죠. 하지만 그분의 기획력 또한 일순간에 나온 것은 아니였습니다. 지적자본론에서도 밝혔듯이 이 기획의 출발은 20년전 LOFT라는 잡화전문점을 기획할 때부터였다고 합니다. 그 기획이 더 세밀해지고 체계화되고 조직화되어 지금의 츠타야를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그 오랜 시간의 결과물인 것입니다.


우리에게도 그런 공간과 그 공간을 설계하는 기획자들이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공간에 그저 사람을 가두기 보다는, 공간을 통해 사람들의 삶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는 '라이프스타일 제안자'들이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사실 우리는 이미 그런 감각을 즐길 준비가 되어 있는데, 그 속도를 따라오지 못하고 있다는 느낌도 있습니다. 나처럼 매력적인 제안들을 목말라하는 소비자들을 위해 능력있는 기업과 기획자들이 서둘러 나서길 기대해 봅니다.


| 브랜드 컨셉 빌더 ⓒ BR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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