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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일상 생각

취향을 드러내는 용기

마광수를 보내며

by 우현수

언제나 나에게 가장 큰 영향력을 미치는 것은 '사람'이었습니다.

중대한 결정을 할 때마다 그들의 한마디가 결정적일 때가 많았습니다.


마광수 교수도 그런 분들 중 하나입니다. 그 분을 처음 만난 건 십대였습니다. 성에 한참 호기심이 많을 때였죠. 아버지 서재에서만 몰래 만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책 제목이 너무 선정적이라 떳떳하게 내 놓고 읽기도 어려웠죠. 그런데 생각보다 야하지 않아 실망했던 기억이 납니다. 노골적인 애로물이라기 보다는 자신의 성적 취향을 가장 솔직하게 고백한 에세이였기 때문입니다. 그의 글들을 보고 새롭고 자극적인 어떤 영상을 떠올릴 줄 알았는데, 의외로 무척 인간적인 한 지식인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야한 작가 마광수'가 ‘취향이 있는 인간 마광수'으로 다가왔던 순간이었습니다.


그 후 신문이나 TV를 통해 만난 그 분의 모습은 역시 상당히 파격이었습니다.

'개인', '취향', '성'이라는 화두를 공중파에서 말하는 사람이 없을 때였죠. 사실 지금도 크게 바뀌진 않았지만요. 그 시절은 취향도 목숨걸고 말할 때였는데, 자신의 취향만큼은 타협할 생각이 없어 보였습니다. 그래서 결국엔 옥살이까지 하셨지만요. 그 후에 매체를 통해 가끔 보는 그 분의 모습은 예전같아 무척 안쓰러웠습니다.


며칠 전 그의 부고를 듣고 ‘취향'이라는 단어가 먼저 떠올랐습니다. 저는 개인을 이루는 가장 중요한 요소가 '취향'이라고 주장하고 다닙니다. 내가 뭘 좋아하는지도 모르고 사는 삶은 의미도 없고 재미도 없으니까요.

자신이 뭘 좋아하는지를 떳떳하게 밝힐 수 있고, 인정 해주는 사회, 자신이 뭘 좋아하는지 귀 기울일 수 있는 시간을 주는 사회가 가장 행복할 사회가 아닐까라는 생각을 늘 해왔습니다.


마광수 교수는 저에게 ‘취향'에 관심을 갖는 일, 그리고 그것을 드러내는 일의 중요함을 일깨워 줬습니다.

감옥에 갈만큼 위험해도 감수해낼만한 가치가 있는 일이라고요. 그 때문인지 어디 가서 취향을 말하는 것에 별로 어려움이 없습니다. 오히려 그걸 즐기는 편입니다. 그게 '성적 취향'에 대한 것이라도 상관 없습니다.

복잡한 버스에선 문 열어달라는 말도 잘 못하는 내숭인?인데 말이죠.

그 분의 소중한 유산입니다. 당연하지만 누구나 할 수 없는 중요한 얘기를 그 분이 해주고 가셨습니다.


그곳에서는 부디 ‘취향'이 진정으로 존중받으며, 행복하게 살아 가셨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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