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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일상 생각

혼밥과 위치선점

by 우현수

위치가 사람을 변하게 합니다.


어리버리 했던 김대리가 팀장이 되더니 뛰어난 업무 성과를 내고, 철 없던 동생이 군인이 되니 의젓한 사내가 되고, 철부지 딸이 엄마가 되니 아주 딴 사람으로 변하는 경우를 주변에서 얼마든지 봐왔습니다. 그런데 그 위치를 자발적으로 선택하는 경우라면, 변화가 더 과감하고 견고해지더군요.


긴 연휴 뒤 오랜만에 혼밥을 했습니다. 해도 해도 어색하고 익숙해지지 않은 것 중에 하나가 혼밥입니다.저 처럼 숫기없고 내성적인 사람은 더더욱 그럴수 밖에요. 식당을 물색할때, 입구에 들어설 때, 주문을 할때의 스트레스로 좋았던 밥맛이 뚝 떨어질 때가 여러번이었습니다. 이쯤 되면 원래 밥이란 혼자 먹지 말고, 함께 먹으라는 신의 뜻 같습니다. 물론 즐거운 대화가 양념같이 뿌려지고 윤기가 좔좔 흐르는 대화가 있는 식사는 언제나 환영입니다.


하지만 혼밥의 상황은 점점 늘어나고 있습니다. 왠만하면 피하고 싶지만, 그런 상황이 늘어나면서 덜 어색한 혼밥의 방법을 찾고 싶었습니다. 그 민망하고 옹색한 시간을 벗어나고 싶은 강력한 의지겠죠. 지금까지 나름 여러가지 실험이 있었는데, 가장 성공적이었던 방안을 오늘 다시 실행에 옮겨 봤습니다.

특별한 건 아닙니다. 식당를 선택했다면, 그곳을 들어서자마자 제일 가운데 영역을 차지하는 것입니다. 안녕하세요~! 란 짧은 인사가 끝나기도 전에 빠른 걸음으로 입구에서 테이블까지 연속 동작으로 이동하는게 중요합니다. 주의해야할 것은 머뭇거리지 않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물 흐르듯 자연스러워야하고 식당 관계자와 눈을 마주치는 일도 왠만하면 피하는게 좋습니다.


오늘 그 미션을 실행에 옮기면서 역시 괜찮은 방법이라는 생각이 다시 들었습니다.
시선을 피하기 수월한 구석자리에선 오히려 시선을 의식했는데, 사방에 시선이 열린 곳에선 오히려 내 행동이 훨씬 자연스럽고 심리적으로 편한했습니다. 식사 중간 중간에는 여유도 생겨 주변 테이블의 상태와 표정들을 잠깐씩 살피기도 할 정도였으니까요. 식당 전체를 조망할 수 있는 위치가 상황을 그렇게 만든 듯 합니다. 이미 사방으로 열린 시선 때문에 그 상황을 회피할 방법도 없다는 심리 때문인지, 더 과감해지고 뻔뻔해 지는 것이죠.

역시 '상황'이 '내 마음의 상태'를 만든다는 걸 확인 하는 순간입니다.


오랜만에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제대로 된 혼밥을 느낀 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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