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에 맞는 의미를 세운다운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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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세운상가는 많은 작가와 예술가들의 추억의 장소로 기억된다. 그곳은 7~80년대 청년기를 겪은 그들에겐 굉장히 인상적인 기억 속 장소였을 것이다. 그 얘기를 들으며 나 또한 그 때의 풍경을 어렴풋이 떠올려 보기도 했었다. 하지만 오늘 처음으로 세운상가를 찾아가, 지금의 용산전자상가의 황량함을 떠올렸던 이유는 뭘까. 내가 ‘용산'을 떠올리는 기분과 그들이 ‘세운’을 떠올리는 기분은 다른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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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운상가를 처음 가봤다.
여러 매체를 통해 소식을 들어서 궁금하기도 했고, 마침 그 근처에 일이 있기도 했다. 일부러 찾아 간건 아니였지만, 우리나라 전자산업의 시초이자 메카였던 상징적인 곳을 그냥 지나치기에는 아까운 생각이 들었다.
옛 것과 새로운 것들이 오버랩 되는 풍경은 항상 묘한 감상을 일으킨다.
이런 공간이 매력 있으려면 과거의 형식(건축)은 남기지만, 그 걸 채울 내용(컨텐츠)들은 바꿔야 한다. 옛 기차역을 미술관으로 바꾸거나, 공장터를 문화복합몰로 바꾸거나, 고택이 카페로 바뀐다. 요즘 힙하다는 공간들은 모두 그런 형식을 취하는 걸 보면, 이젠 거대한 트랜드가 된 듯하다. 이제 사람들은 더 이상 과거를 완전히 갈아 업는 멀끔한 인상의 건축물에 혹하지 않는다.
세운상가의 리모델링 방향도 그런 경험의 매력도와 트렌드 측면에서는 성공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다만 그 방향이 전자, 기기, IT 산업의 특성을 담아내기에 적합한 공간의 감수성을 가질지는 의문이다.
미술관이나 박물관 등의 문화 공간이나, 카페나 레스토랑처럼 문화적 성격이 강한 공간들은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연결성'이 중요하다. 그 연결에 의해 스토리가 생기고 새롭게 해석할 여지가 생긴다. 하지만 기술적 성격이 강한 전자, IT 분야들은 그러한 연결성 보다는 미래라는 ‘방향성'에 초점이 맞춰지기 마련이다. 1년 전만 해도 새로웠던 기술의 방향은 금새 뒤처지고 낡은 게 되버리기 쉽상이다. 쌓이면 쌓일수록 문화적 스토리가 되는 것들과 쌓여서 아래 깔릴수록 쓸모없는 고철 덩어리가 되는 것과는 개념이 완전히 다르다.
레트로한 경험이 문화적 코드에는 맞지만, 기술적 코드에는 맞지 않는 이유다.
나는 그래서 새롭게 변한 '더세운' 공간이 단지 ‘기술'을 강조한 공간이 아니라, 기술을 기반으로한 ‘컨텐츠'를 생산하는 기지가 되어야 한다고 본다. 물론 그러한 기획에서 프로젝트가 진행됐을 것이라 충분히 짐작하고 있다. 다만 현실은 그러한 기획과는 조금 다르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그 곳을 둘러보며 들었다.
서울의 한복판에 종묘라는 과거 유산과 북악산이라는 서울의 정기를 마주한 세운상가는 지리적으로나 역사적 배경으로나 굉장히 축복 받은 곳이다. 다만 축복받던 과거의 산업을 그대로 유지하는게 맞는지는, 아니면 새로운 산업의 신기지로 나아갈지.
앞으로 채워나갈 컨텐츠에 의해 결정될 듯하다.
생각했던 기획보다, 기획을 실행하는 과정에서 '더세운'의 운명이 갈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