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능은 기브(Give)가 아니라 리브(Live)여야

by 우현수

디자인 하나만 해줘


디자이너라는 타이틀을 달고나서 많은 부탁을 받아왔다. 아주 어려운 상황이 아니라면 대부분 거절하지 않고 해줬다. 부탁할 때는 그 사람의 부탁 또한 흔쾌히 수용하겠다는 전제가 깔려있다는 거라 생각했다. 부탁하는 사람의 그러한 심정을 이해했다.

나도 내가 모르는 것들, 할 수 없는 것들이 필요할 때는 나도 그런 생각을 가지고 부탁을 한다. 그런 믿음이 없는 이에게는 아예 부탁조차도 하지 않는 편이다.


로고 하나 만들어달라, 그려놨던 마크 하나만 보내 달라는 말이 상처가 될 때도 있지만 내가 해 준 디자인이 그 사람의 사업과 브랜드에 도움이된다면 그걸로 됐다고 생각했다. 그러다 보니 디자인의 목표점에 가기 위한 디자인이 아니라 그 사람이 마음에 들어할 수준의 디자인만 하고 있었다. 더구나 그런 부탁은 대부분이 항상 촉박한 경우가 많다. 할 수 없이 시장에서 내가 해준 디자인이 어떤 경쟁력을 가질지에 대한 고민보다는 부탁한 사람이 마음에 들어하는 것에 초점이 맞춰졌다.


이 지점이 굉장히 아팠다.
디자이너는 자기가 내 놓은 디자인이 자기 자식같은 것이다. 그런데 그 자식을 잘 못 키워 경쟁력 없고 매력도 없는 아이로 세상에 내놓는 마음이랄까. 그것대로 잘 살아갈 수는 있겠지만 그런 자식을 보는 내내 마음이 불편할 수 밖에 없었다.


시간과 노력을 들여 했던 결과물에 내 스스로 만족감이 떨어진다는 건 그런 느낌이었다. 많은 비용을 받고 그 느낌을 받는다고 해도 싫은데, 어떤 댓가도 없이 그래야 한다는 건 고통이었다. 그 걸 극복할 자신이 없었다. 아니 그렇게까지 해가면서 내가 그 부탁을 허락해야할 이유를 찾지 못했다. 부탁하는 사람과의 관계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건 내 자존감이니까.

그 이후에는 단호하게 거절하고 있다.
기분 나쁘지 않게 최대한 정중하게.



직업인으로서의 디자이너


통장에 입금이 되는 순간부터 다이어트를 시작하고 몸도 만든다는 배우의 이야길 들은 적이 있다. 또 어떤 배우는 연기를 왜하느냐는 질문에 잘 먹고 살려고, 자식들 좋은 것 먹이고 예쁜 옷 사줄려고 한다는 인터뷰를 본적이 있다. 그 때까지만 해도 배우란 폼나는 예술인이라고 생각했는데 나의 통념이 완전히 깨졌다. 저들도 연기가 곧 직업인 사람들이구나. 재능으로 세상을 놀라게 할 예술을 만들 욕심보다는 당장 오늘 일용할 양식을 얻기 위해 사는구나. 폼 안나는 말이지만 너무 맞는 말이라 반박이 불가했다.


나도 내 디자인 재능과 능력을 발휘해서 돈을 번다. 앞서 배우들의 연기가 돈으로 치환되듯이 나의 디자인 또한 돈으로 치환된다. 디자인 재능 하나만 써 달라는 건 돈 얼마를 주라는 것과 마찬가지다. 어려운 사람을 돕기 위해 내 돈을 쓰는 일은 기꺼이 하겠지만, 그게 아니라면 내 돈을 써가면서 고생할 이유가 없지 않을까.


디자인이 곧 돈이라는 인식이, 디자인 해주는 일이 곧 비용을 쓰는 일이라는 인식이 사회 전반에 있다면 디자인을 그렇게 쉽고 가벼운 마음이 들진 않을 것이다.


단 돈 몇만원에 디자인 재능을 사볼까하고 재능 플랫폼에 기웃거리지는 않을 것이다. 연기 하는 일이 곧 비용이라면 그렇게 많은 무명의 연기자들이 그 어려운 환경에서 일하지도 않을 것이다. 눈에보이지 않는 것들의 가치들을 비용으로 인정해주는 인식이 더 넓고 깊이 퍼졌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쓸만한 재능으로 만들기까지


내 디자인이 쓸만해진 시간을 따져봤더니
고등학교 입시 2년, 재수 1년, 대학 4년, 디자인회사 15년, 합했더니 20년이 넘는다. 최고 수준은 아니지만 좀 쓸만해지기까지 이렇게 오래 걸린것이다.
이 긴 시간의 고민과 노력들이 내가 하고 있는 디자인에, 내가 앞으로 할 디자인에 녹아드는 것이다. 디자인뿐 아니라 모든 다른 분야의 창작자들 또한 마찬가지일 것이다.


내가 만든 로고 하나에 20년의 시간 동안 쌓아왔던 한 디자이너의 재능이 들어간다고 하면 과연 이게 돈 몇만원의 값어치로 생각할 사람이 있을까. 로고 하나만 그려줘라고 쉽게 부탁할 수 있을까. 디자이너의 재능을 이런 시선으로 바라봐줬으면 좋겠다. 무한정 나눠줄 수 있는 지하자원같은 게 아니라 오랜 시간 갈고 닦고 단련해 온 보석같은 것이라고.


기부는 어려운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기 위한 것이다.
기회가 된다면 재능으로할 게 아니라 현금으로 할 것이다. 다만 나의 재능은 기브(Give)가 아니라
내가 리브(Live)하기 위해서만 쓸 것이다.


오늘도 살기위해 디자인을 한다.
그리고 디자인하기 때문에 살만한 인생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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