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내가 이 브랜딩 바닥에서 내세울만한 간판이라곤 ‘디자인파크' 출신이라는 것 딱 하나였다.
디자인파크 출신
지방대 간판에 평범한 얼굴 간판까지, 어느 것 하나 내세울게 없지만, '88올림픽 호돌이를 만든 김현 디자이너가 설립한 회사에 다녔어요.’라고 하면 이 쪽에서는 대부분 고개를 끄덕이며 인정해줬다. 그만큼 ‘김현’과 ‘디자인파크'라는 이름의 무게감은 대단했다. 내 입장에선 그 이력이, 나를 가장 쉽게 알리면서도 유능하게 보이게 하는 효과적인 간판이였던 셈이다. 그런데 그게 어제부로 사라졌다. 엄밀히 말하면 완전히 사라졌다라기 보다는 2세대 멤버들이 이끄는 ‘디파크브랜딩’으로 새롭게 태어난다. 하지만 이로써 33년간 걸려있던 ‘디자인파크’라는 간판은 완전히 내려졌다.
어제 저녁 대학로에서 ‘디자인파크' 고별파티가 있었다. 머리가 희끗한 대한민국 디자인의 1세대 별들이 모두 모여서 일까. 비록 오래된 맥주집 홀이었지만, 여느 호텔 연회장보다 더 환하고 빛나 보였다. 페북에서 인연을 맺고 있는 몇 분도 멀리서나마 볼 수 있어서 무척 반가웠다.
‘디자인파크' 경력채용에서 합격했을 때가 생각난다. 정말 뛸듯이 기뻤다. 얼마 전 같은데 벌써 십년이 훌쩍 넘은 일이다. 합격 전화를 받고 너무 좋아하면 자존심이 상할 것 같아서, 벅찬 감정을 누르느라 혼났던 기억이 생생하다. 목소리를 너무 깔고 심드렁하게 받았다는 이유로 입사 이후 내내 선배들에게 놀림을 받아야했다. 좋은 걸 티내는 일는 여전히 민망하고 부끄럽지만 사회 초년생인 그때는 아마 더 했으리라.
'디자인파크'는 브랜드 디자이너라면 누구나 선망의 대상이었던 곳이었고, 광화문 광장에서 보이는 대부분의 기업의 CI가 포트폴리오였던 회사였으며, 디자이너들 중에서도 가장 실력있는 친구들만 모인다는 곳이었다. 학부 때부터 꿈만 꾸던 디자인 회사에 다닌다는 것은 굉장히 설레고 흥분되는 일이었다. 여기에서 2~3년 정도만 일하면 나는 디자인계의 슈퍼스타가 될 것만 같았다.
하지만 그게 어디 쉬운 일인가. 여느 디자인회사보다 뛰어나고 능력있는 디자이너들 사이에서 두각을 나타내기는 쉽지 않았다. 그 곳에 있으면서 개인적인 능력치의 한계도 경험하며 상처 받는 일도 종종 있었다. 잘하고 싶었지만 욕심처럼 쉽지 않았다. 옆에서 훨훨 나는 동료들을 보며 부럽기도 하고 자책 할 때도 많았다. 그렇게 7년을 채우고 디자인파크를 나왔다. 지금 생각해보니 그때만큼 치열하고 꾸준하게, 어찌보면 미련하게, 오로지 디자인에만 온 힘을 쏟았던적도 없었던 것 같다. 그 소중한 시간들이 쌓여 지금의 내가 있는 것은 물론이다.
그 때의 시간이 내게 남긴게 열정과 노력 뿐이겠는가. 명성있는 디자인회사의 재직 경력도, 유명 CI를 작업한 포트폴리오도 생겼다. 하지만, 내가 얻은 가장 큰 자산은 그 때 함께 일했던 직장 동료들이 아닐까 한다. 디자인에 대한 사랑과 열정으로 똘똘 뭉쳤던 멤버들과 그 순간을 함께했던 경험들. 그 순수한 감정들의 교류가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는 것은 굉장히 의미있는 일이다. 지금도 그 때의 동료들을 만나면 '디자인' 얘기만으로도 밤을 새도 모자를 판이다. 그 때 그렇게 능력있는 디자이너들과 함께 하면서 깨달은 게 있다면, 실력은 배워서 는다기 보다는 선의의 경쟁으로 는다는 것이다. 보고 배울게 많은 사람이 옆에 많다는 건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혼자서 모든 걸 결정하고 해결해야 하는 지금의 상황은 그 때를 더 그립게 한다.
또한 김현 선생님을 비롯한 1세대 디자이너들의 자세와 삶의 태도와 방식을 간접적으로나마 볼 수 있었다는 것, 15년차 이상의 실무형 2세대 대선배 디자이너들의 작업을 직접 옆에서 지켜 볼 수 있었던 경험들은 그 이후 디자인을 대하는 내 자세를 가다듬고, 기본기를 다지는데 더 없이 좋은 기회였다. ‘디자인파크'와 같은 전통과 문화가 없는 회사였다면 쉽지 않았을 것이다.
목숨 걸고 디자인 한다
김현 선생님께서 어느 잡지 인터뷰에서 하신 말씀이다. 이만큼 디자이너로써의 사명감을 잘 압축한 말도 없을 것이다. 잡지에 나온 그 문장을 보고 ‘나는 과연 그런 디자인을 하고 있는지’ 스스로에게 되묻곤 했다.
어제 고별인사에서는 또 인상깊은 말씀을 하셔서 무릎을 쳤다. 두고 두고 기억에 남을 듯 하다. 자주 쓰이는 비유지만, 참 상황에 맞는 적절한 비유를 하셔서 공감이 갔다.
“ 그냥 보기에 같은 돌인데, 거기에 걸려 넘어지면 걸림돌이고, 딛고 나갈 수 있으면 디딤돌이라고 하더군요. 아마도 ‘디파크브랜딩'이 디자인파크의 역사를
이어가는 좋은 디딤돌이 될 것이라고 믿습니다."
나 또한 그렇게 되길 힘껏 응원한다.
하지만 무엇보다 김현 선생 자신께서 지난 33년간 디자인파크의 든든한 디딤돌이셨다. 항상 편안하고 소탈하시지만, 언제나 자연스럽게 좋은 방향으로 이끌어 오셨다. 그동안 정말 고생이 많으셨으니, 이제부턴 자신을 위해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을 투자하셨으면 한다.
나의 유일한 ‘좋은 간판’이었던 ‘디자인파크’는 사라졌다. 그 간판 하나로 내 능력을 인정받아 왔지만, 이제는 그 유효기간도 한참이 지났다.
이제는 내 사업을 통해 스스로를 대변할만한 ‘간판'을 만들어 내야 할 때가 온 것 같다.
‘BRIK’ 브릭이라는 사명답게 매끈하고 평평하게 잘 준비해서, 미래로 가는 든든한 디딤돌을 만들어 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