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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일상 생각

파스를 떼고 한참을 웃었다

by 우현수

지난주부터 오른쪽 어깨가 욱신 거리고 아팠는데,
어제는 통증이 심해 파스를 사왔다. 원래 약을 싫어하고 자연치유를 맹신하는 편이라 이런 경우는 정말 드문 일이다. 파스를 산 것도 붙여 본 것도 정말 오랜만이라 낯설기까지 했다.


어깨에 손이 닿지 않아 아내에게 파스를 부탁했는데, 자신만만해하고 재밌어 한다. 하지만 그런 표정과는 달리, 붙이는 손의 감각은 뭔가 어설프다. 몇 번 안 해 본 티가 확 났다. 좀 미심쩍었지만, 피곤해서 그냥 잠을 청했다.

자고 일어나니 밤새 파스냄새가 침실에 가득하다. 근데 어쩐 일인지 어깨 통증은 별 차도가 없었다. 파스를 떼고 나서야 그 원인을 알았다. 약품 묻어있는 젤 부분의 비닐이 안 떼어져 있었던 거다. 파스니까 몸의 굴곡에 맞게 착 감겨야하는데, 바스락거리기만 하고 계속 붕 떠 있는 기분이 들었던게 그냥 기분만은 아니었던 거다. 어이가 없기도 하고 재밌기도 해서 한동안 통증을 잊을만큼 크게 웃었다.

아내와 그 상황에 관해 메세지를 주고 받으면서, 작년 에피소드가 겹쳤다. 아이들을 위해 부모님께서 공기청정기를 구입해서 보내주셨는데, 한달이 지나도 집안 공기가 개선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어느날 집에 놀러 온 친구가 자꾸 제품 소리가 유난히 크다고 이상하다고 했다. 요즘 나오는 제품같지 않게 너무 시끄럽단다. 그말을 듣고 제품 안을 자세히 보니 뭔가 계속해서 반짝인다. 아니나 다를까 공기청정기를 열어보니 필터의 비닐 포장을 벗기지 않고 그대로였다. 그 상태로 석달을 쓴 거다. 필터없는 정수기 물을 석달간 마신거나 다름없었던 거다. 그래선지 공기청정기를 자동 모드로 해 놓을 때마다 빨간 경고들이 켜지면서 폭발할 듯 울부짓는 소리를 낼 때가 많았다.


그것도 모르고 큰 소리가 나쁜 먼지를 제대로 거르는 소린 줄 알았다. 이제야 미세먼지로부터 안전하다고 안심했던 생각까지 했으니 참 한심하다.

여러모로 우린 참 모자란 부부다.

하지만 모자란 부분을 웃음으로 채울 수만 있다면, 뭐 나쁠 것도 없다.


파스보다 웃음이 더 진통효과가 좋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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