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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현수 Nov 05. 2019

알려줘도 못합니다. 알고도 못합니다.

씽킹브릭

어제 무심히 티비 채널을 돌리다가
연 매출 18억 김치찌개의 비법을 알려 준다는
프로그램이 눈에 확 들어왔습니다.

매번 김치찌개를 할때마다
같은 맛이 날까라고 생각이 있었는데
마침 잘 됐다 싶어 자세를 고쳐
진지 시청 모드로 들어갔습니다.
완전히 달라질 나의 김치찌개를
상상하면서요.

출연하신 사장님의 인상도 사기칠 것 같진
않는 평범한 동네 식당 사장님같아서 믿음이 더 갔습니다. 그것도 잠시 금새 주책없이 흘러넘치는 침샘으로 인해 앞선 호의는 온데간데 없고 ‘별 거 없기만 해봐라’라는 심정으로 도끼 눈을 장착하고 주시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웬걸 레시피를 보니
‘와~ 저러니 맛있을 수 밖에 없겠구나’라는
말이 절로 나왔습니다.

요리 과정은 대략 이렇습니다.


1. 비계가 많은 돼지 앞다리살 부분을 준비하구요.
비계만 떼어 냅니다. (아 귀찮아)

2. 그 걸 삶아  (아 귀찮아) 믹서기에 갈고
고추가루와 마늘 등 넣고  (아 귀찮아)
기본 양념을 만듭니다.

3. 그 양념과 함께 김치를 볶습니다. (이렇게까지 해야해?)

4. 냉장고에 12간 숙성합니다...(휴,,,,숙성된 깊은 한숨...)

5.
그 후에야
숙성한 볶음김치와 물과 돼지고기를 넣고 끊입니다.
그 위에 살짝 멸치가루를 뿌려주구요.
(직접 말려서 갈아낸 수제 멸치양념이라네요. ㅜ ㅜ)

6.
마지막으로 파와 두부를 넣고
끊인 후 완성합니다.

7. 맛있게 냠냠 (와우 ! 맛은 있네,,,,맛이 없을 수가)


어떤가요? 집에서 할만한가요?

저는 비계만 따로 삶아 갈아서 양념을 만든다는
부분과 볶음 김치를 12시간 숙성해야 한다는 비법을
알려주는 부분에서
‘아,,,내가 하긴 힘들겠구나’라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사실 비법과 레시피는 우리 주위에 얼마든지
있습니다. 공중파 티비에서 저렇게 레시피를 공개하는데 게의치 않을 정도니까요.

근데 이 게 요리에만 해당되는 얘기는 아닐겁니다.
뭘 배워 볼려고 업무에 적용해 보려고
인터넷을 뒤지다 보면 쓸만한 비법들은
얼마든지 나옵니다.

다만 그 비법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지,
나에게 잘 맞는 것인지,
그 걸 꾸준히 해낼 끈기가 있는지가
더 중요하다는 생각입니다.

그런 측면에서 보면
자기만의 비법이라고
꽁꽁 숨기는 것도
참 허망한 짓입니다.

가끔 부끄럽습니다.
저도 그랬거든요.

내 생각과 글을
누군가 퍼갈까 봐.
누군가 따라 쓸까봐.
안절부절하면서
공개하지 않았던 적이 있었습니다.
정말 정말 부끄럽게도...

디자인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 방식을 누군가 따라하면 어쩌나하는
속 좁은 마음 때문에
공개를 미루고 미룰 때도 있었습니다.
그 게 다 뭐라고. 뭐 대단한 거라고.
지금 생각하면 참 우습고 창피하네요.

알려줘도 못하고 알고도 못하는 건
명확해 보입니다.
완벽하게 그 비법을 이해하지 못해서입니다.
비법의 뿌리를 못보고 겉만 살짝
훑어 보고 그 걸 따라했기 때문입니다.
그것까지 알고도 못하는 경우는
두가지 원인이 있습니다.
하나는 그 걸 실행할 과감성이 없는 거구요.
둘째는 그 비법을 계속 이끌어갈 끈기가 없어서가
아닐까합니다.

그렇게 보면 세상은 비법의 싸움이라기 보다는
실행의 싸움입니다. 꾸준히하고 버텨내는 인내의 싸움인 것 같기도 합니다.

오늘도 김치찌개 사장님께 한 수 배워갑니다.


#씽킹브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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