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의 이중성
카카오 브런치에 글을 쓰면 자세가 달라진다. 왠지 더 잘 써야할 것 같고 더 멋있게 써야할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작가라고 붙여 준 이름에 걸맞는 컨텐츠를 만들어내야 한다는 부담도 생긴다. 사실 한명의 블로거일 뿐인데 말이다.
하지만 확실히 블로그나 SNS의 창에서 글을 쓰는 느낌과 브런치 창에서 글을 쓰는 느낌은 다르다. 마치 은은한 햇살이 비치는 책상 위에 원고지를 펼치고 작품을 쓰고 있는 소설가가 되는 기분을 준달까. 이 점은 분명 다른 블로그와는 다른 감각을 제공하는 플랫폼이다. 실제 내용과 개념은 타 블로그와 다를 게 없는데 말이다.
어떤 차이가 그런 느낌으로 이어질까?
여러가지 요인이 있겠지만, 화이트 공간에 많은 여백과 깔끔한 타이포그라피, 다른 블로그에서는 볼 수 없는 특별한 레이아웃 등의 형식적인 요소 때문이 아닐까 싶다. 별 거 아닌 글도 브런치에서 보면 읽을만한 글로 착각하게 만드는 비결이다. 같은 상품인데 시장 자판에 있는 것과 백화점 매대에 있는 차이라고나 할까.
형식이 그래서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네이버 블로그나 티스토리나 워드프레스로 만든 블로그에서는 브런치에서 느낄 수 있는 그런 감각적 형식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 독특한 형식때문에 브런치만의 고유 아이텐티티가 형성되고 있고 인기를 유지하는 비결이 아닐까.
한동안 다이슨 선풍기에 꽂혀 큰 맘 먹고 산 적이 있다. 컴퓨터나 대형 전자제품을 제외하면 고가로 구입했던 유일한 제품이다. 일반 선풍기 열대를 사고도 남을 금액이었지만 꼭 사고 싶었던 이유는 시원한 바람 뿐아니라 거실의 풍경까지 바꿔줄 거라는 기대감 때문이었다. 손님이 왔을 때도 신기한 모양 때문에 이야기 거리가 되고 괜찮은 인테리어 소품도 되니까. 선풍기의 새로운 형식이 스토리를 만들어내는 거다. 더 이상 바람만 나오는 백색 가전의 형식이 아닌 게 마음에 들었다.
비슷한 이유로 다이슨 드라이기도 사버렸다. 일반 드라이기와 원리도 나오는 구멍도 비슷한데 바람이 다르게 느껴진다. 프푸푹 소리를 내며 불어 오는 바람이 몇년 전 정동진 백사장을 걸으며 맞았던 바람같다는 생각이 드는 건 과장일까. 비싸게 산 제품이니 만족하려는 심리적 착각 때문일까. 어쨌든 아침마다 해풍을 맞으니 기분이 좋다.
심지어 차량 구입도 내 취향에 맞는 형식에 맞게 구입했다. 미취학 아이들이 두명이나 되는 상황에서 유모차도 싣기 힘든 차를 구매한다고 하니 주변 대부분 사람들이 반대했던 것 같다. 성능이나 내용면에서 그 가격이면 훨씬 더 나은 선택들이 있어 보였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나는 그 차를 사면 왠지 내 생활이 바뀔 것 같았다. 더 스마트하고 세련된 라이프스타일로 변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뭔가 기존에 탔던 세단들과는 다른 인생이 펼쳐질 것같은 느낌.그 게 실제 내용이 아니라해도 내가 생각하기에 폼나는 그 차의 형식이 마음에 들었다. 실내가 좁아 불편한 점들은 점들은 접이식 유모차와 컴팩트한 보조의자로 해결했다. 차를 몸에 맞춘게 아니라, 차를 몸에 맞춘 격이었다.
형식보다는 내용이 중요하고들 한다. 맞는 말이다. 형식에 집착하다보면 내용의 알맹이가 빠질 때가 많으니까. 하지만 형식에 매력이 없으면, 내용이 아무리 좋아도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끌리지 않는 것도 사실이다. 결국 형식과 내용의 균형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형식적인 말투와 과정들을 싫어한다. 형식보다는 내용을 알차게 채워가는 것이 일순위여야 한다는 걸 머리 속으론 항상 생각을 하는 편이다. 그런데 머리는 그렇게 생각하다가도 살다보면, 내용보다 형식에 끌리는 경우가 너무나 많다. 형식적인 삶은 별로지만, 삶에서도 비즈니스에 있어서도 형식은 정말 중요하다. 다만 그 형식은 내용을 더욱 돋보이게 해주는 역할을 해야하는 건 분명하다는 생각이다.
| 매거진브랜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