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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현수 Mar 10. 2021

브랜드에 대한 호감은 사소한 것에서

치킨무 패키징에 반한 사연

가수 비가 나오는 프로그램을 보는데, 치킨 먹는 모습이 나왔다. 꽤나 익숙한 로고가 보였다. 먹어 본 적은 없지만, 존재는 익히 알고 있던 프라닭이라는 브랜드였다. 처음 프라닭을 봤을 때 참 유치하긴 하지만 재밌는 발상의 브랜드라고 생각했다. 명품 브랜드인 프라다와 후라이드 치킨에서 따온 이름이라니! 좋게 보면 재치있지만 한편으론 짝퉁같은 느낌이 들어 음식에 진정성을 의심할 수 밖에 없자. 당연히 주문으로 이어진 적은 없었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어제는 호기심이 일어 주문하게 됐다. 늦은 밤 공복에 누군가 치킨 먹는 걸 보고만 있는 건 정말 괴로운 일이기도 하고.

도착 알람이 울렸다. 문 앞에 가보니 비닐 봉지가 아니라, 검은색 부직포 가방이 보였다. 그 모습이 마치 프라다에서 산 핸드백이나 신발을 누가 놓고 간 기분이 들었다. 치킨이 담긴 박스 포장도 일반적인 네모 반듯하지 않고 둥근 돔을 연상시키는 유럽식?이었다. 돔을 열어 젖히니 먹는 방법과 이런 저런 음식에 대한 설명들이 구구절절 써 있었다. 배고파서 그냥 지나 치긴 했지만, 참 친절하다는 인상을 받았다.

빽빽한 텍스트를 걷어내니 드디어 치킨이 보인다. 그 전까지의 개봉 경험이 좋아서인지 거실의 은은한 조명 때문이지는 모르겠지만 지금까지 볼 수 없었던 치킨의 비주얼이다. 노릇 노릇 잘 익었다. 살도 통통하게 오른 게 먹음직스럽게 보인다. 물론 공복이란 것도 그런 느낌을 강하게 주는 요소이긴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맛은? 사실 치킨이 뭐 거기서 거기겠지 하다가, 너무 맛있어서 충격을 받았던 교촌 허니 콤보만큼은 아니었다. 하지만 꽤나 맛이 좋았다. 프라닭 기본 메뉴를 시켰는데 양념이 자극적이 않고 담백했다. 부족한 양념맛은 따로 주는 두가지 붉은색 소스와 고추마요 소스를 찍어 먹으면 됐다.
 
개봉 경험이나 맛까지도 훌륭했지만, 가장 마음에 들었던 건 따로 있었다. 함께 달려 나오는 치킨무 때문이었다. 더 정확히는 무를 포장한 용기때문이었다. 치킨 먹을 때 빼 놓을 수 없는 치킨무. 이 게 없으면 사실 치킨을 끝까지 먹기가 어려울 때가 많다. 때문에 무조건 있어야 하는 짝궁이다.

그런데 그걸 열려고 할 때마다 뭔가 분노의 감정이 솟아날 때가 많다. 빨리는 먹고 싶은데 잘 뜯어지지가 않는다. 손으로 뜯었다가는 넘칠 듯 가득 채워진 국물이 흘러내리기 쉽상이다. 그나마 맑은 색이라 다행이긴 하지만 옷에 묻거나 하면 찝찝함이 말할 수가 없다. 시큼한 식초 냄새가 꽤 오래가기도 한다. 그래서 대부분은 먹던 포크를 찍어 빙둘러 제거하거나, 주방까지 달려가 가위를 가져와야했다.

이런 번거로운 과정이 치킨을 먹을 때까지의 분위기가 와장창 깨지는 경우가 너무나 많았다. 치킨 먹는데 무슨 분위기냐고 하겠지만, 보통 치킨은 티비나 영화 틀어 놓고 조명을 적당히 낮추고 거실 소파에 등을 기대고 먹지 않는가! 가장 분위기 좋을 자정 가까운 시간에 말이다.

그런 것까지 고려했던 걸까. 프라닭의 치킨무는 너무나 자연스럽고 부드럽게 스르륵 열렸다. 용기를 덮고 있는 비닐을 세개 당길 것도 없이, 마치 포스트잇을 떼낼 때의 기분으로 열리는 게 신기했다. 그 게 뭐라고 박수치고 감탄하며 설명하는 나를 본 아내는 그 게 그럴만한 일이냐는 황당한 표정이었다. 아무튼 야식을 거의 먹지 않는 우리 부부가 처음으로 완벽하게 먹은 첫 치킨이었다.

브랜드 호감은 한가지 이유에서만 일어나지 않는다. 그런데 사소하지만 특별한 경험을 하게 해준 브랜드에는 호감을 넘어 알리고 싶고 도와주고 싶은 마음까지 일어나게 하는 것 같다. 세심한 것까지 신경 쓰고 연구한 과정이 떠오르고 고마움이 생기는 것이다. 프라닭은 과연 치킨무의 비닐캡이 잘 열리는 감을 테스트하고 개발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시간을 들였을까. 그걸 생각하자 브랜드의 호의에 어떻게든 보답하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알아서 챙겨주고 내 마음처럼 만들어주는 사람은 어딜가나 인기가 있다. 브랜드도 마찬가지 아닐까. 내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사소한 것들을 발견하고 해결해주려고 노력하는 브랜드는 사랑받을 수 밖에 없다.

사랑의 시작은 특별하고 대단한 것보다는 아주 사소한 것에서 싹이 튼다. 그 게 정답이라는 건 누구나 알고 있다. 사랑받는 브랜드가 되는 길도 정해져 있다. 사소함이 만드는 사랑처럼 브랜딩하는 것이다.

|  매거진 브랜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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