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를수록 선명해진다
새로운 브랜드를 준비하는 대표님께서 브랜드 네임에 대한 의견을 여쭤 보시길래 조심스럽게 몇가지 방향성에 대해 말씀 드렸다. 그 브랜드에 대한 지식이나 정보가 너무나 부족하고 아직 완벽한 이해도가 없는 상태라서 확답을 드리기가 어려웠다.
수년간 브랜딩 업계에 있었던 경험에 비추어 말하자면, 브랜딩에 있어 브랜드 네임이라는 산이 제일 높고 험하다. 사실 네임만 정복하면 그걸로 홍보하고 디자인하는 일이야 어떻게든 가능하다. 하지만 이름도 없고 결정되지 않은 상태의 브랜드는 뭔가 뿌연 안개 속에 갇힌 상황처럼 느껴질 때가 많다. 그런 점에서 보면 브랜딩의 출발은 브랜드 네이밍이라고 해도 무리는 아니다.
왜 그렇게 어려운 걸까? 브랜드 네임이라는 산이 험한 몇가지 이유가 있다.
첫번째는 브랜드의 전략을 담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저 듣기 좋은 이름이 전부가 아니다. 브랜드 전략은 브랜드 네임과 연결되고, 브랜드 네임은 다시 전략과 연결된다. 때문에 보통 규모있는 전문 네이밍 회사는 브랜드 기획 전략팀을 갖추고 있다. 그게 아니더라도 네이미스트 개인들 또한 언어적 전략가들이기도 하고, 언어의 기획자들이기도 하다. 단순히 언어적 감각만으로 브랜드 네임을 잘 만들 수는 없다. 시장에서 성공할 수 있고 경쟁 브랜드들 사이에서도 우위를 점할 수 있는 전략적 언어의 브랜드 네임이 나와야 한다. 브랜드 전략 하나로도 어려운데, 그걸 몇마디 언어로 압축해서 표현하는 일이 어디 쉬운 일일까.
두번째는 감각을 담아야 하기 때문에 어렵다. 아무리 전략을 잘 표현하고 의미를 잘 담아내더라도 불릴 때의 어감이나 느낌이 별로면 좋은 이름이 아니다. 부르기도 쉽고 불릴 때도 기분 좋은 이름이어야한다. 음운론에 따른 발음의 방식이나 뉘앙스를 민감하게 감지할 수 있어야 좋은 이름을 만들어 낼 수 있다. 이성과 감성의 촉수가 모두 동원되어야 하는 일인 것이다.
세번째는 법률적인 문제를 해소한 이름이여야 하기 때문에 쉽지 않다. 세상에 좋은 이름은 많지만, 좋은 이름은 이미 상표로 등록이 되있을 가능성이 많다. 내가 좋은 건 누군가도 좋을 확률이 높으니까. 특허청에 키프리스를 통해 검색하면 금방 확인할 수가 있는데, 정말이지 왠만한 좋은 이름들은 그 안에 다 있다고 보면 된다. 그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 새로운 브랜드 네임을 만들어야한다. 이 걸 피해가면서도 위의 두가지 조건을 맞추기가 최근에는 가장 큰 숙제인 것 같다.
위에서 언급한 세가지는 브랜드 네임이 기본적인 갖추면 좋을 요소들이다. 그렇다면 그 기본을 갖춘 이름들의 표현 방향성에 대해 알아보자. 질문해주신 분의 브랜드가 IT계열의 스타트업이니만큼 그 분야의 브랜드 네임들로 한정해 설명해 보려고 한다.
첫번째로 생각할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형식이 업의 속성을 표현하는 것이다. 직방(부동산 중계), 배달의민족(배달), 스타일쉐어(패션정보), 세탁특송대(세탁)등의 브랜드들이 있다. 이름안에 업의 속성을 대표하는 키워드가 들어있어듣자마자 뭘 하는 브랜드인지, 어떤 걸 할 브랜드인지 직관적으로 알 수 있다. 스타트업 브랜드에 특히 이런 류의 이름들이 절대적으로 많은 이유는 쉽고 전달력이 좋아 초기 홍보에 유리하다는 점을 들 수 있겠다.
두번째는 소비자 혜택에 중점을 둔 이름들이다. 소셜커머스 태동기에 쿠폰이 팡팡 터진다는 뜻의 '쿠팡'이 대표적이다. 물론 지금은 그 뜻을 넘어 더 넓은 의미를 담아가고 있다. 네이버는 인터넷 바다를 항해하는 네비게이터로써 역할을 표현한 이름이다. 인터넷 포털의 역할과 혜택을 표현했다. 야놀자는 여행과 숙박의 즐거움을 표현하고 있고, 카카오는 모바일 커뮤니케이션이 주는 즐거움과 달콤함을 표현한 이름이라고 한다. 이름만 들어서는 사실 구체적인 서비스가 연상되진 않지만, 몇 마디만 추가 설명하면 바로 알 수 있는 이름들이다. 또한 한 영역에만 국한되지 않고 여러 영역으로 펼쳐도 어색하지 않다. 업의 속성의 표현보다 혜택에 중점을 두었기 때문이다. 배달의 미족이 갑자기 쿠팡이 하려고 하는 OTT서비스를 하지는 쉽지 않을 것이다. '배달'이라는 속성이 너무 강력한 이름이기 때문이다.
세번째는 가치를 표현한 이름들이다. 와디즈는 사막의 강이라는 뜻의 wadi에서 왔다고 한다. ‘what is’의 의미도 있다고 하는데, 개인적으로는 ‘와!’라는 감탄사가 앞에 있어 더욱 흥미로운 이름이 됐다고 생각한다. 당근마켓은 당신의 가까이에 있는 동네 중고거래 플랫폼이다. 축약된 이름의 아이디어도 좋지만 ‘당’, ‘근’이라는 음운이 부드럽고 고운 느낌이 들어 더욱 절묘하다. 당근과 토끼 캐릭터를 활용한 시각적인 이미지도 브랜드 네임에 호감을 일으키는 요소이다. 고위드는 스타트업의 지원하는 스타트업이라는 컨셉의 네임이다. gowith라는 이름 자체에 브랜드의 가치가 자연스럽게 잘 녹아들었다.
이렇게 브랜드 네임을 표현하는 주요 방법들인 속성, 혜택, 가치 표현 중심으로 설명해봤다. 사실 셋 중 어떤 표현이 더 좋은 표현인지는 확언하기 어렵다. 브랜드마다의 상황이 다 다를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세가지 키워드 이 외에도 더 다양한 표현과 발상이 존재할 것이다.
사실 아기가 태어나면 이름을 짓는 주체가 부모듯이 브랜드가 태어나면 이름의 선택은 창업자의 몫이라 봐야한다. 작명가가 아무리 좋은 아기 이름을 들고 와도 부모들 마음에 들지 않으면 어쩔 수 없듯이, 네이밍 전문가가 아무리 좋은 이름을 가져가도 결정권자의 마음에 흡족하지 않으면 좋은 이름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물론 별로 내키지 않던 이름도 부르다 보면 좋아지기도 하고, 정말 좋았는데 금방 질리는 이름일 때도 많다.
그럴 땐 이런 방법을 써보는 건 어떨까. 선택하려고 하는 이름을 하루 종일 불러보는 거다. 부르다 보면 만들어 가고자 하는 브랜드의 미래가 잘 그려지는 이름이 있는가 하면, 입에서 겉돌기만한 이름도 있을 것이다. 결국 좋은 브랜드 네임은 브랜드의 감각을 언어로써 잘 표현한 이름이다. 그만큼 표현이 잘됐다면 부를 때마다 선명할 그림이 그려지고, 또 새롭게 그려갈 가능성이 많은 이름인 거다. 그렇게 이름이 생기게 되면 브랜드에도 비로소 생기가 돌기 시작한다. 그제서야 진정한 시작인 것이다.
| 매거진 브랜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