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우현수 Feb 16. 2022

정치 색깔과 브랜딩

정당에 심어 놓은 컬러코드

역대 정당 중 브랜딩적 관점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두 개의 정당이 있습니다. 바로 새누리당더불어민주당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정치에 있어 브랜드의 이미지가 대중들의 선택에 있어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 확인할 수 있었던 좋은 사례였습니다. 정책도 중요하고 인물도 중요하지만, 결국 대중들은 이미지를 선택한다는 저의 가설을 증명했다고 생각한 사례였습니다.


 '이미지 정치'라는 보통 말은 부정적으로 쓰입니다. 과하면 좋을 게 없겠지만 저는 이게 꼭 나쁘게만 보이지는 않더군요. 자신들의 정치를 '이미지'로써 드러내는 일은 대중들에게도 좋은 일입니다. 물론 그 이미지를 일부러 왜곡하거나 속이지만 않는다면요. 정당이 가진 관점과 가치를 브랜드 이미지라는 그릇에 담아 보여줄 수 있다면 얼마나 효율적이고 빠른 커뮤니케이션일까요. 365일을 백분토론을 해야 겨우 알아들을 수 있는 말들을 몇 마디의 메시지와 이미지에 담아낸다면 그 걸 받아들이는 입장에서는 참 편할 것입니다. 안 그러면 그 어려운 정치적 상황들을 살피고 공부하느라 정말 수험생처럼 밤샘을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럴 바에야 차라리 대의 민주주의를 버리고 광장에 모여 직접 민주주의를 하는 게 더 좋은 방법일 겁니다.


그렇지만 대다수의 국민들은 그럴만한 여유도 시간도 없습니다. 정치 고관여의 소수 대중들이 아니라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잠깐의 뉴스와 매체에 노출되는 정보로 정치를 판단합니다. 그런데 이게 비단 정치적인 판단만 그렇게 하는 건 아닙니다. 우리는 일을 시켜보지도 않고 채용을 하고, 살아보지도 않고 결혼을 합니다. 우리 일상의 결정 메커니즘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결정적인 선택은 결국 이성적인 판단의 작용이라기보다는 감정이 담긴 이미지적인 판단이 더 크게 작용할 때가 많습니다. 그런데 이게 너무 본능적이고 무성의하고 어리석은 선택일까요? 그렇진 않은 것 같습니다. 이런 선택의 결과로 인류가 지금까지 잘 먹고 잘 살아남아 있는 걸 보면 말이죠.


색깔, 이미지, 감각, 감성 같은 말들은 정치와는 좀 거리가 있어 보입니다. 그런데 정치를 브랜드화, 이미지화한다고 했을 땐 이 단어들이 굉장히 중요해집니다. 이 걸 잘 이해하고 실행한 두 정당의 사례를 한번 살펴보면서 더 자세히 설명드리겠습니다.


먼저 새누리당입니다. 한나라당이 새누리당으로 당명을 변경하고 창당 때부터 써왔던 파란색을 버리고 빨강을 썼던 선택을 보면서 저는 그야말로 이미지 정치의 혁명적 사건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만큼의 변화가 아니면 용서받지 못할 만한 잘못을 해서이기도 했지만, 혁신을 넘어 혁명적인 자각과 쇄신의 의지가 눈으로 보였습니다. 그런 결정들을 할 수 있는 각오와 다짐이 너무나 신선했죠. 무엇보다 그런 의지들이 당명이나 로고, 디자인 등으로 가시화된 이미지에 적절하게 반영되어 설득력이 더 커졌죠. 사실 그 정도로 새롭게 접근하고 세련되게 시각 언어를 사용했던 정치집단은 그 이전에는 볼 수 없었습니다.



전혀 정치적이지도 않은 일상어 같은 소프트한 당명 '새누리'도 좋았지만, 저에게 인상적으로 다가온 건 바로 색깔이었습니다. 분단이라는 특수한 상황에서 붉은색을 쓰는 일은 참으로 민감한 일입니다. 레드 콤플렉스를 지닌 우리에게 이념이라는 색깔은 아직도 국민 각자의 정치색을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이기도 합니다. 붉은색이라는 이 강렬한 이미지는 위험하고 불온한 메시지를 은연중에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민주당 등 진보당에서는 절대 쓰지 못할 색이 붉은색 계열이기도 합니다. 보수당의 입장에서는 그런 걱정이 별로 없습니다. 이념의 누명을 쓸 일도 없을 테니 기존에 쓰고 있던 파랑과는 전혀 반대쪽의 색깔인 빨강을 선택할 수 있었겠죠. 색깔의 선택만으로도 정당 브랜드의 리뉴얼이 아니라, 레볼루션급의 변화였습니다.


붉은색은 기본적으로 태양을 상징하여 열정적이고 힘 있는 이미지를 줍니다. 새롭게 변화하고자 하는 열정적이고 과감한 정치 혁신의 이미지를 정말 잘 대변하고 있었습니다.


새누리당은 붉은색을 쓰는 방법도 또한 참 영리했습니다. 빨강을 전면에 지루하게 다 쓰는 게 아니라, 흰색의 여백을 많이 주고 붉은색을 포인트로 쓰는 활용 했습니다. 새누리당의 경우 같은 붉은색이라도 흰색 비율이 많아지니 훨씬 세련되고 산뜻한 느낌을 줍니다. 뜨겁기만한 빨강이 아니라, 다소 냉정하고 이성적인 도시적인 이미지도 있습니다. 만약 붉은색이라도 전면에 활용하거나, 금색과 결합된다면 완전히 다른 느낌을 줬을 것입니다. 같은 붉은색을 썼지만 중국이나 북한의 당을 떠올릴 일은 없습니다.



로고의 모양도 곡선으로 표현해 빨강의 강렬한 이미지를 상쇄했습니다. 그에 비해 자유한국당의 횃불 마크는 안 그래도 뜨겁고 열정적인 색에 기름을 붓는 격이었습니다. 다행히도 지금의 국민의힘의 마크는 다시 냉정하고 이성적인 면이 강조되어 붉은색이 그저 뜨겁게만 느껴지지 않아 균형점을 찾은 느낌입니다. 만일 마크가 더 동적이거나 복잡한 형태였다면 원래 빨강이 가지고 있던 에너지가 한없이 분출됐을 것입니다.


새누리당은 결과적으로는 실패한 정당이 되고 말았지만, 처음 시작할 때의 모습은 정말 브랜드를 잘 이해하고 잘 활용하던 정당으로 제 기억에 남아있습니다.



다음으로 인상적인 브랜딩한 정당은 더불어민주당입니다. '더불어'라는 일상어가 '민주'라는 무겁고 심각한 키워드 앞에 붙으니 훨씬 친근해졌습니다. 운동권 출신들이 모인 집단이라는 다소 과격한 이미지를 좀 더 순하고 부드럽게 합니다. 쉽게 다가갈 수 있는 우리 가까이에 있는 정당이라는 이미지를 줍니다.


색깔의 스펙트럼도 넓어지고 느낌도 확 바뀌었습니다. 사실 민주당이 오랫동안 써왔던 색상은 주로 노랑과 녹색 계열의 색상이었습니다. 2012년 한나라당이 새누리당으로 변경하고 빨강으로 변하기 전까지는 그랬죠. 그런데 사실 노랑과 녹색은 약점이 많은 색입니다. 빨강이나 파랑보다는 호불호가 갈리는 애매한 색이기도 하죠. 노랑은 정치적으로 미숙한 느낌을 줍니다. 녹색은 수수하고 순수한 자연을 떠올리게 합니다. 인간적인 이미지를 주는 건 장점이지만 다소 촌스럽고 오래된 느낌을 주기도 합니다. 그에 비해 더불어민주당의 파랑은 성격이 훨씬 명확해졌죠. 빨강의 보수 정당과 확실한 대비를 통해 확연하게 달라 보이는 효과를 줍니다.


그런데 이런 갑작스러운 변화에는 단점도 있었습니다. 수수하던 캐주얼 차림의 여인이 갑자기 정장 차림의 커리어 우먼이 되어 나타난 느낌이랄까요. 기존의 색깔과는 너무나 달라서 당황스러웠죠. 빨강을 짧은 시간에 자연스럽게 흡수한 새누리당과는 대조적이었습니다. 아마도 파랑이라는 색깔을 주도적으로 선택하는 게 아니라, 상대 당의 선택으로 할 수 없이 받아들인 색이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전략적으로 선택한 게 단일의 파랑이 아니라, 파랑과 노랑과 녹색이 '더불어 모인' 정당색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기존 민주당의 역사에서 가장 많이 썼던 색상을 다 사용한 거죠. 컬러코드를 통해 '더불다', '함께'라는 이미지를 표현할 뿐만 아니라, 정당의 역사성까지 담아낸 선택입니다.

색상 표현에 쓰인 '그러데이션 gradation' 기법은 색의 농도가 차츰 변하는 단계를 표현합니다. 갑자기 급진적인 변화라기보다는 서서히 스며드는 느낌의 변화죠. 더불어 평등의 가치를 생각하는 정당의 가치를 잘 말해주고 있습니다.


이전의 민주당이 다소 촌스러운 이미지에서 도시적이고 스마트한 이미지를 얻어낸 것도 이 컬러코드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정치적 비전과 메시지를 잘 담아낼 수 있는 장치가 됐습니다.




여기까지 대선이 얼만 남지 않는 상황에서 두 유력 정당을 브랜딩적인 관점에서 다시 살펴봤습니다. 역대 어느 선거보다 브랜딩과 디자인의 역량이 한 단계 올라간 느낌을 받습니다. 국민의힘은 새누리당 시절, 더불어민주당 대선 승리의 경험이 있습니다. 생각해보니 두 번의 경우 제가 느끼기에 모두 정당이 '브랜드'로 보일 때였습니다. 브랜딩의 수준을 봤을 때 이번 대선 또한 두 정당 모두 브랜드로 보입니다. 팽팽한 접전인 만큼이나 브랜딩적 관점에서 어느 한쪽으로 기울어 보이지 않습니다. 들리지는 않지만 브랜드 이미지메시지의 격돌에서도 치열한 싸움을 하고 있는 듯합니다.


저는 정치도 하나의 쇼라고 생각합니다. 어쩌면 가장 짜릿하고 흥미진진한 쇼입니다. 이 쇼를 매력 있게 잘 만들어 낼 수 있는 능력이 있는 정당이 승리한다고 생각합니다. 그 구성 요소 중 가장 중요한 건 첫 번째 이미지이고 두 번째는 메세지입니다. 이 두 가지는 브랜딩을 이루는 가장 핵심적인 요소이기도합니다. 자신들의 정치 색깔과 생각을 언어적, 비언어적 요소로 적절하고 조화롭게 연출해 멋진 '쇼'를 만들어낸 정당이 승리할 것입니다.  


정치가 바뀌지 않는다, 새롭지 않는다는 말을 많이 듣습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저 위에 1960년 불과 60년밖에 안된 정당의 색깔과 디자인이 놓인 연대표를 보세요. 정말 얼마나 발전했는지 모릅니다. 조선왕조 500년도 아니고 불과 60년 만의 일입니다. 이제껏 해 온 것처럼 앞으로도 더 많은 정치 색깔들이 나타나고 융합하고 해체를 반복해가면서 끊임없이 새로운 정치 색깔을 만들어내는 실험들이 멈추지 말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렇게 해서 연출된 쇼의 수준이 올라갈수록 우리의 삶도 우리나라도 더욱더 좋아질 거라 믿고 있습니다.




글. 우현수


브랜딩 회사 BRIK.co.kr을 운영하며

기업과 개인의 브랜드 빌딩을 돕고 있습니다.

저서<일인 회사의 일일 생존 습관>을 실천하며

더 나은 미래를 쌓아가고 있습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T맵은 왜 SK색깔을 뺐을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