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라는 조직에 속해 일할 때보다 혼자 일하면서 관계의 중요성이 더 절실해진다. 무신경했던 것들마저 더 신경 쓰이고 챙기게 된다. 모든 일이라는 게 관계 안에서 형성을 되고 만들어진다. 혼자 일하는 1인 기업에게 는 더더욱 그렇다. 관계라는 단어의 크기가 회사라는 울타리 안에 있을 때보다 훨씬 크게 다가온다. 회사라는 간판 뒤에 살짝 물러나 관계에 소극적일 수 있었던 때와는 비교할 수 없다. 하나 하나 맺어가는 관계와 사소한 인연도 소중하게 느껴진다.
관계라는 사슬에서 벗어나 좀 더 자유롭고 싶어 독립을 선택했지만 오히려 ‘관계가 전부다’라는 명제를 매순간 매번 확인하고 있다. 관계라는 씨앗이 자라 일이 만들어진다. 일이 진행되어 잎이 자라고 열매가 맺으면 그 열매가 다시 다른 관계를 맺어 가는 순환의 과정을 겪는 걸 몸소 체험하게 됐다.
잊고 지내던 십년 전 의뢰인이 다시 찾아오는 경우도 있고, 십대를 함께 보냈던 고교 동창이 연락을 해와 일을 맡기기도 한다. 동호회를 통해 만난 친구가 성공한 스타트업 대표가되어 연락을 해올 때도 있다. 지금까지 관계를 맺어 온 작지만 소중한 경로를 통해 관계의 씨앗들이 다시 피어나고 맺어지고 있다.
브랜딩 업무라는 게 한번 하면 몇년을 쓰는 거라 지속적으로 관계를 이어가기가 쉽지는 않지만, 브랜드 업데이트를 위해 잊지 않고 연락해오는 관계도 너무나 소중하다. 직접적으로 일을 함께 하지 않았지만 옆에서 지켜보다가 연락을 해오는 분들도 있다. 결국 이런 관계망이 점점 촘촘해지고 넓어지면서 사업도 조금씩 안정되어 왔다.
이런 생각때문인지 예전 같으면 단칼에 거절했을 일들을 쉽게 하지 못할 때가 많아졌다. 당장의 불이익이나 어려움을 생각하면 하지 못할 일이지만 관계의 소중함을 알기에 뿌리치기 힘들 때도 많다. 물론 없던 힘이 생겨날 때도 있다. 그런 결정이 당장 도움은 안되더라도 나중에는 어떤 방식으로 돌아온다는 걸 경험하는 일이 많아지면서 ‘안됩니다’라는 말을 꺼내기가 너무나 어려워졌다. 물론 굳이 내가 하지 않아도 될 일을 부탁 받거나, 내가 해도 별로 큰 도움을 주지 못할 일들은 예외다.
사실 회사라는 조직 안에서는 보통 나와 관계되는 사람을 통해 직접 일이 들어 오는 경우는 많지않다. 내가 아닌 회사라는 간판을 통하거나 상사의 지시에 의해 일이 들어 온다. 그걸 겨우에는 회사나 상사라는 중간 방어막이 있기 때문에 심리적 부담은 훨씬 덜했다. 하지만 1인 회사로 지내는 일은 내가 방어막이 됐던 회사와 상사가 돼야한다. 그 중간 지대에서 조정과 조율의 역할을 해야한다. 양쪽과 함께 최종 목적지까지 도달하기 위해 중심을 잘 잡고 가야한다.
관계는 1인 기업 운영에 있어 일을 수주하는 경로뿐 아니라 일의 진행과정에 있어서도 중요하다. 일의 시작은 보통 혼자지만 진행은 여러개의 관계망을 통해 이루어져야할 경우가 많다. 그렇게 완성될 일을 위해 다시 새로운 관계를 조직하기도 한다.
때론 내가 처리할 수 없는 부분들은 외부 인력이나 회사를 섭외해 함께 일해야한다. 그렇게 되면 내가 의뢰인의 회사와 외부 협력 회사 사이를 조율하는 중간자의 위치에 놓인다. 중간에 서서 의뢰인의 목표가 잘 전달되게 외부 파트너사에게 전달을 하고, 외부 파트너사의 입장을 의뢰인에게 알아 듣게 설명도 해야한다. 회사라는 조직에서 보다는 커뮤니케이션하는 빈도는 많이 줄었지만, 밀도는 훨씬 올라간다. 회사라면 내 입장을 좀 더 어필해 나에게 유리한 쪽으로 정리할 수 있겠지만, 혼자서 중간자의 입장에 놓이게 되면 나라는 연결고리가 사라지면 그 프로젝트 자체가 사라지는 상활이 벌어질 수 있다. 그래서 더 조심스럽고 더 꼼꼼히 체크해야한다.
항상 중간자의 입장에 있어보니 예전에는 보이지 않던 양쪽의 상황들이 더 잘보인다. 보이지 않던 대표와 직원들의 관계도 서로의 입장 차이도 더 잘 보인다. 서로가 어떤 이유로 그런 생각을 했는지 더 이해가 간다. 의뢰자와 창작자 사이, 기획자와 디자이너 사이의 생각 차이도 중간에 서 있으니 눈에 훨씬 잘 띈다. 서로가 생각하는 방향과 시각의 차이가 어떤 지점에서 생기는지도 중간 지대에 서 있으니 더 훤히 넓게 보이는 기분이다.
이렇게 경계에 서서 관계를 맺고 일을 진행하다보니 중간의 입장을 이해하고 균형잡힌 시각을 가져보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게 이해해 보기도 한다. 결국 자유롭기 위해 선택한 1인 기업이라는 형태의 일의 방식은 더 많은 관계를 맺고 더 신경쓰고 확장시켜야 더 성장해갈 수 있었다는 걸 확인시켜주었다. 아니 성장 이전에 생존할 수 있는 기본 요소였다. 당연히 관계라는 의미에 대해 더 진지하게 성찰해보는 계기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