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일하는 사람에게는 더더욱
예전 회사에서 브랜드 개발을 진행할 때였다. 디자인이 주력인 회사이다 보니 네이밍 전문 회사와 협업을 하는 경우가 많았다. 보통 기업들의 브랜드 네이밍이란 게 번뜩이는 아이디어보다는 사업의 방향성을 담은 경우가 많아서인지 제한 사항이 너무나 많았다. 그러다보니 재밌거나 흥미롭지 않고 딱딱하고 건조한 느낌이 많았다. 단번에 입에 감기고 듣자마자 이거다 싶은 게 네이밍이 참 어려운 거란걸 그 때 알았다.
그러던 중 어떤 파트너사의 골프장 관련 네이밍 보고서를 보고 눈이 번쩍 뜨인 적이 있다. 기존에 접근하는 방식과는 전혀 다른 테마를 끌어와 네이밍의 당위성을 설명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네이밍 아이디어를 추출하고 설명하는 방식이 너무나 새로워 아직까지 그 네임이 적힌 보고서 페이지가 머리 속에 그려질 정도다.
사실 그 전까지 내가 봐왔던 네이밍 보고서들은 꼼꼼한 시장 분석과 경영서에 나오는 논리와 전략을 제시하는 네이밍이 많았다. 그런데 새롭게 보였던 그 파트너사는 접근 방식부터 달랐다. ‘시’라는 감성적인 소재를 가져다가 네이밍을 제안했던 것이다. 논리와 이성으로 정돈된 네임이 아니라, 감성적인 테마를 끌어 온 네이밍은 눈 앞에 그려지듯 생생하고 공간과 계절의 느낌까지 가지게 했다.
그 이름을 제안한 네이미스트는 골프와 관련된 생각을 하다가 예전에 알고 있던 영시를 떠올랐다고 한다. 그 시에 있는 한 문장이 네이밍 모티프가 됐다. 이 전에는 보지 못한 그런 방식은 어떤 네이밍 제안들보다 매력적이었다. 골프를 쳐본 적이 없었지만 그런 이름을 가진 감성의 골프장이라면 나도 한번 들러 이름이 담긴 시를 떠올리며 필드 위를 거닐어 보고 싶은 생각마저 들었다.
네이밍은 객관적인 상황이나 분석 내용만으로는 부족하다는 생각을 했다. 그걸 토대로 개인적인 생각과 감동의 포인트도 함께 담아내야 정말 좋은 네임이 나온다는 사실을 알게됐다. 개인적으로 감동한 포인트가 고객들이 감동하고 설득될 수 있는 포인트가 되기때문이다.
이런 생각과 비슷한 문장을 봉준호 감독의 입으로도 들은 적이 있다. 기생충으로 아카데미 감독상을 수상한 봉감독은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창의적인 것이다’라는 마틴 스코세이지 감독의 말을 새기며 영화 공부를 했다고 한다. 사적인 게 어떻게 가장 많은 대중의 마음에 다가갈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 들었지만 이내 고개를 끄덕일 수 밖에 없는 이유는 나 자신 또한 거대 담론보다는 한 사람의 사적이고 내밀한 이야기에 더욱 마음이 움직이기 때문이었다.
이는 비단 영화나 스토리가 있는 문화 예술분야에만 통하는 건 아닐 것이다. 상품을 팔고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업이나 브랜드에서도 자신들의 생각을 담은 제안을 하고 개인적인 얘기를 하는 게 중요하다. 남이 만든 기준과 지식과 틀에서 벗어나 나만의 독자적인 이야기가 고객들의 마음을 움직인다. 내 생각과 마음이 절실했다면 다른 사람의 마음도 그러 가능성도 높기 때문이다.
타 브랜드와는 비교도 안될만큼 압도적으로 보기 좋았던 애플의 초기 UI는 창업자 스타브잡스의 개인적 취향과도 연관이 깊다. 그는 타이포그라피 수업을 도강할 정도로 글자와 디자인에 대한 관심이 많았다. 그런 개인적인 애호와 집착으로 만든 제품이 사람들의 사랑을 받게 했다. 봉준호의 영화에서 보이는 계급에 대한 이야기는 인간사를 바라보는 지극히 개인적인 시선도 느낄 수 있었다. 그 게 세계 모든 사람들에게도 통할 거라고는 감독 자신도 몰랐을지 모르겠다 . BTS의 가사에는 멤버들의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과 감정이 담겨있을 경우가 많다. 아마 이들의 이야기가 개개인의 저 마음 속 깊은 얘기들이 아니었다면 이렇게까지 사람들의 마음에 울림이 있었을까 싶다.
사업의 성공에 있어 사업을 바라보는 외부 시선들의 객관적인 지표와 수치는 중요하다.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다. 어쩌면 사업자 마음 속에 있는 가장 개인적인 소망이 사업을 성공 시키는 가장 중요한 씨앗일 수 있다.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건 치밀한 차트의 움직임이 아니라, 사업자가 들려 주는 개인적인 생각과 이야기들의 파동이 아닐까 한다.
그러기에 1인 사업이나 프리랜서들은 더욱 더 자신의 얘기를 더 많이해야한다. 자신의 방식을 대입해 소비자와 시장을 만나야 한다. 남에게 빌려 온 이야기는 감동이 약하다. 완벽하게 나만이 가진, 나만 할 수 있는 이야기가 담긴 서비스와 상품에는 감동이 있다. 그렇게 고객의 마음이 움직이면, 지갑은 자동으로 열리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