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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현수 Mar 20. 2022

하다보면 생기는 일의 의미

신입 디자이너 시절 이름없는 브랜드의 프로젝트가 우리 팀에 떨어지면 의욕이 떨어졌다. 이 건 해봤자 사람들이 잘 모를거고 열심히 해도 내 개인 실적에 크게 도움이 안되는 일이라고 생각하면 힘이 쭈욱 빠졌다. 사람인데 그런 마음이 없으면 거짓말일 것이다. 이왕이면 누구나 아는 큰 브랜드를 하고 싶은 건 아마 어떤 디자이너도 같은 마음일테니까.


사실 이 건 정서적 만족감 측면에서도 그렇지만 실질적인 혜택도 컸다. 유명 브랜드를 진행하고 디자인한 실적은 자신의 큰 포트폴리오가 되기 때문이다. 이직을 할 때도 유리하고 개인적인 이력에도 도움을 준다. 기회가 된다면 그런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게 이름없는 수십개의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것보다 실질적인 도움이 되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누구나 탐내는 그런 프로젝트는 경쟁도 치열하고 기회를 얻기도 쉽지 않았다.


이런 심리를 이용해 기업이나 브랜드에서는 좋지 않은 방향으로 이용하는 경우도 더러 있다. 인지도 있는 브랜드를 작업할 수 있는 기회를 얻고 싶은 디자이너들에게 자신들의 유명세를 이용해 말도 안되는 작업 비용으로 일의 의뢰하는 경우가 그렇다. 디자이너 입장에서는 잘만하면 좋은 실적이 되니 쉽게 거절할 수 없는 달콤한 제안이다. 


디자인 서비스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점점 좋아진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이런 경우가 존재한다. 내가 겪었던 최악의 경우는 이보다 더했다. 당신들이 우리 브랜드를 디자인하면서 공부가 많이 될거니 돈을 오히려 내야한다면 농담같은 진심으로 얘기하는데 너무 어이가 없어 말문이 막힐 지경이었다. '이런 아주 대단한 브랜드를 디자인하게 돼서 대단히 영광입니다'라고 속으로만 말하고 말았던 기억이 난다. 


어찌됐든 여러개의 디자인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느꼈던 건 기업의 규모와 브랜드의 인지도가 반드시 일을 하는 의미나 만족도의 크기와는 별 상관이 없다는 것이었다. 큰 브랜드보다 오히려 전혀 몰랐던 브랜드나 처음 시작하는 브랜드에 참여한 디자인이 점점 성공적으로 커 갈 때 디자이너로써 더욱 의미가 생겼다.


프로젝트를 처음 시작할 때는 사실 일 자체보다는 진행하는 담당자나 창업자의 의욕 넘치는 모습과 브랜드에 대한 열정에 일하는 의미가 생긴다. 나중에는 브랜드를 이용하는 호의적인 고객들의 반응을 보며 더 큰 의미를 가질 수 있게 됐다.


그런 경험들이 점점 늘어나면서 언젠가부터 오히려 작고 무명의 브랜드를 더 살피고 애정있게 바라보게 된다. 어떻게 하면 더 크게 성공 시킬 수 있을까를 고민하게된다. 마치 내 사업처럼 감정이입을 하기가 더 쉬워서일까도 싶다. 그렇게 애정을 담아 디자인한 것들은 결과물 또한 만족스러웠다. 


그렇게 의미 자체를 따라 쫓았을 때는 손에 잡이지 않았던 것들이 열심히 하다보니 자연스럽게 의미도 생겼다. 그 동안 큰 일, 유명 브랜드에만 큰 의미가 있는 줄 알았던 내가 부끄러웠다. 


작은 일들은 하찮은 일이 아니라 이제 시작하는 일, 이제 막 싹트기 시작하는 일이다. 작은 전단지 하나를 디자인하더라도 최선을 다해야한다. 한낱 전단지가 아니라 브랜드와 고객의 접점을 만드는 페이퍼라고 생각하면 길거리에서 뿌려지는 종이라도 막 디자인할 수 없다. 그런 마음으로 디자인하면 그걸 받아보는 사람들의 마음에도 그대로 닿을 것이다. 일의 의미는 그렇게 고객들의 마음 속에서 싹트는 게 아닐까.


의미있는 일을 골라서 할 게 아니라, 하다보면 그 일에 의미 생긴다. 그 일의 결과로 또 다른 일들이 생긴다면 의미를 넘어 희망까지 생긴다. 의미 있어 보이는 일만 가려하거나 쫓지말고 의미있는 결과를 만들기 위해 일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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