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를 주문할 땐 왠만하면 머그잔에 담아 마시는 편이다. 머그잔에 담긴 커피가 일회용 컵보다 훨씬 맛있기 때문이다. 똑같은 방식으로 추출한 커피일텐데 맛이 그렇게나 차이가 나다니 희한한 일이다. 물론 내용물은 그대로지만 다른 점은 많다. 담긴 용기의 무게감이나 손에 잡히는 질감 등 일회용 종이컵에는 느낄 수 없는 감각이 있다. 이런 차이가 커피 맛까지 변화 시킬 정도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머그잔에 마시는 만족감은 꽤나 높다.
커피만 그럴까. 라면도 양푼냄비에 먹는 라면이 훨씬 맛있다. 집에서 별로였던 라면인데, 강한 화력의 가스버너 위에서 보글보글 끊여지는 라면은 먹기도 전에 이미 눈으로 맛을 느낄 수 있을 정도다. 야외 공원의 은박 접시 위에서 끊여지는 라면도 매력적이다. 다 같은 브랜드의 라면을 먹는대도 이렇게 끊이는 용기에 따라 맛이 다르다. 이런 현상은 진짜 맛 자체가 변하는걸까 아니면 내 혀끝의 변화때문일까.
같은 회화 작품도 그게 어디에 표현되느냐에 따라 느낌이 많이 달라진다. 캔버스 위에 두툼한 유화로 그려낸 모네의 연꽃 시리즈를 파리의 작은 미술관에서 관람한 적이 있다. 책에서 본 느낌과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몽환적이었다. 환상적인 색채에 매료되어 한동안 정신이 멍해질 정도였는데, 마치 꿈을 꾸는 것 같기도하고 연꽃의 호수위를 걷는 듯한 착각이 들기도 했다. 그 그림이 담은 공간은 아주 크지도 웅장하지도 않는 아담하면서도 곡선을 가진 공간이 이었다. 그런 장소가 아니었다면 나에게 인상적으로 다가오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똑같은 그림을 제주도의 디지털 아트로 본 적이 있다. 미술관에서 본 감동을 그대로 재현하지는 못했지만 디스플레이 위에 구현된 모네의 연인들과 연꽃들은 마치 애니메이션 영화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듯한 느낌을 줬다.
똑같은 콘텐츠를 페이스북에도 인스타그램에도 똑같이 올리고 있다. 내용은 똑같은데 담아내는 그릇인 채널이 페이스북인지 인스타인지에 따라 읽는 사람들의 반응이 무척 다르다. 각 플랫폼에 어울리는 콘텐츠가 있다는 생각을 했다. 사실 나조차도 분명 같은 글인데도 페북에서 읽는 태도와 인스타에서 읽는 태도는 미묘하게 다르다. 아마도 읽는 사람도 나같은 다른 정서로 느껴지는 듯하다. 각 플랫폼을 구성하는 타깃과 노출 범위가 달라서겠지만, 이렇게 다른 반응은 참 신기하다. 페북에서 싸늘했던 어떤 콘텐츠는 하루만에 팔로워가 몇백명이 생길정도로 폭발적이지만 페북에서는 잠잠하고 조용히 흘러간다.
이런 모습들을 보니 내용을 담는 그릇의 중요성에 대해 생각하게됐다. 똑같은 내용이라도 어디에 담기느냐에 따라 얼마나 달라지는지. 어떤 곳에서는 냉대받던 어떤 아이템이 또 다른 곳에서는 극진한 환대를 받을 지도 모를일이다. 이 그릇에 담겼을 때는 인기없던 재능이 이 그릇에 담기니 반짝 반짝 빛을 발할지도 모른다.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
그러므로 내용이 가진 본연의 가치를 키워가는 일도 중요하지만, 그 가치를 제대로 인정받고 받아 줄만한 그릇을 찾는 일도 굉장히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 그릇을 잘 찾아 나서고 발견하고 실험해 보는 노력. 계속해서 시도해보는 것이다. 어쩌면 내가하는 사업을, 우리 상품을 살리는 기점이 될 수도 있는 일이니까 말이다.
개인에게도 내가 품을 수 있는 그릇이 어떤 크기로 어떤 모양새로 존재해야하는지에 대해 생각해보는 것도 개인의 성장을 위해 더 나은 삶을 위해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내가 하는 기획과 디자인이라는 일도 마찬가지다. 기획과 디자인은 어떤 정리된 내용이나 해답을 하나의 그릇에 담아 전달하는 일이다. 무한정 담을 수 없다. 너무 배부르지도 부족하지도 않을 딱 적당하고 먹기 좋게 담아내야 좋은 기획이고 좋은 디자인이다. 그 걸 가장 잘 표현하고 제대로 전달할 수 있는 그릇을 발견하고 담아내 보는 일을 계속해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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