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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현수 Jul 24. 2022

실력이 눈높이를 못 따라갈 때

스무살 때 재수 시절에 서울에서 살아본 것 말고는 20대 후반까지 줄곧 지방 도시에서 학창 시절을 보냈다. 객관적 시선으로 본다면 분명 수도권과의 격차가 커보일진 모르겠지만, 주관적 시선으로 그 안에서 살다보면 큰 차이를 느끼지 못했다.


그렇게 지내다가 ‘내가 지방에 사는 게 맞구나’라고 크게 자각하는 순간이 있었다. 바로 지역 방송을 시청할 때였다. 지금은 그래도 차이를 느끼지 못할만큼 화면의 수준이 많이 평준화 됐지만, 그 당시만해도 그래픽이나 무대 연출, 의상 등등 중앙의 공중파 방송과의 격차가 너무 심했다. 방송 내용의 질을 떠나 그런 시각적 요소들이 디자인 전공자인 나에게는 더더욱 큰 차이로 느껴졌다.


생각해보면 당연한 일이다. 프로그램 하나에 투입되는 인력이나 예산이 중앙 방송사와 어디 비교가 되겠는가. 하지만 그런 지역 방송사의 처지를 나를 포함한 시청자들이 고려해 줄 만무하다. 버튼 하나만 누르면 볼 수 있는 바로 옆 채널 공중파 화면과 비교할 수 밖에 없다.


공중파 화면들의 수준이란 게 사실은 수십년의 경험을 쌓아 온 우리나라 방송사 최고 인력들이 만들어낸 결과물이다. 지금이야 유투브 등 영상 채널들이 많이 나와 공중파 방송들의 화면 수준이 얼마나 전문적이고 높은지 알게 됐지만 , 이런 비교 대상도 없던 시절 내 눈 높이는 최고 수준의 방송 화면에 맞춰졌던 것이다. 마치 대기업에서 만들 광고 수준만 생각하다가 중소기업 광고를 보는 느낌이랄까. 제작자들의 사정이나 고충에는 상관없이 내 눈 높이는 이미 높은 수준에 가 있었던 것이다.


내가 하는 일인 브랜드 디자인도 마찬가지였다. 할수록 좋은 디자인을 보는 안목은 올라간다. 어떤 디자인이 더 좋은 거란 걸 경험이 쌓일수록 느끼게 된다. 그리고 매체 노출도가 높은 국내 탑 디자인 회사들의 수준의 퀄리티가 눈에 자주 들어 오다보니 눈 높이는 끝을 모르고 계속 올라가기만 한다. 수준 높은 경험을 할수록 그런 흐름은 가속화된다. 내가 보여줄 수 있는 디자인 포퍼먼스의 현실과 눈 높이 속의 수준은 격차가 더 벌어진다.


그런데 정말 심각한 문제는 올라간 눈높이는 절대 다시 내려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내 눈높이 수준의 디자인 포트폴리오를 생각하다보니 정리하는 일은 점점 미루게 된다. 하더라도 잘 만들어야한다는 부담감에 시간이 점점 더 늘어나게 된다. 그렇게 해도 해낼 자신이 없다보니 손 댈 엄두가 안난다. 예전의 내가 중앙 방송사와 지역 방송사를 내가 비교했던 것처럼 내 디자인도 분명 사람들이 비교할거라는 생각을 하면 실행하기가 더욱 더 어려워진다.


최근에는 페북이나 인스타의 인플루언서들의 컨텐츠를 보면서도 그런 생각을 많이 한다. 어떻게 저런 글과 콘텐츠들을 계속 쓸 수 있는지 부러울 정도로 대단한 사람들이 많다. 매일 소셜미디어를 통해 대면하는 그 대단한 분들의 콘텐츠를 자주 보다 보니 그게 익숙하고 마치 콘텐츠의 기준처럼 되어간다. 그들의 수준과 사람들의 반응도에 비하면 내 콘텐츠는 힘이 없고 매력없어 보이기까지 한다.


그런데 엄밀히 따지면 그건 착시 때문이다. 실은 내 눈에 들어오는 분들의 수준은 산으로 치자면 하나의 봉우리같은 사람들일 경우가 많다. 자주보다 보니 익숙해져 그게 마치 평균처럼 보일 뿐이다. 봉우리만 보이고, 산의 허리 부분을 보지 못하지만 실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봉우리 아래 있다.


그런데 한번 곰곰히 생각해보자. 그 대단한 사람들도 처음부터 그 봉우리에 앉아 있었는지를. 아마 그 분들도 우리처럼 앞으로 분명 산의 허리 언저리 부분에 머물 때가 있을 때도, 산의 초입에 막 들어 섰을 때도 분명 있었을 것이다.


그러니 착시에서 벗어나 내가 있는 위치를 직시해야 한다. 그 게 봉우리로

나아갈  있는 출발선이다. 그래야 그곳으로 가려면 , 어떻게 준비해야할지 보일 것이다. 부족하더라도 봉우리와 비교하지 않고, 시도조차 못했던  수준에서의 노력을 다할  있을 것이다.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  눈높이 뿐만 아니라  실력도   봉우리 어딘가를 차지하고 닿아 있지 않을까. 그리고  봉우리의 모습은 다른 어떤 것도 아닌 나만의 높이개성에 담긴 형태로 솟아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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