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우현수 Jul 27. 2022

양이 질로 변하려면

유치원 방학이라 아이와 함께 재택근무를 하고 있다. 정말이지 하루가 이렇게 길었나 싶다. 남의 아이도 아니고 내 아이인데도 이렇게 멘탈이 털리는데 하루 종일 아이들과 부대 껴야하는 선생님들의 심정은 어떨까 싶다.


어제 오전에 잠시 첫째가 학원 간 틈에 둘째와 오랜만에 집중해서 놀아줬다. 아이 둘이 거의 항상 같이 지내다 보니 따로 혼자서 이렇게 있을 때가 많지가 않다. 그래서 어제는 일대일로 재밌게 놀아줘야겠다고 작정을 했다. 사실 가능하면 많은 시간을 아이들과 보내려고 하는 편인데, 그 동안은 내가 놀아준 게 아니라 그냥 옆에만 있어 줬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오늘 함께 놀아줬던 게 좋았나보다. 고마웠는지 엄마에게 계속 아빠가 재밌게 놀아줬다고 조용히 얘길 했다고 한다. 아이들도 알겠지. 그렇게 놀아주는게 쉽지 않다는 걸.


가만 생각해보니 아이들과 함께할 때 나는 시간의 양만 많으면 됐지라는 생각에 그 동안 온 마음을 다해서, 머리를 써서, 신경을 집중해서 놀아 준 적은 많이 없었던 것 같다. 하긴 그렇게 하려고 하다간 한두시간이면 넋다운이 됐을 것 같긴하다.


그래도 양이 아닌 질로 놀아줬던 딱 한시간의 임팩트가 이렇게 크다니 시간의 '질'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됐다. 결국 아이와 함께한 시간을 통해 양보다는 질이 중요하다는 너무나 평범한 사실을 다시 되새기게 됐다. 


사실 양을 채우기는 쉽다. 신경 크게 안쓰고, 머리 많이 안쓰고, 온 마음을 다 하지 않아도 양은 어떻게든 채울 수 있다. 하지만 그렇게 했을 때 결과는 어떨까? 결과가 크게 좋아지는 경우는 없었다. 사실 처음부터 양으로만 승부하고 싶은 건 아니었을 것이다. 질로 막상 승부하려고 하니 머리가 아프고 힘드니 피하게 된다. 양으로 할 때보다 많게는 몇 배의 에너지를 써야한다.


그러면 양에서 질로 가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오늘 아이와 놀아줬던 기억을 되살려 봤다. 일단은 단순해야 한다. 이것 저것 늘어 놓고 놀게 아니라, 딱 하나 강력한 포인트가 될만한 놀이가 있어야 한다. 내가 오늘 놀아 준 테마는 딱지였다. 딱지는 종이를 접고 펴가면서 만드는 재미도 있지만, 완성하고 나면 그 걸 이용해 게임도 할 수 있는 장점도 있다.


두번째 요건은 참신해야 한다. 아이의 흥미를 이끌어 내기 위해서는 뻔한 딱지 놀이가 되서는 안된다. 그래서 약간 응용해봤다. 딱지의 네 모서리를 살짝 접어 다리를 만들었다. 네모난 전차같은 모양이됐다. 그걸 책상 위에서 밀어내는 놀이를 했다. 딱지 놀이라면 당연히 쳐서 뒤집고 넘기는 놀이를 상상했던 아이는 그 놀이가 새롭고 재밌었는지 내내 즐거워했다.


마지막으로 질의 완성은 뭔가 혜택을 주는 기분으로 끝내야 하지 않을까 싶다. 같이 재밌게 잘 놀아주고 거기서 끝나 버리면 뭔가 아쉽다. 이 게임을 잘 해낸 성과를 칭찬하기 위한 상품같은 게 있다면 완벽한 마무리가 되지 않을까. 아이에게 그 상은 바로 시원한 아이스크림이었다. 재밌게 놀고 입까지 즐거우니 아이에겐 이보다 좋은 게 있었을까 싶긴하다.


하지만 이렇게 단순성, 참신성, 혜택만 갖췄다고 반드시 양이 질로 변하는 건 아니다. 결국 이 요건들을 담는 그릇이 필요하다. 어찌보면 질을 결정하는 화룡점정같은 거다. 


바로 내 마음과 신경과 머리로 이 것들을 담아내야 한다. 어쩌면 나를 이루는 전부라고 할 수 있는 이 모든 걸 다 써서 받아내야 비로소 양에서 질로 나아가는 것이다. 이 게 어디 쉬운 일이겠는가. 내가 하는 서비스와 상품을 만드는 일도 마찬가지 아닐까 싶다. 결국엔 내가 가진 모든 힘과 능력과 경험을 다 써야 사람들이 감동할만한 품질을 만들어 낼 수 있는 게 아닐까.



매거진의 이전글 실력이 눈높이를 못 따라갈 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