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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현수 Sep 04. 2022

부르다 보면 답이 옵니다

브랜딩 프로젝트의 시작을 쉽게 하는 법

브랜딩 프로젝트를 수행하다 보면 별의별 사업체를 다 만나게 된다. 내가 평소 생활에서 볼 수 있는 소비재라면 괜찮지만 예를 들어 군사용 발전기나 생명공학과 관련된 산업, 또는 IT나 블록체인, NFT, 메타버스 등 이 전에 경험해보지도 않고 낯선 산업들을 대하면 정말 난감할 때가 많다. 단기간에 공부를 해도 이해하기도 어려운 분야들이니 말이다. 


내 몸에 붙이자


하지만 이는 어떻게든 극복해야 할 문제다. 대상 기업과 브랜드를 이해하는 일이 브랜디 프로젝트의 시작이기 때문이다. 나는 이 과정을 '몸에 붙이는 일'이라고 표현한다. 뜬 구름 같고 추상적인 실체가 몸으로 느껴질 만큼 손에 닿을 만큼 느껴져야 이해했다고 말할 수 있다. 머리로만 인지한 정보들이 몸의 감각이 느낄 정도가 돼야 그 정보가 정말 내가 써먹을 수 있는 살아있는 정보로써의 가치를 지닌다. 


사실 이 정도 이해도 수준이 되려면 가장 좋은 방법은 기업에 직접 방문하거나 관찰하거나 상품들을 직접 경험해보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일 것이다. 하지만 프로젝트는 항상 시간에 쫓기고 예산을 항상 부족하기 마련이다. 그러니 짧은 시간에 이해도를 높이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브랜드 개발사 입장에서 할 수 있는 방법은 굉장히 높은 주의 집중력으로 간접 이해도를 높이는 게 필요하다.



이럴 경우에 브랜드의 이해도를 높이는 방법은 어떤 게 있을까?

내가 하는 방법을 소개하자면 사실 굉장히 간단하다. 프로젝트 기간 동안 그 브랜드의 이름을 계속 불러 보는 것이다. 소리 내서 부르는 게 가장 좋지만 상황이 안된다면 마음속으로 계속 불러보는 거다. 길을까 다가도 밥을 먹다가도 심지어는 꿈에도 그 이름이 무의식 중에 나올 만큼 불러본다. 그렇게 그 브랜드를 공부하면서 불러보는 시간이 일주일 정도가 지나고 나면 신기한 일이 일어난다. 


처음에는 외계어 같던 업계 용어들이 낯설지가 않게 된다. 절대 이해하지 못할 것 같은 정보들도 약간씩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온다. 여기에서 느낌이라는 단어가 중요하다. 이해까지는 아니더라도 느낌이 오기 시작하면 점점 익숙해지고 정보의 습득이 훨씬 편해진다. 그때부터는 조금 더 어려운 정보들도 찾아보며 사업 전반에 대한 이해와 브랜드에 대한 이해를 함께 높여간다. 


지난 5년의 경험 중 IT기업의 클라우드 브랜드를 개발할 때 그런 점에서 가장 어려운 경험을 했다. 산업 자체가 앞으로 왜 중요하고 왜 이 산업이 중요한지는 대략 알겠는데, 도무지 감이 오지가 않았다. 클라우드라는 말처럼 내 머릿속으로 들어온 정보들은 그야말로 뜬 구름처럼 떠다니고 있었다. 그러다가 안 되겠다 싶어 클라우드 리포트들을 여러 개 찾아서 소리 내서 읽어 보기 시작했다. 그렇게 내 입으로 내 음성을 통해 나온 어려운 용어들과 문장들이 점점 익숙해졌다. 일단 겁먹지 않고 계속 읽어 내려갈 수 있었다. 전공자도 아니고 이 분야 전문가도 아니라서 완벽한 이해는 할 수 없었지만 브랜드를 개발하는 데 있어서는 전혀 지장이 없었다. 그렇게 느슨한 이해도를 가진 게 오히려 도움이 된다는 생각도 했다. 완벽하게 이해하고 그 산업 안에 깊숙이 개입한 기업의 당사자들보다 오히려 나의 새로운 관점을 담아 디자인으로 구현할 수 있었다.     


이 프로젝트를 하면서 직접 불러보고 말해보면서 느끼는 정보들이 그 어떤 방법보다 빠른 길이라는 걸 알게 해 줬다. 경력과 경험이 쌓일수록 이 과정의 중요성 더욱 크게 느끼고 있다. 사실 이해가 잘 돼서 '내 몸에 딱 붙는' 느낌이 오면 브랜딩 프로젝트 성공할 확률이 훨씬 높아진다. 


그런 이유로 예전에는 이 과정에 10프로 정도의 시간만 할당했다고 하면 이제는 삼분의 일 이상의 시간을 이렇게 부르면서 이해하는 데 시간을 쓰고 있다. 


자꾸 부르면 가까워진다


이렇게 브랜딩 프로젝트를 내 몸에 붙이는 과정은 내 가족과의 관계를 만들어가는 과정과도 비슷하다는 생각도 든다. 평생을 사는 가족도 이해하기 힘든 게 가족이라고도 하지만 우리는 기본적으로 그들에게 낯선 느낌이 없다. 이는 유전적인 친근함도 있지만 아빠! 엄마! 아들아! 딸아! 이렇게 불렀던 육성의 감각이 쌓이기 때문이 아닐까 라는 생각도 든다. 태어나서 부처 가장 많이 불러봤을 그 이름들이라서 전혀 거부감이 없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게 아닐까.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말할 때 수없이 인용되는 유명한 시가 있다. 바로 김춘수의 ‘꽃’이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라는 이 짧은 문장 안에 브랜딩의 본질이 브랜드 정체성에 대한 핵심이 담겨있다. 누군가를 불러서 그 존재 규정해줬듯이 브랜드 또한 우리가 자꾸 불러줌으로써 정체성이 형성되고 이해도도 올라간다고 생각한다. 


브랜딩 프로젝트를 하고 있는데 이해하기도 어렵고 감이 오지 않는다면 그 이름을 계속 불러보자. 마음속으로 그 이름을 끊임없이 되뇌어 보자. 그러면 신기하게도 메아리처럼 그 부름에 대한 답이 꼭 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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