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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현수 Nov 13. 2022

디자인 발표를 할 때 생각할 것들

티비 채널을 돌리다가 'tvn 넥스트레이블'이라는 최종회를 우연히 보게 됐습니다. 최종으로 살아남은 열명의 디자이너들이 런웨이에서 자신이 디자인한 옷들을 각자 설명하고 있었습니다. 사실 저는 출품작들을 다 봐도 어떤 옷이 가장 뛰어난 디자인인지 판단할 수 어려웠습니다. 그 분야 전문가들이 느끼는 만큼의 감도를 가지지 못할 뿐아니라 멋진 옷을 볼 수 있는 안목을 없어서일 것입니다.


그런데 디자이너들이 자신이 디자인한 옷을 앞에 두고 심사위원들 앞에서 설명할 때는 느껴지는 게 완전히 달랐습니다. 그들이 쓰는 단어, 동작 하나 하나, 눈빛 하나에도 집중이 잘되고 감각이 살아나더군요. 마치 제가 고객사 앞에서 디자인 발표 할 때처럼 감정이입이 되면서 말이죠.


신입 디자이너 시절 발표 하는데 도움이 된다고 해서, 제가 발표하는 걸 영상으로 찍어서 본 적이 있습니다. 참으로 충격적이었습니다. 축 가라앉은 목소리며, 어중간한 표정과 동작, 발표 속도까지 어느 하나 마음에 드는 구석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준비한 내용조차도 매끄럽게 전달하지 못하고 쩔쩔매는 모습을 보면서 이래서 내 디자인을 잘 설득할 수 있을까 싶기도 했습니다. 차라리 영상은 보지 않는 게 심리적으로 낫겠다 싶어 그 이후론 아예 그럴 시도조차 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런데 희한한 게 그렇게 버벅거리며 엉망진창의 발표를 해는데도 디자인이 통과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뜨거운 박스와 환호를 받는 발표는 아니었지만, 내 생각과 주장이 그래도 받아들여졌다는 안도에 깊은 숨을 몰아 쉴 때가 한두번이 아닙니다. 


시간이 많이 지나 이제는 발표 경험도 꽤 쌓였지만 지금도 예전의 어색함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사실 크게 달라지지도 않은 것 같습니다. 여전히 버벅거리고 반복하고, 준비하고 연습한 말을 미처 못하고 발표를 마칠 때가 많습니다. 심지어 말을 하는 순간에도 ‘아,,,정말 말 못하네'라는 말을 혼자 속으로할 정도니까요. 발표하기 전부터 심장이 쿵쾅 거리고 얼굴은 귀까지 새빨개졌던 학생 때의 모습까진 아니지만 그래도 여전히 많은 사람 앞에서 발표하는 건 제게 너무 힘들고 어려운 도전입니다.

그렇다고 달변가처럼 말하고, MC처럼 자연스러운 제스처를 쓰는 것만이 좋은 발표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물론 그렇게 할 수만 있으면 참 좋겠지만 내가 그렇게 할 수 없다는 걸 너무나 잘 알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오히려 '말을 잘하는 발표' 보다는 '생각이 꽂히는 발표'를 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완벽한 개념의 컨셉과 적절한 단어가 담긴 문장으로 만들어진 기획안으로 말이죠. 불과 몇마디 안되지만 컨셉이 좋다면 그 컨셉에 공감이 된다면 듣는 사람의 마음에 와서 딱딱 꽂히죠. 그리고 마음은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물론 이는 제시한 디자인이 좋아야 하는 걸 기본으로 합니다.


오늘 '넥스트레이블'이라는 패션 서바리벌 프로그램에서 우승한 신혜영 디자이너는 자신의 옷을 설명하면서 ‘소프트 카리스마’라는 말을 툭 던지며 시작하더군요. 그 게 저는 굉장히 인상적이었습니다. '아, 이분은 컨셉을 아는 분이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나머지 아홉명의 디자이너는 스타일이 어떻고, 소재가 어떻고, 기능이 어떻고 하는 걸 설명하는데 대부분의 시간을 쓴 것에 비하면 상당히 대조적이었습니다.


‘소프트 카리스마’ 이 짧은 단어 안에 무대 앞에 놓인 디자이너의 옷이 완벽하게 설명이 되더군요. '아 그래서 저런 스타일과 분위기를 만들어 냈구나.' 하고 고개가 끄덕여졌습니다. 발표할 때 디테일, 모던, 로맨틱, 빈티지, 실루엣 이런 영어 표현이나 어려운 업계 용어를 하나도 쓰지 않는 점도 너무 좋았습니다.


여기에 더해 디자인한 옷이 일상에서 어떻게 응용이 되는지 자신이 직접 원래 있던 옷과 매칭해서 보여줬습니다. 다른 디자이너들은 이렇게까지 해야하냐는 시기 어린 시선을 보내더군요. 그런데 이렇게 실생활에 응용하는 모습을 본 심사위원들로 하여금 그 옷을 입었을 때를 상상하는 효과를 줬을 것 같습니다. 그렇게 되면 그 옷은 한층 더 가깝게 그리고 마치 내 옷처럼 느껴지게 될 가능성이 커집니다.


신혜영 디자이너는 태도와 자세, 목소리의 톤까지도 좋아서 굉장히 인상적이었는데요. 사실 저는 옷이 대중성은 있지만 실험성이 부족하다고 느껴졌습니다. 그래서 이런 서바이벌 프로그램에서 우승까지는 어려울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그런 제 예상과는 다르게 결과는 신혜영 디자이너의 우승이었습니다. 결국 자신이 디자인한 옷(스타일)과 함께 그 옷을 디자인한 이유(컨셉)을 심사위원들에게 잘 설명했기 때문이 아닐까 싶었습니다. 최종까지 살아남은 열명의 디자이너에 속했다는 실력은 검증 받았고, 차이가 크지 않았을테니 결국은 컨셉의 싸움이었을 것입니다.


열명의 디자이너들의 자신이 디자인한 옷을 설명하는 발표를 들으면서 앞으로 디자인 발표를 할 때 주의해야 것이 생각났습니다.


첫번째는

컨셉으로 말하고 설명해야지

스타일로만 승부하려고 하면 망한다.

(물론 설명이 필요없는 스타일도 있긴 하지만)


두번째는

디자인에 대한 설명과 스토리가 좋으면

보는 사람들의 생각도 달라진다.

(물론 기본적인 디자인 완성도가 있어야 하지만)


마지막으로 세번째는

디자인은 대중성이 기본으로 하면서

실험성을 가져가야한다.

(물론 실험성만으로 독보적이라면 그 또한 성공적이지만)


이 세가지가 있는지를 앞으로 디자인 발표를 준비하면서 다시 점검해보려고 합니다. 비오는 토요일 오후 우연히 본 티비 프로그램에서 디자인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볼 수 있는 시간을 갖게 되어 좋았습니다. tvn 넥스트레이블 시즌 2가 기대되네요. 그 땐 꼭 첫회부터 챙겨 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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