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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현수 Apr 14. 2023

이유와 이야기


이야기 자체가 아니라 이야기가 만들어진 이유와 원인을 더 궁금해합니다. 이유가 없으면 도통 마음이 움직이지 않는 이유 성애자라고 해도 틀리지 않을 것 같습니다. 언제나 내 앞에 닥친 상황은 어제 내가 했던 일의 결과이거나, 예전부터 해왔던 일이 원인일 때가 많죠.


물론 세상 모든 일을 인과 관계로만 해석하는 건 위험할 수도 있습니다. 어떤 일들은 아무리 생각해도 이유가 없는 것들도 있으니까요. 하지만 대부분은 곰곰히 생각해보면, 원인을 파고들어보면 이유가 있을 때가 더 많았습니다. 제 경험안에서만 본다면 이유없는 결과는 거의 없다고 해도 무방할 정도였습니다. 역사를 통해 우리가 배우는 것도 이런 인과의 상관관계를 공부하면서 통찰력을 기를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싶습니다. 길게는 인류의 역사에서 한 개인의 역사에서도 말이죠.


지금 내 배가 아픈건 그 날전 술을 많이 먹었거나, 기름지고 내 몸에 맞지 않은 음식을 먹었던 이유가 크죠. 마른 몸에 귀여운 똥배도 겨울이라 추워서 봄이라 황사라서 몸을 덜 움직였던 이유가 큽니다. 오늘 내가 지금의 일을 할 수 있는 것도 지난 시간동안 이 일을 위해 경험을 쌓고 고민하고 노력했던 이유겠죠. 해마다 세웠던 어학공부가 조금도 늘지 않고 입도 벙끗 못하는 이유는 의무감으로만 동기부여도 없이 해온 이유가 큽니다. 어떤 사람에게 신뢰를 잃고 나를 싫어하게 만든 것도 어쩌면 내가 그 사람에게 싫어할 이유를 제공한 탓이 클 수 있습니다. 이 것뿐일까요. 하루 종일 내가 겪는 상황들의 대부분이 아마도 그 전에 내가 한, 주변에 누군가가 한 이유들이 쌓여서 만들어낸 결과값인 경우가 상당히 많습니다.


이렇게 내가 하고 있는 일이, 내가 겪는 상황이 지금까지 쌓여왔던 이유들 때문이라면 이유를 아는 일은 정말 중요하겠죠. 이유를 알면 다른 일의 결과도 예상해 볼 수 있으니까요. 그러면 좋은 결과를 만들 수 있는 가능성도 올라갈 것입니다. 반대로 결론만 알고 이유를 모르면 매번 할 때마다 새롭게 해야할 것입니다. 핵심 이유를 찾을 수 없으니 헤맬 수 밖에 없겠죠.


이야기에도 이유가 있어야 설득력이 올라갑니다. 어떤 결론에 다다르기까지의 여정이 보이고 그 과정에서의 작은 이야기들을 읽다보면 전체 이야기가 흘러가야하는 게 정당해 보일 때가 있습니다. 반면에 이유를 모르겠는 이야기의 흐름은 이야기 안으로 몰입하는데 방해요소가 됩니다.


이유가 이야기로 이어지는 상황을 만들어야 내 마음도 상대의 마음도 움직입니다. 저는 어떤 일을 할 때 억지로라도 이유를 먼저 만들어 봅니다. 하다못해 오늘 점심으로 이걸 먹어야하는 이유까지도 떠올려 보기도 합니다. 어떤 제안을 위한 프로젝트의 이야기를 만들 때도 항상 이유를 먼저 떠올립니다. 이 프로젝트의 거대한 이야기가 시작되는 이유를 찾거나 찾아도 없으면 만들고 시작합니다. 그럴듯한 이유라도 붙여서 한편의 영화(프로젝트)에 몰입할 수 있게 합니다. 그렇게 해야할 이유들을 먼저 깔아 놓고 시작하면 실행할 에너지가 저절로 생깁니다. 쓸데없는 곳에 힘을 쏟지 않고 이유에만 집중할 수 있습니다.


이유가 기반이 되어 우리 디자인과 브랜드에 대한 이야기가 완성되면 논리 구조도 더 탄탄해집니다. 이유라는 나침반이 손에 쥐어지면 일의 방향도 설정하기 쉬워집니다. 그렇게 만들어진 디자인 시안과 브랜딩 방향성은 더 큰 공감을 불러일으킵니다. 만약 제안의 결정적 이유가 제안을 받는 상대가 생각했던 거라면 설득을 넘어 마음이 딱 맞는 감동의 순간까지 이어질 것입니다.


일뿐만 아니라 일상에서도 이유를 생각하는 습관은 내가 하는 행동 하나 하나에 명분을 제공해줍니다. 명분이 있고 이유가 있으면 사람은 용감해지죠. 그게 좋지 않은 신념으로 굳어지는 건 반드시 주의해야겠지만, 좋은 쪽으로 잘만 활용하면 합당한 이유들은 내 삶 전체를 움직이는 큰 에너지를 제공합니다.


사실 살아가다보면 이유가 있어서 좋기보다는, 좋으니까 이유를 찾아보는 경우가 더 많은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렇더라도 이유를 먼저 꼼꼼히 따져보고 이유에 기반한 내 이야기를 만들어 간다면 우리가 이루고자 하는 목표에 더 쉽게 다가갈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아! 이유없는 상상할 수 없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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