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가 더 중요할까?
다툼이 일어나는 이유는 팩트가 아니라 감정때문입니다. 잘 사귀다가 헤어지는 이유도 마찬가지죠. 우리는 팩트를 이해하지 못할 정도로 그리 머리가 나쁘지 않습니다. 다만 감정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게 팩트를 위해 머리를 쓰는 일보다 훨씬 어렵습니다. 애초에 자신이 믿는 것만 보고 듣게 설계된 우리 인간이라는 종족에게는 팩트로 조목조목 따져봐야 설득이 불가능하죠. 시선을 조금이라도 뺐어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그 사람의 감정을 읽고 이해하려는 노력 밖에는 없습니다.
직원들이 서운한 건 몇십만원 덜 되는 월급때문만은 아닐겁니다. 열심히 잘하고 있고 내가 회사에 기여하고 있다고 느낄 수 있는 감정이 만들어지지 않아서일 가능성이 크죠. 아이들이 서운한 건 아빠 엄마가 장난감을 많이 사주지 않아서가 아니라, 몇 분이라도 진심으로 놀아주면서 아이의 감정을 살피고 관심을 주지 않았기 때문이죠. 애인이 서운한 건 기념일을 기억하지 못해서라기 보다는 그 상황이 애정이 소홀해진 근거라는 생각에 괴롭기 때문일 것입니다. 부모님들이 서운한 것도 자식들이 용돈을 많이 주지 않아서가 아니라 몇 달동안이나 생사확인도 하지 않아 마음이 상하셨기 때문일 겁니다.
이 모든 게 사실은 누구나 아는 팩트인데도 지키기가 쉽지 않는 이유는 뭘까요?
그 건 팩트를 알고 전달하는 일보다, 감정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일이 훨씬 더 많은 심리적 에너지를 필요로 하기 때문 아닐까요. 오십명 넘는 직원들의 할일을 다 뀌고 있고, 아이들이 즐겨보는 채널과 음악을 알고, 애인이 좋아하는 식당과 각종 취향을 달달 외우고, 부모님 생신과 결혼기념일을 다 아는 것은 할만해도 그들의 감정을 살피고 해석하고 이해하는 일은 그 모든 걸 다 합쳐도 부족할 만큼 어렵고 힘든 일이기 때문아닐까요.
그렇게 보면 팩트란 우리에게 얼마나 허망한 것인가 싶습니다. 실재하는 이 선명하고 확신에 찬 팩트라는 존재 손에 잡히지도 않고 보이지도 않는 무색의 감정들 앞에서 땅 위에 덩그러니 놓인 돌덩이 정도의 취급 밖에는 받지 못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