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의 향기와 전 세계 맛집의 향이 뒤섞인 백화점 지하 1층을 지나 제가 정말 애정하는 향을 찾아 1층 화장품 매장에 들렀습니다. 샤하고 스포티한 향기가 독보적인 ALLURE Homme sport. 알루? 올루어? 불어라서 뭐라 읽어야 맞는지도 잘 모르겠지만, 이 로션이 풍기는 향의 뉘앙스만은 정확하게 내 코끝이 기억하고 설명할 수 있습니다. 꽤나 멀리 지나쳐서 풍겨오더라도 정확히 알겠더라고요. 다른 어떤 향수 냄새보다 명확한 개성이 있는 향이라 그런지 향의 모양을 드로잉라고 하면 할 만큼 지금까지 써 온 그 어떤 화장품보다 뚜렷하게 다른 매력으로 다가옵니다.
여자들이 샤넬백을 좋아하는 것만큼 저도 언젠가부터 이 향에 빠져 버렸고 샤넬 화장품과 향수는 무조건 맹신하게 돼버렸습니다. 샤넬백까지는 아니더라도 화장품 정도의 사치는 충분히 부릴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으니까요. 그래도 전혀 부담 없을 수는 없었는데 마침 아내가 준 상품권이 있어 바로 달려갔죠. 잔돈 2만 3천 원을 현금으로 받을 땐 모양새가 좀 안 나긴 했지만 그래도 뭐 샤넬이라면 대만족이죠. 아동복 매장에 갔던 아이가 제 손에 든 샤넬 쇼핑백을 보더니 엄마 선물 샀냐고 그러더군요. 아빠도 샤넬 좋아해!라고 하니 의아하면서도 약간 놀란 표정을 짓더라고요.
이 로션과 사랑에 빠진 계기가 있었습니다. 예전 총각 시절 마포에서 자취를 할 때였어요. 지방에서 올라와 몇 달 저희 집에 신세를 지고 있던 친구가 있었는데요. 생일이라며 여자친구의 화장품 선물을 받아왔는데 그게 바로 ALLURE Homme였습니다. 아침 출근길에 친구에게서 그 로션의 은은한 향이 퍼지는데 너무 좋은 겁니다. 왠지 친구 얼굴도 그날따라 잘생겨 보이고요. 기껏해야 일이 만원 하던 로션을 쓰던 저에게 그 향은 칙칙한 자취방의 공기를 한순간에 파리의 한복판으로 바꿔주는 고급진 마법 같은 향이었습니다. 친구에겐 좀 미안하지만 특별한 외출을 할 때나 중요한 사람을 만날 때면 티 안 날 정도로 그 로션을 바르고 나갔습니다. 그런 날은 왠지 자신감도 생기도 스스로 매력 있다고 자뻑하게 되더군요. 아마 그것도 그 향에 취해 없던 마력이 생겼던 게 아닌가 싶습니다. 그 로션을 바르고 나간 날에는 무슨 향수를 쓰냐고 물어보는 사람들이 꽤 많았던 걸 보면 그 향이 저만 좋았던 건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이런 기억들 때문인지 그 뒤로도 ALLURE Homme sport는 약간 더워지는 봄부터 여름까지 쓰는 최애 로션이 됐습니다. 지금도 여전히 아침에 세안을 하고 이 로션으로 마무리를 하면 뭔가 완벽하게 준비된 매력적인 향을 입고 나가는 듯한 기분을 줍니다. 오늘 로션을 사면서 그 친구 생각도 나고 이 좋은 향을 알게 해 준 그 친구가 고마웠습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지금의 친구 부인이 된 그 당시 친구의 여자친구에게 고맙네요. 저에게 인생 향을 알게 해 줘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