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가 들어간다는 건 측정을 위한 나만의 자가 늘어간다는 게 아닐까. 오늘도 몇개의 자를 뒷주머니에 꽂고 다닌다. 미리 계산해 보고 재봐서 손해 보는 일이 없어야 하니까. 그만큼 잃어도 좋을 것들보다 점점 지켜야할 것들이 많아졌다.
측정해야할 건 참 여러가지다. 당장 오늘 점심의 가격부터 이 달의 생활비까지. 상대하는 사람의 마음부터 함께 일하는 사람의 태도까지. 사려는 물건의 품질부터 여행 경비까지. 일의 중요도부터 일정까지. 내 건강이나 심리상태부터 가족의 안위까지.
참 잴 것도 많고 피곤하지만 그래도 매번 이렇게 측정하고 가늠해봐야 하는 이유는 그렇게 하지 않았을 때 겪었던 실패의 아픔때문이다. 재지 않고 느낌대로만으로 했다가 실패한 경우가 얼마나 많았는가. 물론 재서 될일이 있고 재도 별로 도움이 안될 일도 있다. 다만 최소한 이런 노력이라도 해야 혹여 잘못돼서 손해를 보더라도 나는 그래도 할만큼 했다라고 마음의 위안이라도 가질 수 있을거다.
이런 이유로 뒷주머니에 차고 다니는 자의 개수도 모양도 점점 늘어만 간다. 많아진 무게만큼 걸음은 더뎌졌지만 할 수 없다. 실패해도 괜찮을 만큼 기회와 시간이 무한하다면 그런 잣대들이 무슨 소용이겠냐마는 계산없이 재는 것 없이 대충 살기에는 삶이란 시간이 너무 소중하다. 계산하고 계획이 필요한 삶의 필요성이 나이가 들어갈수록 더 늘어간다. 학창 시절 수학시간을 수면시간으로 의미없이 흘려보내지 않았다면, 인생 미적분을 지금보다 더 잘해내고 더 잘 계획한 삶을 살아내고 있었을까? 잘 모르겠다.
어쨌든 더 좋은 계산법으로 계획이 더 잘 된 삶을 살고싶다. 정밀한 계산으로 아낀 시간과 돈으로 밥값은 무조건 항상 먼저 계산하는 친구, 돈에 구애받지 않고 여유있는 남편이자 아빠가 되고 싶다. 계산적인 사람이 되겠다는 얘기는 아니고 계산 잘 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얘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