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인 작업하면서 가장 도움이 많이 됐던 건, 디자인 전개 과정을 스토리화하는 훈련이었다. 처음부터 ‘디자인을 하자’가 아니라 ‘이런 얘기로 풀어 가보자’ 생각하니 어렵던 디자인이 재밌고 잘 풀려갔다. 이런 ‘디자인의 스토리화’의 장점은 너무나 많겠지만 가장 좋았던 세 가지 포인트를 정리해 본다.
첫째, 디자인을 설명하기 쉽다.
내가 한 디자인을 설명 못한다는 게 디자이너가 아니라면 도통 이해 못 할 일이지만, 디자인은 잘 해놓고 말 문이 턱 막히는 경우가 참 많다. 디자이너라면 누구나 겪어 봤을 일이다. 그만큼 디자인이 나오는 과정은 높은 수준의 사고 프로세스를 거친다. 개념과 의도, 이미지와 감각이 한 데 섞인 디자인이라는 결과물은 설명하기 어려운 게 너무 당연하다. 디자인에 스토리가 심어져 있다면 이 문제가 해결된다. 스토리라는 말 줄기가 있으니 흐름만 잘 타면 막힘없이 설명할 수 있다. 중간에 버벅거리더라도 큰 흐름이 머릿속에 있으니 금방 제자리를 찾아올 수 있다.
둘째, 듣는 사람 입장에서 이해가 쉽다.
스토리 안에는 이 프로젝트의 배경과 문제 해결의 이유, 그리고 해결 방법까지 안에 자연스럽게 들어간다. 하나하나 끊어서 설명하다 보면 지루하고 연결돼 잘 안되지만, 스토리를 통해 연결해서 설명하면 전체가 통으로 이해된다. 쉽게 알아먹고 이해되면 당연히 디자인에 대한 호감도 생긴다.
셋째, 디자인 방향성을 잡을 수 있다.
방향성을 못 잡아서 디자인 시안을 수십 가지를 제안하고, 그것도 모자라 4차, 5차 제안까지 해본 경험이 있다. 그런 일이 몇 번 있고 나서는 처음 디자인 방향을 잡을 때 의뢰사와 디자인으로 전개해 나갈 스토리를 공유한다.예쁘게 꾸민 문서도 필요 없다. 통화로 생각한 스토리를 들려주며 전개 방향을 설명한다. 큰 줄기의 스토리에 만들어 공감했다면, 프로젝트 방향이 이리저리 흔들릴 경우는 없을 것이다. 스토리를 통해 디자인의 방향성을 의뢰사와 공감을 이뤘다면 그 스토리를 스타일로 풀어낼 방법을 찾으면 된다. 꼭 내가 아니라도 해결해 줄 디자이너, 아티스트들은 많다.
이렇게 세가지 정도가 디자인을 스토리’로’ 팔아야 하는 중요한 이유다. 여기서 주의할 건 스토리’를’ 파는 게 아니라, 스토리’로 판다는 거다. 디자인을 팔기 위해 스토리라는 도구를 쓰는 거지 스토리 자체를 파는 건 아니다. 붓이나 물감 대신 스토리라는 도구를 쓴다고 생각해보자.
디자인 프로젝트를 시작할 땐 이런 물음으로 출발해보자. ‘이번엔 어떤 얘기로 풀어 가볼까?’라고. 그러면 디자인이 훨씬 쉽게 느껴질 것이다. 가벼운 기분으로 시작해야 좋은 아이디어도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