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일상 생각

독도 나물

이름은 스토리의 그릇이다

by 우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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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의 친구가 울릉도 여행갔다가 챙겨왔다며 나물 몇 가지를 보내왔다. 이름하여 ‘독도 나물’이었다. 산채비빔밥을 먹을 때 흔히 접하던 비주얼이었다. 바짝 말라 갈색과 어두운 회색 그 어디쯤의 칙칙한 색감이 자칫 텁텁하지 않을까 싶었지만, 한 젓가락 입에 넣자 은은한 향이 기분 좋게 피어올랐다. 씹을수록 향은 입안을 가득 채웠다.


사실 비주얼만 보면 평범한 산나물에 불과했다. 하지만 ‘독도 나물’이라는 이름을 듣고 난 뒤부터는 독도의 척박한 땅에서 모진 해풍을 견디며 꼿꼿이 서 있는 모습이 머릿속에 그려지면서 그 나물이 더없이 귀하게 여겨졌다.


나물은 며칠간 우리 집 식탁의 주인공이 되었고, 마지막 날에는 고추장과 참기름을 넣어 비빔밥으로 근사하게 마무리됐다. 그런데 배가 너무 불렀던 탓인지 서너 가닥이 그릇에 남았다. 평소 같으면 아무 생각 없이 개수구에 버렸을 텐데, 독도에서 온 귀한 나물이라는 생각에 꽉 찬 배를 부여잡고 남은 나물 한가닥까지 입에 밀어 넣었다. 평소와 다른 싱크대 앞의 내 모습을 본 아내는 다소 의아하게 쳐다봤다.


사실 독도 나물의 실체를 직접 보지 못했으니, 어쩌면 시골 마을 어귀에서 흔히 자라는 풀과 다를 바 없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름이 부여한 특별함은 이미 나의 시각과 미각에 큰 영향력을 미치고 있었다.


어떤 이름은 그 자체로 스토리를 담는 그릇이 된다. 짧은 단어 몇 개가 꼬리에 꼬리를 무는 서사를 만들고, 각자의 상황에 맞는 상상력을 펼치게 한다. 이것이 이름과 스토리가 가진 강력한 힘 아닐까. 만약 아내의 친구가 건넨 것이 ‘강원도 산나물’이었다면, 나에게 이만큼의 임팩트를 줄 수 있었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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