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귀요미, 잘 갔다 와요.”
남편과 아이들 아침 식사를 챙겨주고 난 뒤 운동하러 가려고 나서는 길, 둘째는 매번 현관 앞에 서서 엄마에게 이렇게 인사를 한다.
“아니야. 엄마 말고 네가 귀요미지.”
“나한테는 엄마가 귀요미야.”
오늘도 우리 모자는 서로 더 귀엽다며 한바탕 다툼을 벌이고는 인사를 마친다.
남편과 연애하던 시절에 나에게는 애교가 참 많았다. 막내딸로 자랐어도 성격은 무뚝뚝해서 식구들에게 애교라고는 부린 적이 없었는데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잘도 애교를 부렸다. 그러다가 둘째를 낳고 힘든 세월을 겪으면서 다시 성격이 변하기 시작했다. 아이한테 집중하기 위해 나사를 꽉 조였다고나 할까? 툭하면 웃고 실없는 농담에도 자지러지곤 했는데 점점 웃음이 사라지고 어느 순간 남편한테 애교도 부리지 않게 되었다.
그렇게 삭막해지고 굳어버린 마음이 둘째 아들로 인해 다시 말랑말랑해졌다. 아들만 있는 집에서는 누군가가 딸 역할을 한다는데 우리 둘째에게는 웬만한 딸보다도 애교가 많다. 아기 때부터 매우 순해서 종일 웃기만 하더니 말을 하면서부터는 예쁜 말만 골라서 하는 것이다.
“엄마 오늘도 고생했어요.”
“엄마는 왜 이렇게 예뻐?”
“엄마가 너무 좋아서 그러지.”
힘들거나 기분이 나쁠 때도 아이를 보면서 나는 웃을 수밖에 없었다.
타고난 밝은 성향과 긍정적인 성격은 노력한다 해도 얻기 힘들다. 만약 둘째가 예민하고 부정적인 성향이 강한 아이였다면 나는 지금까지도 힘들어하고 있을지 모른다. 지난 11년의 세월을 내 의지대로 참고 버틴 줄로만 알았는데 아이한테서 참 많은 것을 받아왔기에 가능했던 것 같다. 내가 준 사랑보다 훨씬 크고 깊은 사랑을 가진 둘째는 너무도 사랑스럽고 예쁜 말과 행동으로 곁에 있는 사람에게 힘을 주는 녀석이다. 아마도 신이 둘째를 만들 때 그대로 내보내면 너무 완벽해서 장애를 주신 게 아닌가 싶을 정도다.
나는 지금껏 ’ 아이 때문에, 장애아를 키우느라 ‘고 핑계 대면서 나약함, 부족한 용기, 안정을 위한 욕구 등을 합리화시켰다. 재활을 위해 올인한 것은 아이를 위해서이기도 했지만, 어느 순간부터 내 욕심과 집착, 자기만족을 위한 노력이었음을 이제는 알고 있다. 그걸 온전히 인정하고 받아들이는데 꼬박 10년이 넘게 걸린 것이다.
왜 하필 나는 장애아의 엄마가 되었을까?
얻을 수 없는 답을 그동안 참 많이도 떠올려 보았다. 힘들 때마다 ’ 나도 남들처럼 평범하게 두 아들을 키우며 살고 싶은데 ‘라고 바라기도 했다. 내게 지어진 짐이 버거웠지만 내려놓을 수 없었기에 가뿐하게 인생길을 가는 다른 사람들이 부럽기만 했다. 하지만 내가 진 짐의 무게보다 그 가치를 깨달은 지금은, 이 짐을 절대 내려놓지 않을 것이다.
둘째 아들 덕분에 나는 짧은 시간에 인생의 모든 맛을 다 맛본 사람이 되었다. 이 아이가 아니었다면 아마도 나는 타인의 아픔에 공감하지 못하고 자기 잘난 맛에 사는 ’ 잘난 척 대마왕‘으로 살고 있을 것 같다. 내가 가진 콤플렉스를 자신감으로 포장한 채 자존심만 강하고 남들보다 뛰어나려고 노력하는 ’ 욕심쟁이‘가 되었을 것이다. 대단하고 거창한 것에서 행복을 찾는 ’ 불평쟁이‘ 또한 예전의 내 모습이다. 이 모든 허울을 벗어던지게 해 준 건 다름 아닌 둘째 아들이다. 그리고 나는 이제야 인생의 참맛을 알게 되었다.
둘째를 낳고 키우면서 나는 전혀 다른 사람으로 다시 태어난 것만 같다. 앞으로 남은 인생 공부가 어떤 것이든 힘들고 처절했던 경험은 삶의 진리와 가치들을 깨닫게 해 주기에 충분했다. 그동안 내가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것들은 머리로만 이해한 것이지 진짜로 아는 게 아니었다. 앞으로 살면서 깨달을 많은 것들 역시 그럴지 모른다. 하지만 달콤한 사탕보다 쓴 약이 몸에는 좋은 것처럼 직접 부딪히고 깨지고 상처 입으면서 계속 배우고 성장해 나갈 것이다.
지극히도 평범했던 나는 행복한 장애아인 둘째 덕분에 특별한 스토리를 가진 특별한 사람이 되었다. 앞으로 나는 예전의 나처럼 아이를 키우느라 꿈을 접거나 포기한 사람들을 위해 내가 가진 모든 잠재력을 발휘해 도울 것이다. 당신이 지금 그런 상황이라면 망설이지 말고 이 책을 꼭 읽어보고 내 손을 잡으면 좋겠다. 이미 많은 사람이 나의 글과 강의를 통해 변화하고 성장하고 있다. 삶의 가치와 비전을 찾아 매일 행복하게 살아가고 있는 나는 더 이상 바랄 게 없다. 다만 죽는 날까지 내게 남을 단 하나의 소망은 있다.
윤성아!
엄마는 네가 짧게 살다 간 쌍둥이 동생의 몫까지 더해서 이 세상을 살아가기를, 네게 주어진 행복이 있다면 그보다 딱 두 배 더 행복하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그리고 엄마가 이 세상을 떠나고 나면 이 책을 통해 엄마의 사랑을 느낄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