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엄청난 끈기를 가진 것처럼 보이지만 의외로 한 가지를 오래 하지 못한다. 재미있어 보이거나 궁금하거나 단순히 하고 싶은 마음이 들면 곧장 시작은 잘한다. 그런데 몇 개월 이상, 몇 년 이상 하는 것들이 그리 많지 않다. 예전에는 끈기가 부족해서 그렇다고 생각했는데 시작하는 모든 것을 끝까지 할 수 있는 사람은 아마 세상에 없을 것이다. 처음 간 뷔페식당에서 모든 음식을 조금씩 맛보다가 자신의 입에 맞는 소수의 음식을 더 리필해서 먹는 것처럼 자신한테 맞는 것, 진짜 좋아하는 것을 찾기 위해서 이것저것 시도해보는 것이다. 그러다가 정말 나에게 맞고 좋은 걸 만나면 오래 할 수 있게 된다.
나는 20년 넘게 운동을 하고 30년 넘게 책을 읽었다. 중간에 몇 년씩 느슨해진 타임이 있기는 했지만 가장 오랫동안 해온 것은 이 두 가지이다. 이 두 가지가 그동안 시도한 수많은 것들 중에서 내 입맛에 딱 들어맞아 선택받은 것일까? 솔직히 고백하건대, 나는 운동과 독서를 좋아하기는 하지만 사랑하지는 않는다. 좋아하는 것에는 이유가 있지만 사랑하는 것에는 이유가 없다. 운동은 건강을 위해서, 하고 나면 기분이 좋아져서 하고 책은 주로 필요에 의해서 읽는다. 그러다 보니 운동은 하기 싫을 때가 종종 있고 책을 많이 읽다 보면 거기서 거기 같다는 생각에 한동안 책을 멀리 하기도 한다.
이유 없이 마냥 좋고 계속하고 싶은 것, 내가 사랑하게 된 건 다름 아닌 책쓰기다. 아직 1년 반 정도밖에 되지 않았지만 나는 어렵고도 오묘한 책쓰기와 사랑에 빠지고 말았다. 그렇지 않고서는 올빼미가 책을 쓰기 위해 1년 반 동안 새벽 기상에 성공한 것이 설명이 되지 않는다. 그러니까 처음 글을 쓰기 시작한 것은 책을 쓰기 위해서였다. 이후로 책을 쓰기 위한 글을 매일 썼고 그 결과 세 번째 책의 출간을 앞두고 있다.
내가 쓴 글이 한 권의 책으로 나오는 것은 그 어떤 경험보다도 값지고 감동적이다. 책을 쓰기 전에 나는 많은 책들을 나름대로 평가하고 비판하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은 '모든 책은 위대하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한 권의 책을 쓰기 위해 작가가 얼마나 애쓰는지, 계약부터 출간까지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알고 있기 때문이다.
세 번째 책의 초고를 완성하고 나서 곧장 다음 책의 구상에 들어갔다. 두 가지 다른 주제가 나왔는데 이 중에 무얼 쓸까 며칠간 고민하다가 잠시 덮어두었다. 글을 쓴 기간이 얼마 되지는 않았지만 잠시 휴식기를 갖기 위해서다. 내 글도 어느새 '거기서 거기'가 되어버린 느낌이라 잠시 속도를 줄이고 책이 아닌 글쓰기에 집중해보려고 한다.
내가 글쓰기에 집중하는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글을 잘 쓰기 위함이 아니다. 다만 그동안 책을 위한 글을 주로 써왔기에 이제는 나를 위한 글을 써보고 싶을 뿐이다. 내가 가진 경험, 기억, 추억 등을 모조리 꺼내어 기록해보고 싶은 생각이 문득 들었다. 꽤 솔직한 성격이라 강의나 책에서 내 이야기를 종종 드러내기는 했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어디까지 얘기해야 하나?' '이 말은 괜히 했다'는 식의 고민이 되었던 게 사실이다. 강의나 책은 주제가 정해져 있기에 내 이야기를 하면서 딴 길로 새기도 했으니 마음껏 하지도 못했다.
나를 위한 글쓰기는 어떤 것일까? 아직은 막연하지만 우선 내 삶을 이야기하는 것으로 시작하려 한다. 그래서 매거진 이름을 "Me, myself"로 짓고 글을 써나가고 있다. 뭐든지 시작할 때 철저하게 계획부터 세우고 최선을 다해 열심히 하는 스타일인데 나를 위한 글쓰기는 반대로 해보려고 한다. 정해진 주제도 없이 형식도 없이 '내 마음 가는 대로' 쓰는 글이 될 것 같다. 평가를 받기 위함도 남에게 읽히길 원하는 것도 아니라 일단 글을 쓰기가 훨씬 더 편하다. 왠지 아무 말 대잔치가 될 것 같은 느낌이지만, 그럼 뭐 어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