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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류작가 강은영 Aug 26. 2021

당연하지 않은 것들

유난히 고집이 센 나는 지금껏 나름 원하는 대로 하고픈대로 하고 살아왔다. 옳다고 생각하거나 해야겠다고 마음먹으면 누가 말리거나 말거나, 응원하거나 말거나 그렇게 해야 직성이 풀리기 때문이다. 그런데 유일하게 마음먹거나 생각했던 대로 되지 않은 것이 있다. 어째서인지 시간이 갈수록 점점 내 뜻과는 다르게 흘러가는 것만 같기도 하다.


나처럼 자의식과 자립심이 강한 사람에게는 당위성이 큰 부분을 차지한다. 당연히 해야 하고 당연히 그러리라고 여기는 것들이 꽤 많다. 그중에는 내 자식이 당연히 똑똑하고 성실하며 공부도 잘할 것이라는 당연함도 있다. 아니 있었다. 처음에는 당연한 것이었다가 점차 기대로 바뀌었는데 어쩌면 지금도 남아있을지 모르는 그 기대감이 한 때는 엄청나게 커서 힘들었다. 


어릴 때부터 유달리 똑똑하고 남다른 성장 속도를 보였던 첫째를 키우면서 아빠, 엄마보다 더 똑똑한 머리를 가진 아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사실 나는 아이큐로 치면 평범한 머리를 갖고 있다. 남편도 때론 천재 같지만 바보 같아 보일 때가 훨씬 더 많은 평범한 사람이다. 하지만 우리 둘 다 "공부해"라는 말 한마디 들은 적 없이 스스로 공부하고 어려운 가정환경에서도 삶을 개척해 왔으니 개천에서 용이 난 것처럼 각자의 집안에서 가장 성공한 경우이다. 그리 대단한 사람이 아니라 성공이라고 표현하기 부끄럽지만 사실이 그렇다.


그래서 우리의 아이들은 '당연히' 부모를 닮아 뭐든지 스스로 알아서 하고 공부도 잘하고 매사에 열심히 성실하게 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랬으면 좋겠다'는 기대가 아니라 '그럴 수밖에 없다'는 당연함을 오랫동안 갖고 있었다. 하지만 똑똑하고 남달랐던 첫째는 자랄수록 점점 우리 부부와는 다른 삶의 태도를 보여 주었다.


우선 뭐든지 최선을 다하지 않는다. 학교를 다니는 것도 공부나 운동을 하는 것도 적당히 대충 하는 것처럼 보인다. 축구를 예로 들면, 남편과 나는 쉬지 않고 열심히 뛰어다니는 스타일인 반면 큰 아들은 어슬렁어슬렁 걸어 다니다가 공이 오면 달리는 스타일이다. 아이가 여섯 살 때부터 꽤 오랫동안 축구를 했는데 아들의 모습을 볼 때마다 우리 부부는 열심히 뛰지 않는다며 답답해하곤 했다. 


아들의 이런 성향은 사춘기가 되자 더욱 두드러져서 남편이나 나와 종종 부딪히곤 했다. 학교나 학원에 지각하는 것은 물론이고 숙제를 미루다 겨우 해가거나 못하는 경우도 빈번했다. 대신 친구들과 밖에 나가 놀면서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데는 열과 성을 다하는 것이다. 어릴 적부터 책임감을 갖고 성실하게 살아왔던 우리 부부로서는 도저히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었다. 최근까지도 한 번 나가면 감감무소식인 아들로 인해 골머리를 앓고 있다.


처음에는 혼도 내보고 타일러도 보고 바람직한 삶의 자세, 태도에 대해 가르쳐 주려고 애도 많이 썼다. 천성은 다를지라도 크면서 부모의 모습을 보고 자연스럽게 배울 것이라는 기대도 했다. 하지만 수년간 노력한 결과, 타고난 천성을 교육으로 쉽게 바꿀 수 없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그리고 서로를 괴롭히지 않기 위해서 아들을 이해하며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려고 무던히 노력할 수밖에 없었다.


과연 나와 남편의 삶이 바람직하고 옳은 것인가?

우리와 너무도 다른 아들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여기서부터 출발해야 했다. 아들이니 당연히 우리를 닮을 것이란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가고 점점 전혀 반대의 성향이 드러나고 있다. 은연중에 아들을 나와 같은 사람으로 만들기 위해 얼마나 애를 쓰고 뜻대로 안 되자 힘들어했는지 모른다. 하지만 오랫동안 열심히 치열하게 살아온 우리 부부가 행복한 삶, 성공한 삶을 살았다 말할 수 있는가?


답은 아니오다. 오히려 뭐든지 적당히 대충 하는 아들이 적당히 노력하면서 행복하고 여유 있게 살지도 모른다. 만약 우리가 계획대로 부를 이루고 아이들에게 물려준다면 이 녀석은 정말로 복을 타고난 것이다. 자신을 쥐어짜면서 열심히 노력하며 애쓰는 삶보다 좋아하는 사람들과 놀면서 즐기는 인생이 값질 수도 있다. 무엇보다 아들이 그런 삶을 선택한다면 그것 또한 나름대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내게 당연했던 것들이 점점 사라져 가고 있다. 가장 내 맘대로 되지 않는 두 아들은 물론이거니와 나만 사랑하고 돈을 잘 벌고 집안일을 잘 도와주는 남편도 전혀 당연하지 않은 존재이다. 내가 하는 일 역시, 열심히 하면 당연히 잘될 거라는 생각을 버리니 잘 되지 않더라도 스스로를 괴롭히지 않고 오래 할 수 있게 되었다.  


내가 가진 당위성을 버릴수록 점점 마음이 큰 사람, 너그럽고 둥글둥글한 사람이 되어 가는 느낌이다. 그리고 정말 중요하고 소중한 것들을 알고 감사하는 마음도 절로 생겨난다. 예전의 나는 무얼 하든지 잘해야 하고 인정받아야 하고 남들보다 뛰어나야 하는 사람이었다. 그러기 위해서 얼마나 나를 괴롭히고 주위 사람도 힘들게 했는지 모른다. 뾰족하고 날카로웠던 내가 삶의 풍파를 겪을수록 동글동글 부드러워지고 있어서 참으로 다행이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손에 꽉 쥐고 있는 것이 많으면 삶이 불행해질 것이다. 당연히 그래야 하고 그럴 것으로 여겼던 것이 많을수록 실망감, 배신감도 클 것이다. 내가 가진 모든 것은 당연하지 않은 것들이다. 언제든 사라질 수도 있고 변할 수도 있다. 당연하지 않은 오늘 하루를 당연하지 않은 남편, 아들들과 어떻게 살아야 할지 고민해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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