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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류작가 강은영 Oct 16. 2021

끊고 맺음이 정확한 사람

인연 끊기가 힘든 사람에게

몇 년 전, 남편한테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네, 그렇습니다, 생각해 볼게요" 라며 친절하게 통화를 이어갔다. 단답형 대답만 하는 걸 보면 광고 전화 같은데 한참을 통화하고 나서야 끊었다. 내 예상대로 광고 전화였다. 구매할 생각이 있냐고 했더니 그냥 끊기가 미안해서 상대방이 하는 말을 다 들어주었다고 한다. 


배려심이 깊어 거절을 쉽게 하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 남편도 텔레마케터를 배려하느라 도중에 전화를 끊지 못하고 다 들어주는 거였다. 당시에 남편은 내가 비슷한 전화를 받고 "생각 없습니다" "지금 바빠서요" 하고 가차 없이 바로 끊어버리는 걸 못마땅하게 여겼다. 전화 건 사람이 무안할 것 같다며 핀잔을 주기도 했다.  


하지만 어떤 게 전화 건 사람에 대한 진정한 배려일까? 관심이 있어서 귀 기울여 듣는 게 아니라 거절하기가 미안해서라면 오히려 상대방에게 더 가혹한 일이다. 희망 고문이자 시간 낭비이기 때문이다. 생각이 없다면 바로 거절하고 끊는 게 텔레마케터를 도와주는 일이 아닐까? 그 날은 곰곰히 생각하다 내가 가차 없이 광고 전화를 끊어 버리는 이유를 말했다. 그 이후로는 남편도 나처럼 하고 있다. 칼같이 끊는 나와 달리 여전히 미안하다는 뉘앙스를 풍기기는 하지만 말이다.



인간관계 역시 마찬가지다. 제때 끊어내지 못하고 힘들어하는 경우가 주변에 무척 많다. 코칭할 때도 보면 직장 동료, 가족, 친구 문제로 고민하는 사람 대부분은 끊고 맺음이 정확하지 못한 사람이다. 얼마 전에 코칭한 직장 여성은 동료들한테 배신감을 느끼고 괴로워했다. 주, 야간 팀으로 나눠서 근무를 하는데 이 여성은 주간팀이라 야간 근무와 바꿔 달라는 부탁을 받고 몇 번 들어줬다고 한다.     


그런데 한 사람의 부탁을 들어주니 야간팀 사람들이 돌아가며 부탁을 하기 시작했고 그때마다 거절하지 못하고 들어주었단다. 그러다가 힘이 들어서 같은 팀원 한테 상의했더니 자신은 절대 그런 부탁은 들어주지 않는다며 딱 잘라 말했다. 이 여성도 더 이상은 안 되겠다 싶어서 거절을 하기 시작했다. 뒷 이야기는 듣지 않아도 어느 정도 예상이 되었다.  


그동안 도와준 건 당연한 거였는지 고마워하기는 커녕 야간팀에서 이 여성을 욕하기 시작했다. 사람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타인에게 늘 '좋은 사람'이고 싶었기에 부탁을 들어주었을 터다. 하지만 호의는 날카로운 화살로 되돌아와 그녀의 마음에 상처를 입히기 시작했다.    


  

나는 그녀에게 물었다. 두고두고 볼 사람인가요? 평생 볼만한 가치가 있는 사람인가요? 그게 아니라면 적당한 거리를 두어야 하고 해가 되거나 고통을 준다면 인연을 끊을 필요도 있다. 하지만 끊고 맺음이 정확하지 못한 사람한테는 무척 힘든 일이다. 인연을 끊어내는 일이 더 고통스러울지도 모른다.  


성격이 칼 같다는 말을 듣는 나조차도 인연을 끊는 일은 힘들다. 마음을 줬던 친구나 가족이라면 더욱 고통스럽다. 하지만 그럴 때 나는 법정 스님의 말씀을 떠올린다.

"함부로 인연을 맺지 마라. 진정한 인연과 스쳐 지나가는 인연을 구분해서 인연을 맺어야 한다. 인연을 맺음으로써 받는 피해는 진실 없는 사람에게 진실을 쏟아부은 대가로 받는 벌이다.


설령 가족이라도 내 삶을 침해한다면 인연을 끊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칼이 인연뿐만 아니라 내 마음까지 잘라 아프게 할지라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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