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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류작가 강은영 Nov 03. 2021

뜨거운 게 좋아!

목욕탕 하면 어릴 적 끔찍한 기억이 떠오른다. 새벽 몇 시인지 알 수 없는 이른 시간에 엄마가 깨운다. 밖은 아직 어두운데 눈을 채 뜨지도 못하고 엄마 뒤를 쫄래쫄래 따라간다. 아무도 없는 목욕탕. 엄마는 때를 불려야 한다며 몸이 데일 것처럼 뜨거운 탕 안에 날 밀어 넣고 한참을 앉아 있으라 한다. 아! 싫다! 꼭두새벽에 일어나는 것도 살갗이 따끔할 정도로 뜨거운 것도 끔찍하게 싫다! 


새벽 기상과 온탕의 뜨거운 물, 숨 막히는 공기는 어린 내가 감당하기 힘들었다. 사람이 아무도 없을 때 탕 안에 몸을 담가야 한다며 엄마는 목욕탕에 가는 날마다 새벽같이 일어나곤 했다. 집에 변변찮은 욕실이 없었고 뜨거운 물은 더욱 귀한 시절이라 분기별 행사처럼 어린 딸을 데리고 목욕탕에 간 거였다.  




20대 중반, 첫 직장에서 사우나를 즐기는 선배랑 친하게 지냈다. 나와 동갑이었는데 사우나 마니아라니 신기하기도 하고 같이 가는 게 싫기도 했다. 처음 목욕탕에 같이 간 날, 친구들하고도 가본 적이 없어서 수건으로 가리며 쭈뼛거리는데 선배는 무척 자연스러웠다. 더 놀라운 것은 뜨거운 물에 들어가 수영하듯이 움직이고 숨쉬기 힘든 사우나실에 들어가 아주 오랫동안 앉아 있었다. 수시로 온탕과 냉탕을 오가는 것도 내게는 충격이었다. 여전히 숨쉬기가 힘들고 뜨거운 게 싫었지만 그 선배 덕분에 사우나의 맛을 조금은 알게 되었다.


아이를 낳고 직장을 그만두고 난 뒤에는 한참 동안 목욕탕에 가지 않았다. 집에서 샤워할 때도 뜨거운 수증기가 뒤덮이면 오래 씻지 못하는데 자진해서 갈 리가 없었다. 그러다 피트니스 센터 내에 사우나가 있는 아파트로 이사 오게 되었다. 운동을 하고 난 어느 날, 한번 들어가 볼까? 하고 들어갔는데 생각보다 뜨겁지 않고 온 몸이 확 풀리는 느낌이 무척 좋았다. 이래서 사우나를 하는가 보구나! 그 후로 수영이나 헬스, 요가를 하고 나서 매번 사우나를 하게 되었다.



엊그제 지인과 문자를 나누는데 나이가 들수록 따뜻한 게 좋다고 말했다. 맞아 맞아! 찬 바람도 싫고 찬 음식도 싫고 몸이 차가워지는 건 더욱 싫다. 따뜻한 방 안에 앉아 글을 쓰는 지금도 왠지 모르게 등과 발이 시려 겉옷을 걸치고 양말을 신었다. 웃풍도 없는데 웬일이람! 나도 이제 어릴 적 그토록 싫어했던 목욕탕과 사우나처럼 뜨거운 게 좋아진 나이가 된 거다. 책상 위 텀블러에는 따뜻한 물이 들어 있다. 


최근 몇 년간 최애 장소였던 아파트 사우나는 코로나 사태로 아직까지 폐쇄 중이다. 1년 반이 넘도록 사우나 구경도 못 가고 있는데 날씨가 추워지니 사우나 생각이 간절하다. 운동으로 땀을 빼는 것과는 또 다른 느낌이고 몸을 발갛게 달군 뒤에 찬물을 쫙 끼얹으면 세상 근심 다 씻겨 내려가듯 개운하고 정신이 번쩍 든다. 온탕과 냉탕을 오가면 건강에 좋고 지구력도 향상된다고 한다. 사우나 이야기를 하니 당장 가고 싶어서 미치겠다.



나도 어느덧 따뜻한 걸 넘어 뜨거운 게 좋은 나이가 되었나 보다. 뜨거운 국물을 먹으며 "으어~시원하다! 좋다!" 하고 감탄이 절로 나오는 걸 보면. 게다가 새벽 기상을 자진해서 하고 있으니 피식 웃음이 난다. 엄마 손에 의해 목욕탕에 끌려가던 30년 전의 나로서는 상상도 못 할 일이다.


내 마음의 온도와 열정의 온도는 식지 않았나? 점검해 본다. 학창 시절부터 주변 사람들은 날 보고 열정이 넘친다고 했는데 갈수록 미지근하게 사는 듯한 느낌이 든다. 책 쓰기처럼 심장이 펄덕이고 열정의 불씨가 활활 타오르는 일을 새롭게 찾아봐야겠다. 나이가 더 들어도 아니 죽을 때까지 사우나처럼 펄펄 끓는 온도로 하루를 살아내고 싶다. 일단 오늘은 글을 쓰며 하루를 따뜻하게 시작했으니 좋다! 참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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