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Me myself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일류작가 강은영 Nov 25. 2021

네가 옳다

사춘기 아들에 관한 고찰

중3 큰아들은 내 아킬레스 건이다. 나를 가장 힘들게 하고 내가 얼마나 부족한 인간인지 깨닫게 만드는 유일한 존재다. 유아기 때는 똑똑한 데다 말을 잘하고 성장이 빨라서 키우는 재미가 있었다. 육아가 힘들다는 생각도 그다지 하지 않았다. 하지만 초등학교 3학년 즈음부터 나와 사사건건 부딪히기 시작했다. 아이의 성향이 드러나고 강해질수록 감당하기가 어려웠다.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시동을 걸던 사춘기는 중3이 되자 절정에 이르렀다. 키가 큰 엄마보다도 10cm나 더 커버린 녀석은 엄마가 쳐 놓은 작은 울타리에서 벗어나려고 안간힘을 쓰는 것 같다. 반면, 나는 아이를 안전하게 보호하고 잘 성장시켜야 한다는 책임감과 의무감에 통제와 예측이 가능한 내 세상으로 자꾸만 데려오려고 한다.       


요즘 아들은 핑계와 변명이 더 늘어났다. 해야 할 일을 안 하거나 학교, 학원에 지각을 하는 일이 다반사인데 그때마다 변명을 늘어놓는다. 똑똑하고 말을 잘하는 녀석이라 대처 능력이 뛰어나고 변명 거리도 다양하다. 그렇게 할게요, 잘못했어요 하면 끝날 일에 핑계와 변명의 말이 들러붙으니 내 잔소리도 3절, 4절로 늘어난다. 그 좋은 머리를 변명하는데 쓰다니!


아들은 어째서 변명을 일삼는 것일까? 얼마 전에 된통 혼내면서 그 이유를 알아차렸다. '내가 옳다'고 온 힘을 다해 이야기하는 거였다. 밥은 먹고 싶을 때 먹고, 공부와 숙제도 하고 싶을 때 하는 등 느긋하게 자신이 원하는 대로 시간을 쓰며 움직이고 싶은 '자유로운 영혼'인데 철저하게 모범생으로 살아온 '센 엄마'는 그 꼴을 못 본다. 


네가 틀렸어. 그런 행동은 옳지 않아! 엄마가 말한 대로 해야 잘 살 수 있어. 내 세상으로 들어와야 안전해! 


'나만 옳다'고 생각하며 육아해 온 나는 아이의 행동을 지적하고 고치려 노력했다. 스마트 폰을 들고 산다, 밤늦게 자지 마라, 할 일을 미루면 안 된다, 공부나 운동을 열심히 하지 않는다. 온통 충조평판(충고, 조언, 평가, 판단)으로 이루어진 말을 남발해왔다. 남한테는 충조평판 하지 않으려 노력하면서 어째서 아들한테는 그러지 못할까? 


내 울타리에서 벗어나고픈 아들한테는 다 잔소리, 쓸모없는 얘기로 들렸을 테고 그래서 일일이 말대꾸를 했을 것이다. 나 역시 아들의 변명이 말도 안 되는 억지와 궤변처럼 들린다. 나는 옳고 너는 틀렸기 때문이다. 내가 살아온 방식이 옳으니 너도 그렇게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동안 아들이 얼마나 힘들었을까? 네가 나를 힘들게 한다고만 생각했지, 내가 너를 힘들게 할 거라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나는 이토록 어리석고 부족한 엄마다.


너도 옳다. 네가 옳다. 친구들과 종일 대화하고픈 네 마음만 알아줬더라면, 늦은 밤의 고요가 좋아서 쉽게 잠들지 못할 수도 있을 텐데... 왜 그럴 수밖에 없는지 묻지도 않고 잘못된 행동이라 판단하며 혼내기만 했던 지난날을 반성한다.   


나는 어른이자 보호자고, 너보다 오래 살았고, 많이 알고 있고 옳은 판단을 하기 때문에 무조건 내 말을 들어야 한다고 아이를 몰아붙였다. 부끄럽다. 너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보듬어주고 인정해주었더라면 네가 덜 답답했을 텐데...... 참으로 미안하다.


아들이 자란 만큼 내 세상도 커져야 했다. 성인이 되기 전까지 울타리를 다 걷지는 못해도 아이가 답답하지 않게 그 크기를 키웠어야 했다. 이제라도 깨달았으니 좀 더 큰 내가 되어야겠다. 오늘 밤에 아들에게 이 글을 보여줘야겠다. 그리고 사과를 해야겠다.    


매거진의 이전글 내 죽음을 알려 달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