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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류작가 강은영 Nov 24. 2021

내 죽음을 알려 달라

아름다운 죽음이란?

사춘기 시절, 밤하늘의 별을 보면서 묻고 또 물었다.

나는 어디에서 왔고
죽으면 어디로 가는 것일까?

답을 알 길이 없어 서점에 가서 값비싼 천체 사진집을 사 보기도 했다. 어느 날 중학생 소녀에게 던져진 삶과 죽음에 관한 묵직한 물음은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과 다름없었다. 그때부터 나의 정체성을 찾는 여정이 시작되었다.   


내가 죽어도 이 세상은 존재한다. 그런데 나에게는 죽으면 끝인 인생이라니, 쉽사리 받아들일 수 없었다. 단순히 죽음에 대한 공포와는 다른 차원이었다. 철학 서적을 보거나 어른들에게 물었다면 덜 답답했을 텐데, 답을 찾지 못한 채로 성인이 되었다. 이후로도 시시때때로 튀어나오는 그 질문에 어렴풋이나마 답을 할 수 있게 된 건 갖가지 삶의 희로애락을 겪고 나서다.        


20대가 되자 철학 서적에서 삶과 죽음에 관한 답을 찾으려 노력했다. 플라톤에 의하면, 죽음은 삶의 마지막 사건이 아니다. 죽음은 미리 연습하고 준비해야 할 사건이자, 준비 여부에 따라 전혀 다른 결과를 가져오는 새로운 시작을 의미한다. 죽음은 영혼이 겪는 삶의 과정 중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는 점에서 삶과 죽음에 관한 우리의 보편적인 인식과 다르다. 죽음으로써 삶이 끝나지 않는다는 말이다.


플라톤의 가르침에 따르면, 삶은 육체 안에 갇힌 영혼의 감금 생활이고 죽음은 육체로부터 영혼의 해방이자 분리이다. 죽음이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라는 말은 내게 큰 위안이 되었다. 영혼이 유한하고 제한된 육체에 갇혀 있다가 죽음으로써 자유를 찾는다니, 신선한 충격이기도 했다.         


종교를 떠나서 자신의 정체성을 찾으려 하는 사람이라면 영혼을 간과하지 못한다. 나는 30대 초반에 참여한 의식성장 프로그램을 통해 내 순수한 영혼을 만나고 나서 사춘기 시절부터 해왔던 물음에 제대로 답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어디서 왔고 어디로 가는지 여전히 알 수 없었지만, 내가 어떤 존재인지 정체성에 확신이 생겼다. 플라톤이 말한 영혼과 죽음의 관계도 더 명확해졌다. 내 영혼은 사랑을 찾고 나누기 위해 이 세상에 왔다.     


내 존재 가치와 삶과 죽음의 의미를 언어로 명확하게 표현하는 능력이 내게는 없다. 다만 어떻게 살다가 죽음을 맞이해야 할지는 알고 있다. 이순신 장군은 죽는 순간에도 나라를 구하기 위해 자신의 죽음을 병사들과 적에게 알리지 말라고 유언했다. 내가 생각하는 가장 위대한 죽음이다.


아름다운 죽음을 원하는 나는 내 죽음이 많은 사람에게 알려지길 바란다. 장례식장에는 우리 가족만 있었으면 한다. 대신 내가 남기고 간 것들이 최대한 많은 사람에게 알려져 쓰임새 있기를 바란다. 그러기 위해서는 사는 동안 유, 무형의 가치 있는 것들을 이루어야 할 것이다. 그것은 다름 아닌 내가 낳아 키우고 교육시킨 아이들, 내가 쓴 책과 글들, 강의에서 한 말들, 나를 아는 사람들과의 추억 등 내 사랑의 결실이다.           


내가 정의하는 아름다운 죽음이란 가치 있는 삶을 살고 미련 없이 떠나는 죽음이다. 지금의 삶이 영혼의 여행 중 일부라면 죽음 이후의 삶도 있겠지만 그것까지 생각할 여력은 없다. 어쩌면 아름다운 죽음을 맞이하는 순간에 내 영혼이 향할 다음 행선지를 알 수 있지 않을까? 죽는 순간, 설레는 마음으로 다음 여행을 준비한다면 이보다 아름다운 죽음은 없을 것 같다.   

        


**이 글은 새글캠(새벽몰입글쓰기캠프) 쓰기 주제입니다

새글캠이란? https://blog.naver.com/frigia0/222525942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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