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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류작가 강은영 Nov 11. 2021

엄마 냄새

어릴 적 엄마는 항상 일을 하러 나가셨다. 언니 오빠들이 집을 떠나 엄마랑 단둘이 살던 나는 홀로 집에 남아 수시로 옷장을 열어 보았다. 향수가 있던 시절도 아닌데 엄마 옷에서는 향긋하고 포근한 냄새가 났다. 가지런히 걸린 엄마의 외투에 코를 묻고 눈을 감고 깊게 숨을 들이마시면 무서운 생각도 심심한 것도 한순간에 사라졌다. 엄마 냄새는 외롭게 집을 지키던 어린 나를 지켜준 엄마 사랑의 결정체와도 같았다.   


엄마가 되고 나니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사람은 엄마 없는 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가진 것을 다 주고도 못 준 것을 미안해하고 안타까워하는 게 엄마라는 존재다. 엄마 없이 태어나는 아이는 없다. 이 세상에서 유일무이한 무조건적인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자격이 누구에게나 있다는 말이다. 하지만 어떤 연유로 그 자격이 박탈당한 사람은 평생 엄마 냄새 같은 건 모르고 살 것이다.


"음~엄마 냄새 좋아!"

애교가 넘치는 둘째 아들이 수시로 나를 안고 볼을 비비며 하는 말이다. 아빠한테는 이런 냄새가 안 나는데 엄마한테는 난다며 코를 묻고 숨을 깊게 들이마신다. 어릴 적 내 모습이 겹쳐 보인다. 딱 둘째 아이만 한 때였던 것 같다. 엄마 냄새를 맡으며 저녁에나 돌아올 엄마를 기다리고 그리워하던 때가.


2년 전쯤 대장암 수술을 받은 엄마는 3~4개월에 한 번씩 정기 검진을 받으러 올라오신다. 나이 80을 바라보는 할머니가 된 엄마한테서 얼마 전부터 낯선 냄새가 났다. 어릴 적 좋아했던 엄마 냄새에 불순물이 섞인 듯한 느낌이다. 엊그제 3개월 만에 본 나를 안아주는데 숨을 참아야 했다. 후각이 둔감한 편인데도 느껴지는 걸 보면 후각이 상당한 남편과 아이들은 훨씬 강하게 느낄 터였다.  


엄마는 우리 집에 오면 서재를 사용하신다. 방문을 열면 변해버린 엄마 냄새가 코를 찌른다. 함께 차를 타고 병원으로 향하는 길에는 바로 옆에 앉아 계시기에 더 심해진다. 내부 세차를 안 해서 차 냄새가 안 좋다며 창문을 슬그머니 연다. 그토록 좋아했던 엄마 냄새인데! 간사한 내 코를 탓해봐야 무엇하리. 세월의 간극을 보여주는 것 같아 수시로 눈가가 뜨거워지곤 한다. 


그 누구도 말을 하지 않지만 엄마는 자신한테서 안 좋은 냄새가 난다는 걸 짐작하신 눈치다. 외할머니가 돌아가시기 전에 엄마가 몇 년을 모셨는데 그때 심한 냄새가 났다는 말을 종종 하셨었다. 3개월 전에도 외할머니 얘길 하면서, 나이 들고 아프면 그럴 수밖에 없다고 하시는데 나는 아무런 대꾸도 하지 못했다. 그런데 듣고 있던 둘째가 "할머니, 냄새 안 나요! 그러니까 제가 할머니랑 같이 잠을 자죠."라고 했다. 나보다 냄새를 잘 맡는 아이라 안 날 리가 없는데... 엄마는 손자를 깊게 안아 주었다. 


엄마가 내려가시고 나서 이불과 베개를 세탁했다. 서재 창문은 오랫동안 열어 두었다. 그리고 둘째한테 물었다. 

"진짜로 할머니한테 냄새 안 나?"  

"에이, 엄마! 그걸 사실대로 말하면 안 되지"

"그럼 나는데 안 난다고 한 거야?"

"당연하죠! 할머니가 상처 받으실 거 아냐."


선의의 거짓말을 한 아이를 꼭 안아주는데 또 눈앞이 일렁였다. 엄마가 절대 눈치 못 채게 해야지 하면서도 눈치채도록 행동한 내가 너무도 부끄러웠다. 냄새 안 난다는 그깟 한마디가 뭐라고! 다음에 올라오시면 서재에 자주 들어가 엄마 옆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어야지 다짐했다. 그런데 3개월이 지난 지금, 다시 올라오신 엄마를 은근슬쩍 피하고 있는 나를 보았다. 


이전의 반성과 다짐은 어디로 간 것일까? 언제까지 후회와 다짐을 반복할 것인가? 엄마가 돌아가시고 나면 이 냄새조차도 그리워질 텐데, 나는 왜 이다지도 어리석단 말인가! 다행히 내려가시려면 아직 며칠 남아 있다. 세월의 흐름 따라 엄마 냄새는 변했지만 자식만 보고 살아온 엄마의 사랑은 변함이 없다. 오늘은 서재에 오래도록 앉아서 엄마가 좋아하시는 고구마 먹으면서 두런두런 이야기 나누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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