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님의 부모가 된다면?
"너도 자식 낳아봐야 알지!"
엄마, 기억해? 우리 1남 4녀를 혼자 힘으로 키워낸 엄마가 종종 했던 말이야. 이 한마디에 자식을 키우는 부모의 모든 애환이 담겨있을 줄 그때는 알지 못했어. 가장 큰 기쁨을 주는 동시에 슬픔과 고통도 주는 존재인 자식을 낳고 십수 년을 키워보니 이제야 그 말의 의미를 알겠네.
아이를 낳기 전까지 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사람은 나였어. 고려해볼 여지도 없이 당연하게 자기중심적인 삶을 살았지. 스스로 꽤나 이기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자식을 낳아보니 세상의 중심이 나에게서 아이로 옮겨가더라고. 겨울이 지나면 봄이 오듯 자연의 순리처럼.
엄마에게도 나는 그런 존재겠지? 자식한테 모든 걸 다 주고도 더 주지 못해 안타까워하며 부모에게 받은 사랑을 내어 주는 영원한 짝사랑. 받은 사랑을 다시 엄마에게 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미안하게도 아빠의 부모가 되고 싶은 마음은 없어. 처자식을 돌보지 않고 숱하게 바람을 피우며 돌아가시는 순간까지 배다른 자식들만 챙기던 아빠에 대한 원망이 아직 남아있나 봐. 만약 아빠의 엄마가 된다면, 난 절대 할머니처럼 하지는 않을 거야. 자식의 잘못을 바로잡지 않고 "나도 그렇게 살았다, 네가 참아라, 남자가 바람을 피울 수도 있지"라며 아들을 감싸기만 하는 어리석은 부모는 되지 않을 거야. 할머니가 아들을 잘 키웠다면 엄마가 좀 더 행복한 인생을 살 수 있었을 텐데.
엄마가 내 딸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예쁘고 똑똑하고 성실한 데다 노래를 잘하고 춤도 잘 추고 무엇보다 엄마는 마음이 참 따뜻해서 친구 같은 딸로 지낼 수 있을 것 같아. 말 안 듣는 아들들과 달리 잔소리하지 않아도 알아서 척척 다 하겠지?
엄마가 내 딸이라면 매일 엄마가 좋아하는 음식을 만들어 줄 거야. 하고 싶은 것, 배우고 싶은 게 있으면 다 하게 해 줄 거야. 엄마의 재능과 꿈을 마음껏 펼칠 수 있도록 지지해 줄 거야. 그리고 외할머니처럼 아빠와 결혼하라고 강요하지 않을 거야. 절대로! 엄마만 사랑해줄 책임감 있고 성실한 남자를 골라서 시집보낼 거야.
생각해보니 지금이라도 해줄 수 있는 것들이 많네. 재작년에 대장암 수술과 항암치료를 받고 나서 내가 엄마의 보호자가 되었어. 병원에 갈 때마다 엄마는 어린아이가 된 듯 어리숙해지고 내게 의지했지. 보호자라고만 생각했지 왜 엄마의 엄마 같다는 생각을 못했을까? 내 딸이 아팠다면 더 지극정성으로 대했을 텐데... 힘들다, 언니 오빠들이 있는데 왜 내가 다 해야 하지? 불평하지 않고 당연한 듯 병시중을 들었을 텐데...
결혼하고 나서 힘들 때마다 엄마는 최악의 상황에서 어떻게 우리를 키워냈을까? 생각하곤 해. 엄마가 유난히 자식들한테 집착했던 이유가 엄마의 삶을 마음껏 살지 못했기 때문이란 걸 이 글을 쓰면서 알았어. 자신이 일하지 않으면 밥 먹고 살기도 어려워서 꿈, 하고 싶은 것 따위는 안중에도 없이 자식들 먹여 살리는 일에 평생을 바쳐왔을 엄마. 그렇게 온 힘으로 키워낸 자식들이 자신의 꿈이자 전부일 수밖에.
엄마에게도 꿈이 있었을 텐데 어째서 진작 물어보고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며 용기를 주지 못했을까? 다음 진료 때 오시면 나이와 질병이라는 한계에 갇혀있을 엄마에게 질문을 던져보려고 해. 엄마의 인생은 아직 끝나지 않았으니 이루고 싶은 꿈이 있느냐고. 내가 있는 힘껏 도와드리겠다고. 난 이제 보호자가 아니라 엄마의 엄마가 돼줄 거니까.
이 글은 새글캠(새벽 몰입 글쓰기 캠프) 오늘의 글쓰기 주제입니다.
새벽에 글쓰기로 치유하며 성장하실 분들은 함께 해요^^
(22년에는 공저 쓰기도 할 예정입니다)
https://blog.naver.com/frigia0/2225259422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