엊그제 강사 모임에서 만난 선생님이 들려준 어머니와의 통화 내용이다. 자식들이 어릴 적부터 강압적으로 대했는데 딸이 50대가 되었어도 여전하시단다. 김치를 가져갈 때까지 전화가 이어진다고 하니 울며 겨자 먹기로 가져올 수밖에 없다고 한다. 친정 엄마와 딸의 대화가 아니라 귀는 닫고 입만 여는 언어폭력 같아서 숨이 턱 막혔다.
물론 어머니는 딸을 위해서 김치를 만들었고 가져가서 맛있게 먹어주길 바라는 마음일 것이다. 문제는 자식이 원하지 않은 걸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포장하여 일방적으로 강요한 데 있다. 이 에피소드를 들으며 최근 큰아들과 나누었던 대화들을 떠올렸다. "지각하면 안 된다, 공부 못해도 되니 성실한 사람이 되어라." 잔소리를 잔뜩 늘어놓고 "다 널 위한 거야. 널 사랑해서 잘 되라고 하는 말이니 새겨 들어야 해!" 라며 포장했던 내 모습이 보여 아찔했다.
철저한 모범생의 피가 흐르는 나와 남편의 눈에는 아들이 성실하지 못하고 게을러 보인다. 지각을 밥먹듯이 하는데 시간을 안 지키는 사람은 신뢰하기 어려운 사회적 통념이 있기에 못된 버릇을 고쳐주고 싶어서 안달이 나있다. 어떻게 하면 고쳐질까? 언제쯤 정신 차릴까? 정작 아들은 고칠 마음도, 잘못이라는 생각조차도 없는데 일방통행으로 밀어붙였다.
다행히 수년간 성격유형과 두뇌유형을 공부하고 강의하면서 나와 전혀 다른 아들을 많이 이해할 수 있었다. 욕심을 부리지 않으려고 머리가 뛰어난 녀석이 공부를 안 해도 내버려 둔다. 아들에게 바라는 수많은 것들을 버리고 내려놓은 결과, 잔소리도 줄어들었고 아들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려는 노력도 하게 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부모라는 이름으로,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행하는 강요와 억압이 시시때때로 튀어나온다.
"딸을 이기려고 하니 힘들어."
"자식은 이기는 게 아니라 가르치는 거야."
얼마 전 여행을 같이 간 언니들이 이렇게 말했다. 명색이 부모교육 강사인 나는 그 말에 모범 답안을 제시했다.
"이기거나 가르치는 건 나는 옳고 너는 틀렸다, 나는 알고 너는 모른다는 거잖아. 자식은 있는 그대로 인정해줘야 해."
말은 쉽게 잘도 하는데 현실은 나 역시 일방적으로 아들을 바꾸고 가르치려 든다. 마음은 서로 주고받아야 어느 한쪽이 병들지 않는다. 원하지 않는 걸 주면서 널 위한 거고 좋은 거니까 무조건 받아야 한다고 우기면 주는 사람과 받는 사람 둘 다 괴로울 수밖에. 사춘기 아들과 우리 부부가 분명 서로를 사랑하지만 자꾸 어긋나고 상처 입히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아들의 말과 마음도 부모 쪽으로 흐를 수 있도록 길을 터주어야 하는데 쉽지 않다.
자신이 가진 걸 다 주고도 못준 걸 안타까워하는 게 부모라고 했던가. 더 주고 싶은 마음에 아들을 부둥켜안고 가시밭길을 구르는 일은 이제 그만하고 싶다. 어머니의 일방통행 사랑 이야기로 숨 막히고 힘들었을 아들을 떠올리게 해 준 그 선생님께 감사 인사를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