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망하게 떠나보낸 아이를 그리워할 새도 없이 어린 두 아들을 돌보느라 나는 강해져야만 했고 남편이 걱정할까 봐 혼자 숨죽여 울 수밖에 없었다. 당시에는 무엇을 해도, 그 누구의 어떤 말도 위로가 되지 않았다. 오히려 사람들이 걱정하고 나의 고통을 아는 척하는 게 부담스럽고 싫었다. 그토록 사람 만나는 것을 좋아했는데 어느 순간부터 누군가를 만나기가 싫어졌다. 놀랍게도 꽤 많은 사람이 자기중심적인 위로를 건네 오곤 했다. 유산을 당한 적이 있어서 그 마음을 잘 안다는 말을 듣고는 화가 날 지경이었다.
'내가 겪어봤는데 괜찮아질 거야'
'나도 잘 알지'
이런 위로가 정말 힘든 사람한테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나는 이렇게나 힘든데 이 사람한텐 쉬웠나 보군'
'내가 더 힘든데... 잘 알지도 못하면서'
하고 상처투성이 마음은 가시를 잔뜩 세워 방어하기 마련이다.
이때 이후로 나는 다른 사람에게 쉬운 말로 위로하지 못한다. 겪어보지 않았기에 함부로 말할 수 없고 그 마음이 어떨지 알 수 없어서 위로 한마디 건네지 못한다. 섣부른 짐작과 성의 없는 한마디가 큰 상처를 낼 수 있음을 너무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정말 힘들어하는 사람을 보면 쉬운 위로 대신 마음을 표현한다. 당신은 혼자가 아님을, 누구나 아픔 하나씩은 가지고 있음을 느낄 수 있도록 마음을 전달한다.
가장 좋은 위로는 다름 아닌 '공감'이다. 상대방과 공감을 했다고 느끼면 상처 받아 굳게 닫아 놓았던 마음도 서서히 열린다. '나는 이런 경험을 했어요. 당신의 아픔은 잘 모르겠지만 정말 힘든 게 어떤 건지 느껴봤어요.' 다 아는 척하며 괜찮아질 거라는 말보다 이런 공감이 큰 위로가 된다.
감당하기 힘든 일을 겪은 사람들은 자신에게 왜 그런 시련이 닥쳤는지 받아들이기 힘들다. 다들 잘만 사는데 나 혼자만 괴롭고 불행하다는 외로움이 들기도 한다. 이때 누구나 각자 다른 모양의 아픔 하나씩 가지고 있음을 느낀다면 더 이상 외롭지 않다. 그럴 때 이겨낼 힘이 생기게 된다.
나는 예전에 우울해하거나 무기력하게 사는 사람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아무리 어렵고 힘든 일이 있어도 마음만 먹으면 극복할 수 있다고 믿어 의심치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노력으로도 안 되는 일을 겪고 보니 그제야 세상의 참맛을 알게 된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타인의 아픔과 괴로움이 더 잘 이해가 되고 느껴졌다. 마치 달콤한 사탕만 먹어본 아이가 입에 쓴 약을 먹은 것과 같달까. 그렇게 나는 아픈 만큼 점점 큰 어른이 되어 갔다.
저는 <일류 두뇌>와 <당신의 뇌를 바꿔드립니다> 저자인 일류작가 강은영입니다.
초고니까 자주 수정이 될 것 같아요!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