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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류작가 강은영 May 29. 2021

비밀친구의 편지

뇌성마비 장애아양육 이야기

마니또(manito): 비밀친구란 뜻의 스페인어


어릴 적 친구들과 마니또 놀이를 자주 했었다. 비밀과 친구라는 매력적인 두 단어가 합쳐졌으니 얼마나 짜릿한가. 누구인지 밝혀지면 더 이상 마니또가 아니기에 책상 서랍에 몰래 편지나 선물을 넣어두고 눈치 못 채게 도움을 주기도 한다. 친구가 나에게 호의를 베풀면 '혹시?' 하며 의심하고 마니또로부터 무언가를 받으면 누구인지 궁금해서 미칠 지경이었다.  


오래전 유행인 줄로만 알았던 마니또 놀이를 요즘 아이들도 하고 있다. 중 3인 큰아들이 초등학교 때 했었고 초등 5학년인 둘째 아들도 얼마 전에 시작했다. 주 2회만 등교를 해서 친구들을 사귈 시간이 충분하지 않았을 테니 요즘은 마니또 놀이에 아주 신이 나 있다. 엊그제는 마니또로부터 편지와 선물을 받아 왔는데 편지를 읽고는 놀랍기도 하고 그 친구에게 참으로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비밀친구의 편지


아이는 이 편지를 읽고 또 읽었다. 가만히 앉아 편지를 읽는 모습에 나는 속으로 울음을 삼켜야 했다. 글을 잘 못 읽어서 매번 엄마에게 편지를 읽어 달라고 했었는데 어느덧 혼자서도 읽는 모습이 감동적이었고 마니또의 칭찬과 응원이 얼마나 기쁘고 큰 힘이 될까를 생각하니 먹먹해졌다.


난 너의 모습을 보고 웃을 때가 많아  
 

비밀 친구의 말처럼 둘째는 타고난 밝은 성향으로 함께 있는 사람을 즐겁게 해 준다. 내가 하고 싶던 일과 공부를 미뤄두고 10년 넘게 재활에 매진할 수 있었던 것도 둘째의 밝고 긍정적인 에너지가 크게 작용했다. 말도 하기 전부터 시작된 수술과 재활치료를 어린아이가 감당하기란 참으로 힘들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는 예나 지금이나 참 밝고 사랑스럽다.


난 가끔 생각한다. 첫째 아들과 둘째 아들의 장점을 섞어 놓으면 완벽한 사람이라고. 서로에게 없는 것을 가지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둘째가 첫째처럼 까칠하고 끈기가 부족했다면 아마 진즉에 아이를 남한테 맡겼을지도 모른다. 치료하고 돌아와 지친 나를 안아주며 "엄마 고생했어요!"라고 말하는 아이 덕분에 그 오랜 시간을 버틸 수 있었다.


비밀친구의 편지를 보고 참 많은 생각이 들었다. 아이의 장점을 봐주고 칭찬해주는 친구가 고마웠고 학교에서 다른 친구들이 아이를 어떻게 바라보고 대하는지 알 수 있었다. 어리석은 나는 학년이 올라갈수록 친구들이 괴롭힐 거라고 짐작했다. 선배 장애아 부모에게 들은 이야기도 그랬고 갈수록 뒤처지는 아이를 친구들이 함부로 대하고 무시할 것 같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물론 그런 친구들도 있겠지만 아이는 엄마의 예상을 깨고 5학년이 되어서 가장 많은 친구를 사귀고 있다. 3~4학년 때는 몇 번 같이 놀고 나면 친구가 등을 돌리곤 했었다. 친구들 입장에서는 당연한 거였지만 그때마다 사람을 좋아하는 아이가 받을 상처에 가슴이 무너지곤 했다. 그런데 고학년이 되자 어쩐 일인지 여러 친구를 사귀고 꽤 오랫동안 같이 어울리고 있다.

 

코로나 시국이라 학교에서 쉬는 시간에 친구들과 잡담을 할 수 없으니 두 친구와 함께 화장실에 가서 이야기를 하며 논다는 말에 웃음을 터트릴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옆 동에 사는 또 다른 친구 두 명과 같이 하교를 한다. 작년까지만 해도 엄마나 아빠가 매일 차로 등하교를 시켜줘야 했으니 장족의 발전이 아닐 수 없다.


아이는 기대 이상으로 학교 생활을 잘하고 친구도 잘 사귀고 있다. 어제는 치료를 다녀온 뒤 저녁도 먹지 않고 반 친구들과 아파트 놀이터에서 3시간 이상 놀다가 들어오는 바람에 혼이 났다. 나는 늦게 들어온 아이를 혼내면서도 기분이 좋았다. 한창 친구들과 밖에서 놀 나이에 집안에만 있어 안타까웠는데 이런 날이 오다니 감격스러울 정도였다.  


아직 나의 걱정은 완전히 없어지지 않았다. 아마 내가 눈감는 순간까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비밀 친구의 편지 내용처럼 아이는 장애를 가지고도 힘든 내색을 하는 대신 밝게 웃는 모습으로 많은 친구들에게 귀감이 되어줄 거라 믿는다. 다음 주에 등교해서는 또 어떤 소식들을 가지고 올지 무척 기대가 된다.


                          


저는 <일류 두뇌>와 <당신의 뇌를 바꿔드립니다> 저자인 일류작가 강은영입니다.

세 번째 책으로 장애아인 둘째 양육 이야기를 쓰고 있어요.

그런데 글이 잘 써지지 않아 편안하게 브런치에 초고를 연재하려고 합니다. 

초고니까 자주 수정이 될 것 같아요!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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