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과 1~2년 전까지만 해도 며칠에 한 번씩 이런 생각을 하곤 했다. 아이러니하게도 남편과의 관계는 좋은 편이었다. 8년 반의 연애기간 때는 물론이고 결혼 후에도 아이들 문제 아니고서는 싸움을 거의 하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아이들한테 얽매이고 밥, 청소 등 하기 싫은 집안일을 해야 하거나 만사가 귀찮아지면 종종 혼자 있고 싶어 졌다. 힘겹게 짊어진 짐들을 다 내려놓고 단 하루라도 자유롭고 편안하게 살아보고 싶어 졌다. 나 강은영의 삶 대신 엄마의 삶에 최선을 다해 살면서 나는 점점 시들어가고 있었다.
남편이나 주위 사람들은 나의 열정과 밝은 에너지를 좋아했었는데... 11년 전 쌍둥이를 낳고 막내를 하늘로 떠나보내고 나서부터 내 삶은 온통 먹구름만 드리워진 듯했다. 먹구름을 피해 보려고 참 열심히도 발버둥을 쳤다. 매일 둘째의 재활 치료를 다녔고 큰아들의 틱 증상이 심했던 6년 전에는 치료를 위해 한의원에도 다녀야 했다. 김포에서 서울로 갔다가 다시 김포로 와서 일산을 갔다가 또 김포로 와서 큰아들까지 데리고 서울을 다녀오면 모든 기가 빨려나간 느낌이었다.
집에 돌아오는 길에는 운전하면서 소리 죽여 눈물을 흘리곤 했다. 앞이 안 보여 위험하기도 했고 두 아들이 뒷자리에 있으니 크게 울지도 못하고 홀로 얼마나 울음을 삼켜야 했던지. 힘들어서 죽을 것 같은데 마음껏 울지도 못해 서러웠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리 없는 눈물이라도 흘려야 숨이 쉬어지던 때였다.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하나? 나는 공부도 많이 했고 능력도 출중한데' 이런 생각은 점차 '결혼을 안 하고 혼자 살았으면 이렇게 안 살았을 텐데'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그때부터 남편이 미워지기 시작했다. 한번 든 생각은 걷잡을 수 없이 커져 정말로 남편이 싫어지고 말았다. 이 사람을 안 만났으면 내가 하고 싶은 대로 살았을 거라는 망상이 나를 괴롭혔다.
사람이 정말 힘들 때는 탓하고 원망할 대상을 찾기 마련이다. 그래야 자신의 책임감에서 조금이나마 벗어날 수 있고 현실을 외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시작된 남편을 향한 원망과 미움은 나를 점점 더 불행하게 만들었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결정이라 할 수 있는 결혼을 부정하는 것은 그동안의 내 삶을 부정하는 것과 다름없는 무게였다. 감당하기 힘든 현실을 부정하자 먹구름을 벗어나기는커녕 점점 더 어둠으로 빠져드는 기분이었다.
급기야 혼자서 이혼을 진지하게 떠올려 보았을 때 그동안 얼마나 미친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 깨달았다. 혼자서 자유롭고 편안하게 산다고? 설령 모든 짐들을 다 내려놓는다고 쳐도 그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남편과 아이들은 이미 나의 일부가 되어 떼어내려면 생살을 도려내는 듯 상상도 못 할 고통을 줄테니 말이다. 떼어놓고 나서도 그 상처는 영영 아물지 못할 테니까.
누구든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하고 살아야 삶의 만족감이 높고 행복할 것이다. 오랫동안 하고 싶었던 것들을 대부분 포기하며 살아온 나는 속으로 남편을 원망하면서 불행의 싹을 키워갔다. 다행히 나의 잘못을 깨닫고 난 다음부터는 마음 정리, 생각 정리를 하기 시작했다. 남편을 선택해 결혼한 것도 나 자신, 아이들을 위해 공부와 일을 포기한 것도 나 자신, 과할 정도로 재활 치료를 다닌 것도 다름 아닌 나 자신이었다. 그렇다면 상황을 바꿀 수 있는 것도 나 자신 밖에는 없다. 결자해지(結者解之). 이 매듭을 묶은 내가 매듭을 풀어야 한다.
그때부터는 남편을 미워하고 원망하는 대신 남편에게 감사한 마음을 갖기 위해 노력했다. 전에는 남편이 청소기를 돌리면 '설거지도 좀 해주지 맨날 청소기만 돌리네'라는 마음이었다면 '청소를 해줘서 감사합니다' 하면 된다. 아이 재활 치료를 대신 다녀오면 '어쩌다 한번 다녀오면서 힘들어하네. 나는 이걸 십 년을 했는데'라는 생각 역시 '쉬는 날 치료를 다녀와줘서 감사합니다'라고 바꾸기만 하면 된다.
하고 싶은 공부와 일은 건강하고 꿈을 잃지만 않는다면 언젠가는 꼭 할 수 있다고 마음을 다잡았다. 오랫동안 꿈을 접고 살았으니 꿈의 날개를 펼치면 얼마나 신이 날지 상상만 해도 행복해졌다. 그리고 몸과 마음이 상할 정도로 심하게 다녔던 재활치료는 조금씩 줄여 나갔다. 그렇게 나는 서서히 불행의 매듭을 풀어나갔다.
오랫동안 강의와 상담을 통해서 사람들에게 뇌를 잘 쓰는 방법, 긍정의 힘을 교육해 왔으면서도 정말로 힘든 상황에 처하자 비난과 질책, 원망, 미움, 절망 등 온통 부정적인 감정과 생각에 휩쓸린 채 살아갔다. 우습게도 그게 너무 잘 파악이 돼서 더 괴로운 것이 문제였다. 예전에는 상황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것이 정말 쉬웠고 내 힘으로 다 바꿀 수 있었는데 일련의 사건들이 나 스스로를 통제 불능의 상태에 빠지게 한 것이다.
하지만 돌이켜보니 그런 시간조차도 나에게는 꼭 필요한 거였다. 정말 힘든 사람들, 어찌할 수 없는 고통에 빠져 사는 사람들을 진심으로 이해할 수 있게 되었으니까. 그리고 나와 비슷한 처지에 있는 사람들을 도우며 살아야겠다는 사명감을 갖게 했으니까 힘들었던 그 시간들도 감사하기만 하다. 물론 지금은 다 이겨냈으니까 이런 말을 할 수 있긴 하지만.
이제는 나도 참으로 행복하다. 스스로 만들어낸 마음의 병을 지우고 바꿔서 예전의 밝고 긍정적인 에너지를 되찾아 갔고 오랜 꿈을 이룰 기회가 왔을 때 주저하지 않고 열심히 노력하여 작가라는 꿈도 이루어냈다. 또한 꿈을 이루는데서 그치지 않고 매일 새벽에 글을 쓰고 나를 갈고닦아 나감으로써 점점 내면의 빛을 키워가고 있다. 나라는 사람의 가치를 발견하고 키워가며 그 가치를 나누는 일을 하는 지금, 나는 어느 때 보다도 행복하다.
저는 <일류 두뇌>와 <당신의 뇌를 바꿔드립니다> 저자인 일류작가 강은영입니다.
세 번째 책으로 장애아인 둘째 양육 이야기를 쓰고 있어요.
올해 안에 발간하는 것이 목표인데 글이 잘 써지지 않아 편안하게 브런치에 초고를 연재하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