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크고 또렷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겨우 10살인 장애아의 입에서 갑자기 튀어나온 말에 나는 그만 얼어붙고 말았다.
간신히 정신을 차리고
"정말 멋진 말이다! 누가 한 말이야?"
라고 물었고 헬렌 켈러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집에 오자마자 엄마한테 바로 얘기한 걸 보면 꽤나 인상 깊었던 모양이다. 그 후로도 종종 아이는 이 말을 하곤 한다.
언젠가부터 나의 가장 큰 바람 한 가지는 둘째가 행복하게 사는 거였다. 평생 장애를 가진 채 살아야 하는 아이가 행복할 수만 있다면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았고 내가 불행해지더라도 아이만은 행복하게 살기를 바란 적도 있었다. 하지만 엄마가 행복해야 아이도 행복할 수 있기에 지금은 우선 내가 행복해지려고 노력하는 중이다.
아마 마음 한구석에는 아이가 성인이 되면 불행할지도 모른다는 걱정이 있었나 보다. 제때 독립하지 못할 수 있고 평생 누군가에게 의지하며 살아야 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도 있다. 우리 부부는 나이가 들어갈 테고 언제까지나 아이 곁에 있거나 보호해 줄 순 없기에 어쩌면 당연한 것이리라.
그런데 아이가 한 말을 듣고 나서 나의 이런 불안과 걱정은 많이 사라졌다. 아직까지 우리나라에서 장애인으로 산다면 많은 불편을 감수해야 한다. 여러 혜택들이 생겨 나고는 있지만 장애아의 부모로서 선진국의 장애인 복지제도가 마냥 부러운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헬렌 켈러를 비롯해 장애를 극복한 많은 위인들을 보면 어쩌면 내 아이 역시 불편할지라도 진정으로 행복한 인생을 살 수 있을 거라는 희망도 있다.
위인들 뒤에는 대부분 더 위대한 어머니가 존재한다. 위대한 발명가 에디슨이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몇 개월 후 선생님으로부터 편지를 받았다.
"당신의 아들은 천재이니 우리 학교에서 가르칠 수 없습니다. 그러니 집에서 직접 가르치세요."
수십 년 후 에디슨은 최고의 발명가가 되었다. 훗날 돌아가신 어머니의 유품을 정리하던 에디슨은 편지의 원본을 발견한다.
"당신의 아들은 저능아이니 더 이상 학교에 오는 것을 허락하지 않습니다."
이를 본 에디슨은 한참을 울었고 일기에 "나는 저능아였지만 영웅적인 어머니 덕분에 세계 최고의 발명가가 되었다"라고 썼다.
다른 아이들에 비해 성장과 발달이 유독 늦었던 아인슈타인도 어린 시절 학교에서 낙제생으로 낙인찍혔다. 급기야 학교에서 퇴학을 당했을 때 그의 어머니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너는 다른 아이들과 다른 장점이 있단다. 세상에는 너만이 감당할 수 있는 일이 너를 기다리고 있으니 그 길을 찾아가야 해. 너는 틀림없이 훌륭한 사람이 될 거야"
이 두 명의 천재는 학교에서 모범생은커녕 낙제생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어머니는 아들에 대한 사랑과 믿음으로 기다리고 이끌어주었다. 말이 쉽지 평범하지 않은 아이를 전적으로 믿고 기다려 주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이다. 또래보다 발달이 수년이나 느린 필자의 둘째도 2학년 때부터 이미 학교 수업을 따라가지 못했다. 아이가 원해서 특수학급에는 가지 않고 있는데 국어나 수학 시간만이라도 특수 학급에 가서 개별 수업을 받는 게 좋겠다는 선생님 말씀을 들을 때마다 고민을 했다.
선생님의 말씀대로 어려운 수업에 앉아서 시간 낭비를 하느니 본인 수준에 맞는 수업이 훨씬 도움이 될 터였다. 하지만 글자를 더 빨리 배우고 셈을 잘하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아이가 학교에 즐겁게 다니는 거라고 판단했다. 무엇보다도 아이의 의사가 중요했는데 아이도 특수학급에 가는 걸 원하지 않았다. 그래서 5학년인 지금까지 일반 학급에서만 생활하고 있다.
나는 이 선택을 지금까지 후회하지 않는다. 물론 아이가 수업 을 못 따라가 힘들 수는 있지만
"사람은 누구나 잘하는 것이 다 달라. 넌 공부는 못하지만 인사를 잘하고 노래를 잘하니까 괜찮아. 그리고 항상 행복하잖아. 그게 가장 중요한 거야"
라고 말해주고 있다.
어쩌면 그 말을 나한테 들려주는 걸지도 모른다. '하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어쩔 수 없이 다른 아이들과 비교하게 되고 불안해하는 게 인지상정이라 되뇌고 또 되뇌는 것이리라. 나는 평범한 사람이라 위인들의 어머니처럼은 못하겠다. 어제도 무서워서 난간을 붙잡지 않고는 계단을 못 내려오는 애한테 얼마나 모진 말을 해댔는지 모른다.
"이것도 무서워서 못하면 뭘 할 수 있겠어?"
"엄마가 하라는 대로 안 하니까 자꾸 넘어지고 못 내려오잖아!"
거의 한 시간 가까이 혹독하게 지속된 계단 내려오기 연습을 마치고 나서 아이는 너무 힘들다며 울음을 터트렸다. 그리고 나는 앞으로 계단 연습을 하지 않기로 결심했다. 매번 손잡이를 잡아야 하고 사람이 많으면 빨리 내려가지 못하는 불편이 있겠지만 내 욕심대로 하다가는 아이를 더 힘들게 할게 뻔하니까.
요 며칠 기분이 안 좋고 아이에게 사랑 표현을 더 적게 한 이유도 다 이 계단 내려오기가 제대로 되지 않아서였다. 계단 하나 못 내려온다고 불행해지진 않을 테니 오늘부터 계단 연습은 때려치우고 아이가 좋아하는 알까기 놀이나 한번 더 해줘야겠다. 후~ 욕심을 내려 놓으니 이리도 마음이 편해진다.
행복하자
우리, 부디 행복해지자
저는 <일류 두뇌>와 <당신의 뇌를 바꿔드립니다> 저자인 일류작가 강은영입니다.
세 번째 책으로 장애아인 둘째 양육 이야기를 쓰고 있어요.
올해 안에 발간하는 것이 목표인데 글이 잘 써지지 않아 편안하게 브런치에 초고를 연재하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