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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류작가 강은영 Jun 05. 2021

무엇이든지 다 해주는 부모

아이 스스로 할 수 있는 기회 빼앗기

"빨리 일어나"

"얼른 밥 먹고 씻어야지!"
"어휴, 제발 빨리 좀 해"

하루 중 가장 분주한 아침 등교 시간, 집집마다 전쟁 같은 일들이 벌어지곤 한다. 잠을 더 자려는 아이와 깨우려는 엄마, 스스로 준비하지 않는 아이와 지각할까 봐 분주한 엄마 사이의 전쟁 말이다.   


보통의 가정 풍경이 이러하다면 어린 아이나 발달이 느린 아이를 둔 집의 아침은 다소 다르다. 아이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고 시간도 오래 걸리기 때문에 엄마 혼자서 다 해결한다. 겨우 깨워서 밥을 떠 먹이고 양치와 세수를 해주고 옷을 갈아 입히고 신발을 신기는 등 모든 것을 엄마가 해주어야 지각을 면할 수 있다. 이런 경우에는 아이가 아닌 시간과의 전쟁이 벌어진다.


열두 살인 둘째는 지금도 가끔 옷의 앞뒤나 안팎을 바꿔서 입는다. 유치원 시절에는 바지에 다리를 제대로 끼워 넣는 것조차 힘든 일이었다. 밥을 먹을 때도 수저를 쓰는 게 서툴러서 꽤 오랜 시간이 걸리곤 한다. 발달이 느린 아이들은 행동도 느리고 서툴 수밖에 없다. 반면 성격이 급한 나는 아이의 모습을 보고 있기가 참 힘들었다. 시간이 없다는 핑계로 밥을 떠먹여 주거나 옷을 갈아 입히고 양말, 신발까지 다 신겨 주기도 했다. 


가끔 그렇게 해주는 것은 별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의외로 많은 부모들이 아이가 할 일을 대신 해주곤 하는데 자신이 어떤 짓을 저지르고 있는지 미처 모르고 하는 행동이다. 부모라면 자녀가 책임감 있고 성실하게 성장하길 원할 것이다. 어리거나 서툴다고 해서 부모가 다 해주면 아이는 스스로 할 수 있는 기회를 빼앗길 뿐만 아니라 책임감과 성실성까지 안 좋은 영향을 받게 된다.     


일반적인 어린아이라면 부모가 어릴 때 다 해주더라도 자라면서 스스로 할 수 있는 일들이 점차 많아진다. 그런데 발달이 느리거나 장애가 있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오랜 시간을 갖고 스스로 할 수 있게 교육하지 않으면 아이는 성장해도 많은 것들을 누군가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다. 시간이 오래 걸리는 이유는 배우고 익히는데 몇 배의 시간이 소요되기 때문이다.  


발달이 느린 아이를 교육할 때는 웬만한 인내심으로는 어림도 없다. 거북이처럼 느리게 걷는 아이에게 토끼처럼 빨리 달리라고 강요해봤자 부모와 자녀 모두를 힘들게 할 뿐이다. 혼자서 밥을 먹고 옷을 갈아 입고 샤워를 하는 등 사소한 것일지라도 익숙해지려면 수개월에서 수년이 걸리기도 한다. 그만큼 쉽지 않지만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이기도 하다. 

거북이를 교육할 때는 우선 욕심부터 내려놓아야 한다. 아이의 속도에 맞게 한 번에 한 가지씩 시작하는 것이다. 옷 입기를 가르친다면 아이 스스로 입기가 더 쉬운 옷 한 가지부터 입을 수 있게 한다. 필자는 처음 옷 입기를 가르쳤을 때 양말 한 짝부터 시작했다. 좌우 구분이 없고 크기가 작은 양말이 가장 쉽게 할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양말 한 짝을 잘 신을 수 있으면 두 짝으로 늘리고 그다음으로는 바지를 스스로 입게 했다. 한 가지에 익숙해지면 점차 개수를 늘려가는 방식이다.


그렇게 6개월이 넘는 시간 동안 교육을 했더니 아이 혼자서 모든 옷을 스스로 갈아입을 수 있게 되었다. 밥을 먹거나 양치, 씻는 것도 마찬가지 방식으로 가르치면 된다. 만약 샤워를 가르친다면 처음에 세수만 하고 다음으로 몸 중에 배만 비누칠을 하게 한다. 점차 상체 씻기, 몸 전체 씻기, 머리 감기까지 확장해 나가면 어느 순간 혼자서 샤워도 거뜬히 해낸다. 필자의 둘째는 장애아임에도 불구하고 7살 때부터 스스로 샤워를 할 수 있게 되었다.


아이가 혼자서 다 할 수 있게 되었더라도 행동이 굼뜨거나 시간이 많이 걸린다면 스스로 할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을 주어야 한다. 보고 있으면 빨리 하라고 닦달하거나 답답해서 결국 해주게 되므로 엄마는 다른 일을 하는 것이 좋다.  

"엄마가 아침 준비할 동안 옷을 갈아 입어"
"미리 신발 신고 있으면 엄마가 준비 다하고 나갈게"

이런 식으로 아이가 할 수 있도록 충분한 시간을 준 뒤 엄마는 다른 볼 일을 보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집안일 중에서도 아이가 할 수 있는 일을 만들어 주는 것이 좋다. 현관에 신발을 정리하거나 식사 시간에 숟가락 놓기, 식탁등 켜기 같은 쉽고 사소한 것부터 아이가 할 수 있게 한다. 그렇다면 가정의 일원으로서의 역할을 하면서 엄마를 도와준다는 뿌듯함과 자기 역할에 대한 책임감을 기르고 무엇보다 스스로 할 수 있다는 자신감과 성취감을 키워줄 수 있다.


아무리 어리거나 발달이 느리더라도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이 분명히 있다. 다만 배우고 익히는데 시간이 오래 걸릴 뿐이다. 장애가 심한 아이라면 훨씬 더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다. 이럴 경우엔 스스로 다 할 수 있게 한다는 욕심을 버리고 부모가 중도에 포기하지만 않으면 된다. 그동안 아이가 스스로 못한다고 다 해주지는 않았는지, 잘못된 방법으로 가르치지는 않았는지, 충분한 시간을 주지 않고 닦달하진 않았는지 반성할 일이다. 만약 그랬다면 지금도 늦지 않았으니 당장 하나씩 차분하게 가르쳐 주길 바란다. 시간은 유한하나 우리는 종종 그것을 망각한다. 부모가 언제까지나 아이 곁에서 다 해줄 수는 없지 않은가. 아이가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이 적을수록 성인이 되었을 때 힘든 삶을 살게 될 수밖에 없다.


안타깝게도 발달이 느린 아이들은 가르쳐주지 않아도 자라면서 알아서 하게 되는 일반적인 발달 과정을 거치지 않는다. 때가 되면 자연스럽게 말하고 걷는 것부터 시작해서 무엇 하나 저절로 되는 것이 없다. 열심히 재활치료를 하고 교육을 해야만 겨우 해낸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스스로 해냈을 때 부모의 기쁨도 아이의 성취감도 크다. 다소 야단법석을 떨어도 좋으니 오랜 시간 정성을 들여서 교육하고 해냈을 때는 충분히 기뻐하고 축하도 해주자. 제발 아이 스스로 할 수 있는 기회를 부모의 손으로 빼앗지 말자.


           


저는 <일류 두뇌>와 <당신의 뇌를 바꿔드립니다> 저자인 일류작가 강은영입니다.

세 번째 책으로 장애아인 둘째 양육 이야기를 쓰고 있어요.

올해 안에 발간하는 것이 목표인데 글이 잘 써지지 않아 편안하게 브런치에 초고를 연재하려고 합니다. 

초고니까 자주 수정이 될 것 같아요!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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